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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으니까, 너무 혼내지 마세요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7. 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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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과 병동>

     

    윤복: (전화통화) L-튜브면, 콧줄...이죠? 

    간호사: 네 콧줄 바꿔 달라는 요청이요. 

    윤복: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 네. 

     

    <병실> 

     

    환자: 아~

    윤복: 꿀꺽, 하세요. 꿀꺽. 

    환자: 아~

    윤복: 자, 다 됐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환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

     

    <다시 병실>

     

    장겨울: (커텐을 걷으며) 안녕하세요? 

    환자: 선생님, 저 이거... 좀 힘든데요... 

    장겨울: 죄송합니다. 저희 인턴 선생님이 처음이라 넣는 것만 신경 쓰느라 실수했습니다. 제가 더 신경써서 알려줬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환자: 아닙니다. 우리 큰애도 사회 초년생인데, 실수 많이 할 겁니다. 괜찮아요. 이제 편하고, 아주 좋네요. 괜찮으니까, 너무 혼내지 마세요. 네? 

    장겨울: 네. 

    윤복: 정말, 죄송합니다. 

    환자: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흐흐... 

     

    <다시 병실> 

     

    환자의 딸: (아버지 신발 끈을 매 드리고 있다.) 됐다. (웃는다.)

    환자: (운동화를 신고 제 자리에서 뛰며 웃다가, 병실 문앞에 서 있는 윤복을 발견하고 다가 오라는 손짓을 한다.) 

    윤복: (부끄럽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환자: (윤복의 손을 잡으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윤복: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에피소드 06 중에서> 


    약 10년 전, 나는 모 암병원에서 의료사회복지 수련생(인턴)이 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에 참여했다. 병원에서 일한다는 게 대체 뭔지, 수련생 2명을 뽑는데 80명이 지원했단다. 그러니까 1년 동안 고생스럽게 병원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40대 1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운좋게, 살인적인 필기시험 경쟁률을 뚫었고 차관급이라는 원장님 면접도 통과했다. 당시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으므로, 내 나름대로는 미래를 두고 도박을 하듯이 중대한 도전을 한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병원에서 '충격적으로 거지 같은' 선배를 만났다. 그녀는 사회사업실 실장이었다. 나와 동갑이었고 유명한 대학교 출신으로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감은 커녕, 온갖 뒤틀린 우월의식과 열등감으로 점철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1,000시간 동안 그녀 밑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제대로 된 지도를 거의 받지 못했다. 아무리 따져 보고 옛날 일을 되살려 보려고 해도 의미 있는 지도를 받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녀는 사람을, 자신이 나온 대학교나 그 이상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저능한 사람으로 나누었다. 그러니 나처럼 (세상이 보기에) 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은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다. 나를 배경에 있는 화초처럼 생각했는지, 하루 종일 자기 속 이야기를 가감없이 떠들어댔다. 상식으로 들어 보면 낯이 뜨거운 이야기가 난무했다: 여기 그가 생각하기에 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는데 '지잡대를 나온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녀는 박사 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다. 좋은 대학교이니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유학을 다녀오지 않더라도) 지방대 교수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었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자기 박사 공부만 했다. 하루 빨리 연구 실적을 쌓아서 지긋지긋한 병원을 떠나고 싶어했다. 나는 3개월 만에 알게 되었다. 병원 규모에 비해서 인턴 수를 많이 뽑은 이유를. 내가 운좋게 선발된 이유를. 그녀는 인턴을 뽑아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키고, 자기는 편하게 박사 공부를 하려고 했던 거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면 고마워서라도 지도를 잘 해 줘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여유 따위, 그녀에게 없었다. 나는 방치됐다.)

     

    3개월을 버티고 나서 그만 두려고 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그 업계는 전형적인 '희망고문' 세팅이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가운을 입고 싶은 사회복지학과 학생은 널려 있으니, 수련생을 뽑는다고 하면 40대 1 경쟁률이 형성되었다. 헌데, 이 살인적인 경쟁을 뚫고 들어와 보면, 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고, 병원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런데 학력 등 스펙은 엄청나게 요구하고... 젊은 친구들 뽑아서 잘 하면 정규직 주겠다고 흔들면서 경쟁시키다가 탈락시키곤 했다. 

     

    수련 중도 탈락을 염두에 두고 엄청나게 고민을 하던 나를 붙잡은 건, 의료사회복지사를 딸 수 있다는 희망도,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아니었다. 소아암을 앓고 있던 환아 세 명이었다: A는 8살 남아로 뇌종양 환자였다. 경기도 모 지역에서 개척교회 목사로서 일하시는 착한 아빠를 둔 이 아이는, 수술 후 기억 기능이 다소 손상되어 나를 볼 때마다 "아저씬 누구에요?" 묻곤 했다. B는 15세 여중생으로 골육종 환자였다. 집안은 파탄 직전인데 혈육이라고는 방황하는 오빠 밖에 없던 외로운 친구였다. 언론 지상에서만 접하던 '가난한(수급자) 소녀 가장'이었다. C는 이제 대학교에 갓 입학한 19세 남자였다. 얼굴에서 귀티가 나고 너무 밝은 성격이라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친구라고는 볼 수 없는 훌륭한 친구였다. (지금도 밝게 웃던 그 빡빡머리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아암 환자들을 만나면서 참 좋았지만, 이 세 친구를 특별히 인용한 이유는... 셋 다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려운 상황인데도, 이 세 환아는 살아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온갖 치료(항암 화학치료, 방사선 치료 등)를 작은 몸뚱아리로 버텨내고 있었다. 배우는 게 없다고, 거지 같은 슈퍼바이저를 매일 아침마다 (속으로) 욕하면서도 내가 중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이 친구들 덕분이었다. 포기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결국, 세 친구 중에서 두 친구는 하늘나라로 갔다. 솔직히, (그냥 현실적으로만 말하자면) 계속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나은 형편들이었다. 무사히 살아 남는다고 해도, 온갖 빚과 집안 불화 등으로 더 지옥 같은 모습을 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나를 볼 때마다 '아저씬 누구에요?'라고 묻던 친구만 살아 남았다. 그 친구는 퇴원할 때에도 '근데, 아저씬 누구에요?'라고 말을 했는데, 하하하 웃으면서도 눈물을 애써 참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 [시즌 2] 1. 산모와 태아를 도와 주고 싶었어 장겨울: 이 환자 분, 잘 하면 성공할 수도 있겠는데요? 추민하: (마우스를 스크롤해서 한 차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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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콧줄을 갈아야 하는데 그건 그냥 두고 새로운 콧줄을 심은(?) 율제병원 인턴 윤복. 환자 호흡을 도와 줘야 하는데, 대단히 인턴스러운 실수를 해서 오히려 환자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환자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아닙니다. 우리 큰애도 사회 초년생인데, 실수 많이 할 겁니다. 괜찮아요. 이제 편하고, 아주 좋네요. 괜찮으니까, 너무 혼내지 마세요. 네?" 실수해서 위축되고 미안해 하고 있는 인턴 선생 마음을 공감한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하며 오히려 따뜻하게 위로한다. 

     

    문득, 수년 전 내가 어깨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 수술받고 2주 정도 병원에서 생활했던 때를 떠올려 본다. 환자는 그냥 누워만 있어도 힘들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올라온다. 몸을 뒤척이는 것도 힘들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기본적인 활동을 하기도 힘들다. 세상 기본적인 일을 하는데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힘들다. 그래서 의료진이 실수를 하면 짜증이 더욱 빨리, 많이 난다. 안그래도 호흡이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아무리 처음이라도 의사가 실수하면 화 난다. 

     

    하지만 (비록 드라마이고 판타지라고 해도) 위 장면에서 환자가 보여준 여유와 공감 능력은 시청자들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그대도 이런 생각, 한 적이 없는가? 전문가랍시고, 뭔가 도와주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 본인이 참말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타인에게 정중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본 기억. 지독하게 어렵고 외로운 길을 용케 잘 헤쳐 나와 준 지역 주민/우리 복지관 이용인. 

     

    나는 아직도 정말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으면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간 소아암 환자 두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병실에 놀러 갔을 때,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슬며시 보여주며 배시시 웃던 여중생 환자 B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늘 어설프고 썰렁했던 내 농담을 어른처럼 받아 주면서, '살아서 꼭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던 듬직한 빡빡머리 청년 C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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