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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선생님께 숙제를 내 드려도 될까요?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4. 19. 14:16728x90반응형
내가 강점관점실천을 1:1로 가르치고 있는 제자가 공부 시간에 물어왔다.
제자: "저기, 선생님... 이번엔 제가 선생님께 숙제를 내 드려도 되나요?"
나: "나한테 숙제를 내 준다고? 하하하... 거 재미있네요. 말씀해 보세요."
제자: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제가 내 드리는 숙제는 이거에요: 지금 아내 분은 제외하시고, 지금까지 선생님 삶에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을 꼽아 보시고, 선생님은 그 분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셨을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글로 써 보세요."
나: "이 숙제를 제가 받을 것 같아요, 안 받을 것 같아요? 당연히? 받습니다. 좋아요. 한 번 써 볼게요."나는 어떤 맥락에서 이런 숙제를 받았던가?
나와 1:1 제자는 매주 일요일 오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강점관점실천 관련 책을 강독한다. 관련 서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단락씩 읽으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말한다. 내 1:1 제자는 머리가 썩 좋은 데다가 생각이 깊으면서도 자유로운 스타일이라서, 함께 토론을 나누면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최근에는, 이야기치료(Narrative Therapy)를 만든 대가,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가 쓴 대표작, "이야기치료의 지도"라는 책을 읽고 있다. 특히, 며칠 전에는 그 중에서도 제 3장, "회원재구성: 인생 회원을 재구성하는 대화" 대목을 읽었다.
"회원재구성 대화"가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자신의 삶을 타인과 독립된 개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곤 한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행동"이라고 말하듯이, 개인의 정체성을 배타적인 독립성에서 찾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의 정체성은 애초부터 관계 안에 얽혀 있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 조금씩 나누어 갖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이혼한다면, 그 한 사람과만 헤어지는 게 아니라 그와 나누었던 모든 기억과 헤어지는 것이고, 그 사람 통해서 알게 된 모든 관계와도 단절되는 것이다. 그대의 정체성은 그와 함께 나눈 모든 관계 속에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주변 사람들과 맺고 있는 인간 관계를, "그대가 회장이고 그 사람들이 회원으로 속해 있는 어떤 모임"이라고 비유해 보자. 그런데 이 모임을 구성하는 사람들(회원들)이 모두 그대를 부정적으로 규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예컨대, 그대의 어떤 한 면만 보고 "겁장이"라고 규정한다고 상상해 보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그대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해도) 그대의 정체성은 "겁장이"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터이다. 반대로, 모든 회원들(다시 말해서, 그대의 주변 사람들)이 그대를 "준비성이 많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규정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대는 전혀 바뀌지 않아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그대의 정체성은 "겁장이"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바뀔 수가 있다.
"회원재구성 대화"는 그대의 삶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사람들보다는 긍정적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재구성해서, 결과적으로 그대의 정체성을 다시 규정하는 대화 방법이다.
이를 사회사업적으로 재해석을 해 보겠다. 사회사업가는 생태도를 많이 그린다. 그 안에는 클라이언트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환경이 강조된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누가 그에게 도움을 주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아야만 하는 경제적,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약자인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를 도와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어떤 의미일까?
그대도 생각해 보라. 우선, 늘 당신에게 도움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 같은) 사람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질문해 보라: 그는 당신에게서 어떤 도움을 받고 있을까? 그에게 당신은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일까? 당신은 그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주었을까? 당신 덕분에 그의 삶은 어떻게 긍정적으로 달라졌을까? (그대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그대가 가진 통념을 뒤집는 질문이다. 늘 그대에게 도움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대에게 무엇인가는(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받고 있다. 주고받는 관계만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내 1:1 제자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 바로 이런 질문이었다: "지금 아내 분은 제외하시고, 지금까지 선생님 삶에 좋은 영향을 준 사람들을 꼽아 보시고, 선생님은 그 분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셨을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글로 써 보세요."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두 사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유치원 교사의 심장을 가진 변호사 친구, 정상경>
<양털 안감처럼 마음이 보드라운 대학 동기, 신현애>
그렇다면, 나는 이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상경에게: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상경이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그에게 강요한 적도 없고, 늘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가 잘 되기만을 바랐다. 그가 나에게 한결같이 편하게 대해 주었듯, 나도 그에게 한결같이 편하게 대해 주었다. 언제 만나도 마음 편한 친구. 사실, 흔치 않다.
현애에게: 현애에게도, 나는 단 한 번도 함부로 그를 판단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조건 없이 수용적이었고,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나름대로는 진솔하게 대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눌 때 내 약점이나 단점을 포함해서 늘 숨김없이 말했다. 그래서 그도 나에게 늘 솔직하게 말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는 이 친구들에게 무엇보다도 "언제나 한결같이 믿을 만한 친구"였던 것 같다. 그리고 "늘 부담없이 만나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던 것 같다. 이런 친구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마지막으로, 1:1 제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그에게 어떤 선생인가? 아니, 어떤 사람인가?"
안혜연 선생님에게: 그에게 나는 선생 이전에 좋은 친구일 것 같다. 나는 나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친구와 교류하는 편이다. 오로지 친구가 가진 성품이나 인성을 중시한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마음 깊이 존경한다. 내가 그를 학문적/임상적 딸/조카로 여기는 것처럼, 그도 나를 학문적/임상적 아버지/삼촌으로 여길 것 같다. 강점관점 실천에 대해서 깊이 배우고 싶은데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선생이 되어서 그의 공부를 도와 주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해결중심모델 공부에 미쳐 있을 때, 잘 아는 선생이 나타나서 내 공부를 도와 줬다면 어땠을까? 지금 안혜연 선생님이 보여주는 발전 속도를 능가했을 수도 있다. (사실, 어쩌면 나야말로 나 같은 선생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안혜연 선생님을 만나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 느꼈을 것 같다.
안혜연 선생님과 나누는 관계 속에서 (그의 눈으로) 나를 돌아 보면, 나는 "썩 괜찮은 선생"이다.
(헹이 샘~ 제가 작성한 숙제, 어떤가요? ㅎㅎ)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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