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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걷고 있는 그대에게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1. 2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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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된 어느 동료 소식을 들었다. 무책임하게 기관을 운영한 법인에게 대단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일을 그만 둔 사람이다. 여러 모로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 힘들다는 말을 했다. 서로 오래 알지는 않았지만, 자기 분야에서 단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달려온 지난 날을 한 눈에 알아챈 우리.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디테일한 부분은 모르지만), 동시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에(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쓰레기."

     

    예상하지 못했던 참담한 일을 겪고, 직장을 그만 두고, 5년 동안 사회적으로 거의 완전히 철회된 삶을 살았다. 내 사정이 너무나도 다급했기에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가슴 아파 울고 불고 했을 때도,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되어 나라가 뒤집히고 광화문 네거리에 수백만 인파가 몰렸을 때도, 나는 다섯 평 원룸에 자신을 가두고 벌을 주었다. 나이 40이 넘어서 사지가 멀쩡한데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끝도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쪽 팔리고 한심하며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을 오로지 가난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치신 분들이시다. 특히,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가하는 온갖 학대와 폭력 속에서 자라셨지만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끈질기게 노력해서 끝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드신 노동자셨다. 어릴 적, 이 어머니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씀: "사람이라면 일을 해야지. 사지 멀쩡한데 일 안하면 죽어야 해." 너무 힘들어서 5년 동안 터널 속을 헤매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의 말은 내 심장을 찢어 놨다. 

     

    "그래, 난 죽어야 해."

     

    마음 속에서 끝없이 휘몰아치던 온갖 폭풍우에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목숨만 건져서 살아 돌아왔을 때만 해도, 내가 쓰레기 같은 삶을 마감하고 인간답게 살기란 힘들어 보였다. 터널 속에서 내가 한 일이란 겨우 먹고, 자고, 싸고... 책읽기였다. 참담한 일을 겪은 후에 40평생 모았던 책 대부분을 버렸지만 잉여인간으로 살았던 5년 동안 또 모았던 게 바로 책이었다. 책이 밥을 먹여주나? 이런 생각,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는? 현실을 도피하려 읽고 또 읽었던 책이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사실, 인간에게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이 많이도 생겨난다. 굳이, "밀양" 같은 영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다. 평생 이유를 따져 보고 또 따져 봐도 이해가 안가는 일, 당당하게 벌어진다. 어떤 일은 개인들의 선의와 상관없이 사회구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일은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신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는 말 따위를 한다면? 그냥 개소리처럼 느껴진다. (공감과는 대단히 먼 이야기.) (건강한 신앙을 모욕하려는 게 "절대로" 아니다. 저런 말을 생각 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 뿐.)

     

    내가 고통을 이겨낸 이야기도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다. 나는 내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사실은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것 같다. 수십억 명의 하찮은 친구들을 줘도 바꾸지 않을 좋은 친구(정상경, 신현애)들이 있었고, 내 선의를 선의로 이해하고 받아준 좋은 인연이 허다하게 많았다. 심지어는 어쨌든 그래도 내가 남자라서, 아들을 포기하지 못하신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던 것도 그렇다. 그래서 분명히 내가 노력해 온 부분이 있지만, 그 의지 또한 초인적인 것이었지만, 그냥 "노력하면 잘 될 거다"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희망. 

     

    그리스 신화를 보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제껴서 수많은 악덕을 세상에 풀어놓은 인간에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요~ 저도 있어요. 저를 꺼내 주세요." 그는 바로 희망. 한 때 "내가 어떻게 죽어야 할꼬?" 매일 같이 죽을 계획을 세웠던 나도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희망을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고운 노래 소리처럼 들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절망의 늪 저 깊은 곳에서는 "다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노래가 희미하게나마 들리고 있었던 같다.


    터널을 걷고 있는 그대, 

    너무 두려워 말아요. 

     

    터널 속을 걷다 보면

    춥고, 외롭고, 슬프겠지만,

    그대가 살아 있는 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것.

     

    부디, 포기하지 말아요.

    계속 걸어가요.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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