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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연구: 대화부터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쓰자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6. 2. 4. 12:07728x90반응형

사례 연구: 대화부터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쓰자
우리가 적어도 일상 생활에서 생겨나는 일을 이야기로 적는다면, 그 이야기 속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나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일정하게 관계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대가 완전히 개인적인 글감을 선택했다면, 내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도 나오리라. (독백은 내가 나와 나누는 대화니까.) 일반적으로는, 글을 쓰는 내가 (정기적으로든 비정기적으로든) 누구를 만나고 그와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시간을 무대 삼아 진행된다. 이야기 속 사건은, 아무리 짧더라도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 말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일어난다. 찰나, 즉 눈을 깜박할 사이에 시작하고 끝나는 이야기는 (사실상) 없다. 그런데 시간 자체는 재료일 뿐이라서, 요리사가 식재료를 선택하고 물에 씻고 적당히 다듬어야 맛있고 멋있는 음식을 내놓듯이, 글쓴이는 시간을 모두 문자로 옮기지 않고 적당하게 자르고 중요한 조각만 모아서 이어 붙이려 애쓴다.
그렇게 중요한 시간 조각만 골라서 이어 붙였지만,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또 더 중요하다. 대체로, 전체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든지, 핵심 주제로 가기 위해서 전환이 일어나는 대목이 가장 중요하겠다. 이런 대목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역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나눈 대화를 직접 소개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다. 특히, 대화 자체에는 감정이 안 드러나지만, 행간을 읽으면 글쓴이 생각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야기를 쓸 때 대화록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1. 이야기를 구상할 때, 이야기 속 주요 등장 인물이 나눈 대화 내용부터 떠올린다. 전체 대화 내용을 전부가 다 기억해 낼 필요도 없다. 그냥 내 마음 속에 떠오른 한 마디만 있으면 충분하다.
2. 대화를 나누며 실제로 표현한 말을 100% 그대로 적지 않아도 된다. 녹음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데, 대세가 중요하다. 어떤 흐름으로 대화가 이어졌는지만 쓰면 된다.
3. 표면적인 대화 내용을 적으면서, 이면에 오고간 표정이나 몸짓도 함께 기억하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느낀다.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심어둔 의미가 중요하다.
4. 대화와 대화 사이에 일어난 일을 요약하듯 간단하게 적는다. 대화는 놓치면 안 되는 빨간색 점이라고 생각하고, 점과 점 사이를 좀 더 작지만 제 나름대로는 중요한 검은색 점으로 채워 본다.
5. 대화록 중에서 제일 강렬한(글 전체 주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운다. 그리고 나서 빈 곳은 서술형 문장으로 채운다.
<사례>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딸과 목욕하며 놀았더니 금세 잘 시간이 되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눈이 자꾸 감기는데 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오늘은 책 뭐 읽을까?” 아이고, 오늘도 늦게 퇴근하겠네(?). 딸은 12살이 되었는데도, 혼자 책을 읽기보다 나와 함께 읽고 싶어한다. 보통 잠들기 전 글자가 큰 책을 읽는데, 딸이 세 쪽을 소리 내어 읽으면, 내가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는다. 책을 다 읽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불을 껐다. 딸은 이제야 할 일을 다 마친 듯,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귀여운 녀석. 네가 행복했으니 됐다. 자자."
이 단락에는 대화가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대화]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하는) 딸: "엄마, 오늘은 책 뭐 읽을까?"
엄마(글쓴이): '아이고, 오늘도 늦게 퇴근하겠네.'
12세로서 에너지가 넘치는 딸이 자꾸 조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오늘은 책 뭐 읽을까?" 오늘'은'이라고 말하니, 아마 어제도, 그저께도, 보통 매일, 함께 책을 읽나 보다. 이 문장에는 표정이 없지만, 왠지 딸이 최소한 밝게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말했을 듯하다. 그러자 엄마가 마음 속으로 말한다: '아이고, 오늘도 늦게 퇴근하겠네.' 일하는 엄마라서 저녁엔 졸고, 어떤 면에서는 딸과 보내는 이 귀한 시간을 퇴근해서 맞이하는 또 다른 업무처럼 느낀다. 딸과 책을 모두 읽어야 육아에서 퇴근할 수 있으니, 이렇게 속으로 되뇌였겠지.
대화는 말로만 나누지 않는다. 표정으로, 몸짓으로, 어조로, 눈빛으로도 나눈다. 그러니 이야기에 쓰는 대화에서 반드시 실제로 두 사람 이상이 명시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두 번째 대화]
(행동으로 말하는) 딸: (이제야 할 일을 다 마친 듯,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속으로 말하는) 엄마: '귀여운 녀석, 네가 행복했으니 됐다. 자자.'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은 서로 얼굴 표정을 안 들여다 봤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때 두 사람은 사실상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매일 밤, 표정을 들여다 보니까. 그렇다면 두 사람은 심지어 얼굴을 안 봤어도 이미 분위기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클로즈업과 같다
글은 텍스트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진은 시각 정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매체가 다르지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면에서는 본질상 같다. 그렇다면 텍스트로 부리는 기술을 시각 기술과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대화를 시각 기술에 비유한다면? 당연히, '클로즈업'이라고 말해야 한다.
시각 매체는 (우선적으로) 화면 크기를 조절해서 말한다. 카메라는 감독의 눈이자 관객의 눈인데, 카메라에서 피사체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 거리만큼 정서적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니까 핵심 주제에 비추어서 해당 피사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감독이 클로즈업을 선택해서 어떤 피사체를 찍었다면? (무조건은 아니겠지만, 대체로는) 정서적 거리가 가까우며, 핵심 주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대상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 클로즈업 기술을 텍스트 기술에 비유한다면, 대화록 작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글을 평이한 텍스트로만 채우면, 결국 모두 충분히 정리된 객관적 문장으로만 채워지는데, 그러면 정서적으로 독자와 조금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화록을 읽으면, 독자는 마치 이야기 속 등장 인물이 되어서 자기도 해당 대화에 직접 참여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야기 속 등장 인물을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느끼고 감정도 이입하게 된다.
이야기에는 굴곡이 있어야 하고, 장단이 있어야 하며, 고저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문장으로 리듬을 타야만, 독자가 빨려든다. 대단한 문필가처럼 문장을 멋지게 쓰지 않아도 좋다. 세련된 문학적 수사법을 구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독자 손을 잡고서 부드럽게 밀었다 당기고, 밀었다 당기면,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긴다. 그리고 이야기를 구상할 때 대화를 잘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독자를 밀었다 당길 수 있는 리듬을 만들 수 있다.
2026년 2월 4일
새벽에 이재원 記.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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