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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 저 샤브샤브 칼국수 먹고 싶어요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7. 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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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11일, 이재원 기록.) (*사진 사용 허락을 받았음.)

     

    간만에 현애와 현애의 새끼들을 만났다. (물론, "새끼"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부정적인 어감을 들어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말이 내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애가 만든 작품인 세 남매를 많이 사랑한다.) 6개월 정도 지난 것 같다. 그 사이에 현애의 첫째 딸, 하늘이는 또 부쩍 커버렸다. 이제 말도 청산유수처럼 하고 엄마 외모를 점점 더 빼닮아 간다. 

     

    "오빠, 저 칼국수 샤브샤브 먹고 싶어요. 근처에 잘 하는 집 있는데, 가도 돼죠?"

    "그럼, 임마. 너 먹고 싶은 곳으로 가자."

     

    그렇게 새끼들 셋을 매달고 칼국수 샤브샤브 집에 갔다. 현애는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 새끼들 챙기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즉, "정신 없이 새끼들을 챙긴다." 그런데 또 나에게 부탁도 잘 안한다. 내가 명색이 손님인데 내게 폐를 끼치기 싫은가부다. 내 옆에 있는 식기를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텐데, 그냥 자기가 다 가져간다. 갑자기 현애가 많이 안쓰러워진다. 그래서 나름대로 도와 주려고 노력했고 마지막엔 화장실 가는 척을 하고는 내가 계산을 했다. 

     

    우리는 이런 관계이다.


    (2019년 2월 9일, 이재원 기록.)

     

    "이번에는 뭘 해 줄까? 짜장면을 만들어 줄까?"

     

    지난 해 가을에 경기도 양주에 사는 친한 대학 동기, 신현애 사회사업가의 집에 종종 놀러가서 요리를 해 주었다. 요리 재료를 내가 다 사서, 그의 집에 들고 가서,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고, 나름 최선을 다해서 요리를 해서, 그와 그의 가족에게 먹였다. 가능하면 설겆이와 뒷정리까지 했다. 

     

    이혼한 후, 돈벌이 일을 그만 둔 나는 유학 준비 혹은 박사과정 공부를 한다는 알리바이를 세워 두고, 사실은 놀고 있었다. 내 나이가 대체 몇인가? 아무리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힘들어 하고 있다지만, 밥 벌이는 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괴로웠다. 

     

    어머니께서 여러 모로 많이 도와 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 큰 아들, 이혼해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큰 걱정거리인데, 여러 모로 경제적인 지원까지 해 줘야 한다면... 나 같아도 답답하고 미울 것 같다. 저 인간이 언제 정신 차리고, 언제 사람 구실 언제 할까나? 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 와중에 현애네 집을 방문했다. 솔직히 나 먹을 것도 없고, 그보다도 돈이 없었지만, 그 집 사정도 뻔히 알기 때문에 도저히 재료값을 대라는 말을 못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 세 명 낳고(애국자다!)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이벤트 성으로 가서 요리를 해 주었는데, 막상 가서 요리를 해 주니, 내가 너무 즐겁고 뿌듯했다. 나에게 늘 한결같이 의리를 보여준 좋은 친구, 현애에게 잠시나마 육아와 가사 일에서 벗어날 시간을 주는 게 기분이 좋았다. 보람 있었다. 

     

    아마, 현애가 내 사정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았다면, 그러지(돈을 쓰지) 말라고 했을 거다. 그래서 말을 안했다. 내가 너무 즐거워서 하는 일이 되어 버려서, 그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현애는 나에게 고마워했지만, 사실 나는 그에게 너무 많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내가 늘 "양털 안감처럼 마음씩 고운 동생아"라고 부르는 내 대학동기 동창 현애. 내가 아는 정말 몇 안되는, 자신이 만나는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뜨거운 "단심"을 가진 정말 "좋은 사회사업가" 현애.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정말 의리가 무엇인지 알고, 배려가 무엇인지 아는 좋은 사람, 신현애. 이런 현애를, 그리고 그의 아이들과 마음씨 착한 남편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먹이는 행위는, 나에겐 작지만 커다란 힐링 이벤트였다. 

     

    처음에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가만 보아하니, 어린 아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야 결국은 엄마 아빠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메뉴를 아이들 위주로 바꾸었다. 김밥이나 자장면.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좋아했다. 결국 나도 좋아했다. 소박한 상 위에 짜장면 그릇 여섯 개와 김치를 올려 놓은 장면을 상상해 보라. 자장면이라서 맛있지만, 귀엽게 조잘대며 먹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아빠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버틸 수 있도록 힘을 준 사람들은 무척 많지만, 현애에게도 특별히 고맙고 또 고맙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마도 그는 "에이... 오빠,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내가 오빠에게 도움을 받았지"라고 말할 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냐, 현애야. 너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존재란다.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가도 밝아지곤 했어. 그리고 천상 일을 해야 행복한 네가 아이들을 키우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잘 견디면서 엄마로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그런 너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위안을 받고 힘을 얻었는지!"

     

    그동안, 나는 허송세월을 한 걸까? 예컨대, 숫자로 말하자면, 맞다. 허송세월. 황금같은 30대말 40대 초를 눈물로, 불면증으로, 대인기피로 허비했다. 돈도 못 벌면서 돈을 쓰면서 살았다. 하지만, 오늘 돌이켜 보면 다른 면에서는 허송세월이 아니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양적인 변화가 쌓이면 질적인 변화가 온다고 했던가. 그동안 참고, 견디고, 또 참고, 또 견디면서... 그리고 내 감정을 끝없이 들여다 보면서 이름 붙여보려고 노력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이제사 한 곳으로 모여서... 내 마음 속 변화를 자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애랑 알게 된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우리에겐 6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이젠 점점 의미가 없어져간다. 그 씩씩 + 용감 무쌍하던 "하늘바다" 신현애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이를 먹어간다. 물론,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내 속사람도 겉사람의 나이를 반의 반 만이라도 좇아갈 수 있다면, 나이 먹는 일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현애야, 나는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종종 휴일에 너희 집에 가서 요리를 해 줄거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이들과 친해지는 법을 잘 모르지만, 음식은 아이들을 웃게 만들어 줄 수 있잖니.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너희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란다. 요리를 만들어서 너희 가족에게 먹이는 행위는, 그냥 밥 한 번 같이 먹는 행위가 아니라, 나에게는 너희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 관심의 표현이며, 내가 누군가에게 순수한 사랑을 줄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고귀한 노력이기 때문이지. 

     

    사랑은 주는 거다. 줄 수 있을 때, 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너와 너희 가족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사진: 위로부터 현수, 하늘, 그리고 해솔.)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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