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호기심: 강점관점으로 편안하게 대화하는 방법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1. 6. 27. 11:54
    728x90
    반응형

    내 유일한 1:1 제자(아내와 약속했다, 더는 1:1 제자를 받지 않기로), 안혜연 선생님과 일요일 새벽 공부(매주 일요일 새벽 6시 30분 ~ 8시 30분)를 하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안혜연 선생님께선 (여성) 청소년에게 아주 쉽게 접근하는 재주를 가지고 계시는데, 남자들은 어떻게 대하시는지 궁금했다: "아... 사실, 저는 남자들하고 더 편하게 이야기 하는 편이에요. 왜 있잖아요. 말이 없고 무뚝뚝한 남자분들. 츤데레, 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분들요. 저는 그런 분들이 오히려 더 편하고...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이 귀여워요. 그래서 옆에 가서 관심을 보여 드려요. 그분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자꾸 질문을 하는 거죠. 혹시 귀찮아 하시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반응을 보이시면 더 적극적으로 궁금한 걸 물어봐요. 그러면 본인이 아는 걸 신나게 이야기 해 주시죠. 겉으로 아무리 무뚝뚝해 보여도 일단 태도가 바뀌면 쉬워요. 얼마든지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순간, 강한 흥미를 느꼈다. 안혜연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태도는, 내가 10년 동안 공부해 온 해결중심적 태도, 즉 '알고 싶어하는 태도(알지 못함의 자세)'였다. 이런 태도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여쭈어 보았더니,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으신다: (다음 글은 안혜연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다.) 

     

    제목: '진짜 뭘 모르는' 내가 품어온, '알고 싶어하는 자세(Not-Knowing Posture)' 


    대학생 시절, 몽골로 1년 간 단기선교를 갔다. 당시 교회 건물에서 한국 선교사님들과 함께 살았는데, 그 중 부모님 연세 쯤 되시는 무뚝뚝한 남자 분이 계셨다. 표정이 거의 없는 분이셔서 초반엔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마음에 안드시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니 워낙 조용한 분이셨고, 묵묵히 할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워낙 성실한 분이셔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어느 날, 평소처럼 청소를 하고 계시던 집사님께 “어떻게 매일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청소를 하실 수 있어요?” 여쭤 봤다. 집사님은 '허허' 웃으시며 “이 곳에서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야. 이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할 수 있잖아” 라고 말씀하셨다. 짧은 대화였지만 ‘청소 = 귀찮은 일’로 여겨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시는 마음이 대단해 보였다.

    그 뒤로 나는 아침에 집사님과 커피 타임을 가지며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교회가 신축 건물이라 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집사님께선 마감 처리가 부족한 부분, 깨진 부분을 슬쩍 보완해주고 계셨다. “이건 왜 이렇게 된 거에요?", "어떻게 보완하는 거에요?", "왜 이 자재를 써야 해요?", "전 이런 걸 하나도 몰라서 궁금해요, 알려 주세요!" 조잘조잘 여쭤보는 내게 집사님께선 늘 활짝 웃으며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자재, 집 짓는 과정, 건축 시 중요한 부분, 건축 일을 하면서 살아오신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건축 일을 하셔서 일을 아주 잘하시는 집사님께서 경험하신 사연을 들으면서 참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무뚝뚝하시던 집사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친절한 수다장이(우리는 평균 이야기를 시작하면 2시간은 기본이었다) 집사님만 남았다.

    10년 이상 시간이 지났지만 요즘도 집사님께서는 우리 교회에서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활짝 웃으며 “딸~”이라고 불러 주시곤 한다. 그러면 집사님에게서 주로 무뚝뚝한 모습만 보신 분들이 집사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이 원래 그렇게 웃음이 많은 분이었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사님이 얼마나 성실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수다쟁이인지 한참 동안 자랑하곤 한다.

    해결중심상담을 공부하면서 배운 ‘알지 못함의 자세(알고 싶어하는 자세)'는 ‘실천가는 내담자 문제와 변화에 대한 자기 선입견이나 기대를 전달하는 대신, 내담자의 생각을 더 알고 싶어하는 태도를 보이며 행동해야 한다(해결을 위한 면접, PETER DEJONG, INSOO KIM BERG)’는 태도다. 나는 이 '알지 못함의 자세(알고 싶어하는 태도)'를 아주 편하게 느끼곤 했는데, 오늘 수업 중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는 학창 시절, 에너지를 학업보다는 방황에 쏟았기 때문에 남들은 다 아는 상식에 대해서 잘 모른다. 역사, 문화, 사회, 과학… 어렸을 땐 이 부분이 약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는 게 많은’ 게 오히려 강점이라고 느끼고 있다. 모르는 척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실제로 모르는 게 참 많아, 진정성(겸손함)이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겸손한 것이 아니라 실제니까!).

    쉼터에서 청소년을 만날 때도, 아이들이 궁금한 분야에 대해서 내게 질문할 때면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내가 너희 나이 때 팔팔 노느라고 공부를 안 했어. 그래서 모르는게 너무 많아. 내가 잘 몰라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네가 알고 있는 걸 선생님한테 가르쳐 줘, 알고 싶어!” 그러면 아이들은 신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노력한다. 가족, 학교생활 때문에 힘든 아이든,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든, 내성적인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는 아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혹은 관심 있는 것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조잘조잘 신나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신나고 즐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설명해 주는 내용을 잘 모르는' 내가 참 자랑스럽다. 모든 분야에서 내가 모르는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안혜연 선생님 글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겠다: 

     

    (1) 강점관점으로 긍정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는 법: 나는 해결중심모델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내담자에게 '좋아하는 것(취미)'과 '잘하는 것(강점)'을 물어보라고 가르친다. "평소 휴일에 뭘 즐겨 하세요?", "요즘 취미가 뭐에요?", "시간이 나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내담자가 잘 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심사를 끌어낼 수 있다. 좋아하는 것 중에서 잘 하는 게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공식을 가르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선생님, 이거 왠지 좀 어색해요' 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이런 반응은 꽤 현실적이다. 인정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대화를 의식적으로 끌고 가게 되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느낌이 조금은 들 것 같다. 하지만 안혜연 선생님 글을 읽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건 왜 이렇게 된 거에요?", "어떻게 보완하는 거에요?", "왜 이 자재를 써야 해요?", "전 이런 걸 하나도 몰라서 궁금해요, 알려 주세요!" 이런 질문이 어색한가? 부자연스러운가? 안혜연 선생님께서 무뚝뚝한 남자 집사님에게 접근하면서 사용하셨던 질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2) '알고 싶어하는 자세(알지 못함의 자세)'는 나를 낮추는 겸손한 자세: 알지 못함의 자세, 라는 말처럼 강점관점실천 영역에서 오해를 많이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개념도 없다. '나는 분명히 많이 아는데? 내가 아는 걸 어떻게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이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등등. 그러나 '알고 싶어하는 자세'는 '뭘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 경험에 대해서 얼마나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가 본질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진 긍정적인 힘과 자원에 대해서 얼마나 순수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느냐, 가 핵심이다. 안혜연 선생님께서 자신이 청소년기에 잠시 방황을 하시느라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고, 그래서 상식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겸손한 태도이다. 그런데 자존감에 크게 상처를 받지 아니하면서, 이 부분을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으로 보시는 태도가 자체가 무척 놀랍다. 이 지점에서 느낄 수 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못나서가 아니라 잘났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다.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도 존경을 받으신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내가 비록 '선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종종, 아니 자주, 안혜연 선생님께서 선생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뭔가 많이 알아가는 노력은 중요하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축적한 지식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지식만 중요하지는 않다.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실제로 구현할 것인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구현할 것인지도 너무나 중요하다. 특별히, 실천 과정이 중요한 사회사업에선 더욱 그러하다.

     

    서로 선생과 학생이 되어주며 성장하고 존경하는 우리 사제 관계가 특별하다. 

    고맙습니다. 안혜연 선생님.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