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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하시는 것 같아요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6. 7. 14:15728x90반응형
예전에 알던 어떤 상담자에게서, 전통적인 슈퍼비전에 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에게 전통적인 슈퍼비전이란, 자기가 상담하고 정리한 사례를 슈퍼바이저(주로 대학 교수님)에게 보이고 그분의 식견과 경험에서 교훈을 배우는 훌륭한 방법이 아니었다. 슈퍼바이저가 과거에 만났던 과거의 내담자가 그 당시에 힘들어 하던 문제를 도우면서 쌓았던 과거의 경험을, 지금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내담자가 요즘에 힘들어 하고 있는 문제를 도우면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입하는, 다소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내가 만나고 있는 내담자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아는데, 그 내담자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교수님이 그 내담자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러쿵 저러쿵 재단하고 판단하고 지도를 하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상담자도 교육과 훈련은 필요할 것이고 전문적인 슈퍼비전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발전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허면 그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슈퍼비전을 받았을까? 답변이 놀라웠다: "저는요, 내담자에게서 슈퍼비전을 받습니다. 매 회기마다요. 저는 'PCOMS'라는, 내담자에게서 저의 상담 퍼포먼스를 실시간으로 평가받는 척도 체계를 일상적으로 활용합니다. 매 회기마다 끝날 때 SRS(Session Rating Scale)" 양식을 내담자에게 주고 내담자에게 양적으로(점수로) 평가받는 겁니다. 그 후에는 질적인 질문("무엇이 좀 달라지면, SRS 점수가 조금이라도 높아질까요? 점수가 1점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을 던져서 구체적으로 개선 방안(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바라는 변화)을 끌어낸답니다."
이 상담자가 최근에 내담자에게 받은 피드백은? "선생님은 너무 설교를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남편의 말을 좀 더 많이 듣기 위해서 여기에 왔는데, 선생님 말씀이 너무 많아서 - 물론 좋기는 했지만 - 좀 아쉬웠어요. 그래서 저희 이야기를 좀 더 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이 상담자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다. 솔직히, 말이 너무 많아서 자신이 상담자로서 적합한지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고 한다. 상담자는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말이 많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너무 (잘) 하고 싶어서 약점은 대략 무시하고 상담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담자가 "설교가 많다"는 피드백을 주었을 때...
이 상담자는 마음 속으로 매우 놀라고 민망하면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경력이 있기 때문에(!) 거의 당황하지 않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고 한다: "제 퍼포먼스에 대해서 솔직하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 있는 이유는 바로 두 분을 돕기 위함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전혀 상처받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설교가 많다"는 피드백을 받고 당황하지 않은 상담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상담자도 적잖게 당황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앞으로는 내담자가 결코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차분하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아주 잘 하셨다"고 말했다. 클라이언트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한 개인이 그 모든 다양성에 맞춘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내담자가 상담자와 비슷한 스타일일 가능성보다는 다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것 자체에 집중해서 말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노력을 하는 편이 백 번 낫다. 나는 이 상담자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 내담자를 지극히 존중하려는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마음으로, 그리고 말로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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