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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입을 막으라고요?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7. 16. 17:11728x90반응형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5화 중에서>
명은원(산부인과 전공의): 임신 13주차에 무뇌아로 의심됐고, 오늘 32주차인데 새벽에 양수 터졌고, 지금 진통이 조금 있어서... 음... 아마 오늘 낮 정도에 나올 것 같은데, 아기는 태어나도 짧으면 몇 시간? 길어도 며칠 정도밖에 못 살거야.
추민하(산부인과 전공의): 입을 막으라고요?
양석형(산부인과 교수): 코랑 기도는 막지 말고, 소리만 안들리게. 아이 입만 살짝 막아.
산모: 선생님... 우리 아가한테... 너무 미안해요... 흑흑흑... 아가...
양석형: 산모님은 끝까지 아기를 지키신 거에요. 그거만으로도 대단하신 거에요. 산모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한승주(산부인과 분만실 간호사): 이따가 아기 나오면, 그리고 혹시 아기가 울게 되면, 나보고 음악을 크게 틀어달래.
한승주: 엄마는 모든 걸 다 알고 마음의 준비도 했지만 그래도 아기가 우는 순간, 아이 울음 소리를 들으면 그 트라우마는 평생 갈거라구.
한승주: 생긴 건 세상 뚱하게 생겨서 디테일이라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야. 사실, 그런 것까지 배려하긴 쉽지 않거든.
추민하는 놀란다. 무뇌아가 태어나면 입을 막으라고 했거든. 산부인과 교수가. 양석형이. 추민하는 산부인과 의국에 와서는 "그거 사이코 패스 아니냐"며 흥분한다. 그러자 "분만의 신" 한승주 간호사가 추민하에게 묻는다: "추민하 선생, 몇 년차지?" "2년 차요." 전공의(레지던트)에게 경력을 왜 물어 보았을까? 경험의 폭이 좁아서 양석형 교수의 행동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본 거다.
역시, 한승주 간호사가 옳았다. 양석형 교수가 추민하에게 아기의 입을 막으라고 지시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가 지극하게 산모를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무뇌아로 태어났지만, 그래서 몇 시간 후면 하늘나라로 떠날 운명이지만, 그래도 아기 엄마는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들으면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므로, 아기의 입을 막으라고 지시한 거였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에서 한승주는 말한다: "사실, 그런 것까지 배려하긴 쉽지 않거든."
그대는 무엇을 "배려"라고 생각하는가?
예전에 이야기치료 대가 마이클 화이트의 상담 녹취록을 읽고, 대단히 놀란 적이 있다. 정말 깜짝 놀랐더랬다. 마이클 화이트는 상담실 문 앞에서 내담자를 안내하면서 be 동사를 사용해서 이렇게 묻는다: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하고(be) 싶으세요?" 우리 말에는 없는 be 동사는 "존재한다"는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이클 화이트의 질문은 "오늘 여기에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계셔도 됩니다. 앉아도 되고, 서 계셔도 되며, 왔다 갔다 하셔도 되고, 바닥에 누우셔도 됩니다"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이클 화이트가 내담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끝까지 밀어 붙이는, 어마어마한 실천가라고 느꼈다.
이후에 나는 내가 상담할 때에 마이클 화이트의 멋진 질문을 활용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영어에는 be 동사라는, 아주 뜻이 넓은("앉다", "눕다", "걷다" 등 다양한 뜻을 포괄하는) 동사가 있어서, 마이클 화이트가 내담자에게 권한을 아주 포괄적으로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be 동사가 없다. 혹은 "존재한다"는 동사를 쓴다고 해도 뜻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싶으세요?" (거봐, 이상하잖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 앉고 싶으세요?" 그렇다. "앉다"라는 동사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내담자가 불편해 했다. 무척 어색해 하면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배려했는데? 내담자 중심적인 태도를 끝까지 밀어 붙여 보려고 하던 참인데?
변화에 관한 이론/가설(theory of change)라는 개념이 있다. 상담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변화에 관한 이론/가설을 가진다. 이것은 (1) 상담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야 문제가 개선되거나 해결될 것인가, (2) 상담자의 역할은 무엇이며, (3) 내담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뜻한다. 그래서 예컨대 해결중심 실천가라면 "상담은 내담자가 주인공이고, 실천가는 질문에 대한 전문가이다. 상담을 하게 되면 상담자는 정교한 질문을 통해서서 내담자가 스스로 상담 목표를 정하고 강점과 자원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라는 변화에 대한 이론/가설을 가질 것이다.
내가 마이클 화이트의 방식을 적용하려고 했을 때,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내가 설정하고 들어간 변화에 대한 이론/가설과 내담자가 품고 있던 변화에 대한 이론/가설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상담자가 일정한 권위와 전문성을 가지고 자신을 이끌어 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에게 초장부터 뭔가 권한을 위임하면서 앉을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니, (이것은 마이클 화이트가 의도했던 내담자에 대한 배려심을 관철시킨 것이었지만) 뭔가 불편해 하고 어색해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담자를 배려한다는 것, 내담자 중심으로 상담을 이끌어 간다, 라고 하는 것도... 내가, 즉 상담자가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배려 문제로 돌아가 보자. 배려는 무엇인가? 배려에 대한 관념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배려하는 행위가 내담자에게는 전혀 배려가 아닐 수 있고, 내가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행위가 내담자에게는 배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배려란 고정된 개념도 아니지만 완전히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닌, 비유컨대, 구름 같은 것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있지만, 바람과 기후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내 앞에 앉아 있는 내담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배려인지 알아내려고 세심하게 노력하는 자세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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