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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문에 걸린 웃음 (나의 까미노)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이재원의 여행기 모음 2020. 6.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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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나는 죽기 위해서 세상 끝으로 날아갔다. 까미노 순례길(vo.la/DptI)을 조용히 걸으면서 내 삶을 정리하고, 마침내 세상(유라시아 대륙의) 끝이 나오면,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까닭은, 까미노 위에 남아 있다. 

     

    28일 동안 850km를 걸었던, 뜨거운 그 여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다.  (2020년 6월 11일, 이재원 기록) 


    <어느 평범한 스페인 집앞에 놓인 꽃화분들> (2014년 10월 13일, 이재원 기록)

     

     

    집집마다 창문에 걸어 놓은 커다란 웃음. 

     

    내가 까미노를 걸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들 중에 하나는, 바로 집집마다 창문에 내어 걸린 꽃화분이었다. 처음에는 여기가 외국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이니까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까미노를 걸으면서 어디에서나 예쁜 꽃화분을 만나면서 스페인 사람들에게 직접 답변을 듣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낙천성. 여유. 희망. 

     

    요즘 스페인은 경제가 너무 안좋아져서 사람들이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부르고스나 레온 같은 도시에서는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 아줌마가 빈 깡통을 들고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계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움이 있는 와중에도 창문에 예쁜 꽃 화분을 내어 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인 거다. 

     

    사실, 꽃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무언가 살아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매일 물을 주며 인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생명은 생명에 자연스럽게 공명을 하는 법이다. 비록 작고 말못하는 생명이지만 이런 생명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힘든 와중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결심했다. 돌아가면 꽃을 키우겠다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해서. 막상 돌아오니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마음 먹고 꽃을 사러 가야겠다. 그리고 나를 돌보고 가꾸는 마음으로 꽃들에 물을 주고 양분을 줘야겠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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