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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그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걸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니?"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4. 15. 06:13728x90반응형
“띠리링~”
몇 년 전, 대학원에서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쳤던 학생에게서 다소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이 학생! 똑똑히 기억한다. 첫 시간에 “이 수업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말해 보라고 했더니, “교수님, 저는 강점관점이 세상에서 제일 싫습니다!” 라고 말한다.
당시 내 속 마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대학원 강단에 섰는데, 초엽부터 이렇게 초를 치다니? 게다가 해결중심상담은 강점관점 끝판왕인데 이 수업엔 왜 들어 오셨어요?"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그냥 “아~ 네~” 라고 말하면서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학생이 보낸 문자를 읽으면서, “강점관점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학생이 왜 그다지도 적대적으로 말했는지 한 방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읽어 보니,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학생이 보내온 문자 내용>
교수님, 안녕하세요? 해결중심상담 수업 들었던 ***입니다. 제가 오늘 수업을 듣다가 왜 강점관점이 그렇게 싫었는지 알게 되었는데요. 꼭 알려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오해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현장에서 강점관점이 싫었던 것은 클라이언트인 아동이 배제된 상태에서 전문가들(교수, 상담가, 관장 나부랭이들)이 찾아내는 강점이 거북해서 였던것 같습니다. “너희가 그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걸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니?"이런 불량한 마음이었던것 같습니다. 강점관점은 클라이언트가 중심에서 스스로 강점을 발견해 나가야 강점인 것인데 말이죠. 강점관점이 제일 싫다고 외쳤던 이유는 현장에서 갖게 된 무지와 오해가 만들어낸 것임을 꼭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아하! 강점관점에도 두 가지가 있다: (1) 마음씨 좋은 전문가가 따뜻한 마음으로 당사자 대신 강점/자원을 찾아주는 것. (2) 당사자가 자신의 생각에 기초해서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강점/자원을 찾아내고 말하는 것.
나는 “절충적인” 강점관점 실천가라서, 전문가가 대신 강점/자원을 찾아주는 방식도 거부하진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라도 하는 방식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부정적으로 과거를 파헤치는 방식보다는, 적어도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이 아무리 관대하고 긍정적이어도, 당사자 자신의 생각만큼 좋진 않다.
그대가 길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어떤 이가 친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안녕하세요? 지금 이 길을 통해서 이 방향으로 가고 계시는데요, 제가 나름 전문가거든요. 이 방향으로 가시기보다는 저 방향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백이면 백, 이런 상황에서 당황스러운 느낌과 함께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냐?” 이런 마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한 말이 맞다고 해도 그렇다. 우리는 사람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살지는 않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뿐이다.
다소 뜬금 없긴 했지만 학생에게서 반가운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답장을 보냈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운 하루였는데, 덕분에 감사와 뿌듯함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내가 보낸 답문자>
하하... 엉뚱했지만, 진심은 충분히 전달되었어요. 선생님의 짧은 문자가 제 영혼을 울리네요. 전문가가 당사자 대신 강점을 발견해 주는 방식은 아무리 모양이 좋아 보여도 결국 일종의 시혜에 불과하죠. 반면에, 예컨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했다면, 타인이 보기에 아무리 어설퍼 보여도, 그 자신에겐 위대한 진전입니다. 선생님과 선생님 가족 분들께서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감사해요.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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