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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아니요, 싫어요, 뭔데요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저항하는 내담자를 돕는 비법(책) 2021. 10. 4. 21:05728x90반응형
내가 사회사업가 동료들에게 해결중심모델을 가르치면 거의 언제나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를 보통 만나시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상담을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인 내담자를 주로 만납니다. 해결중심모델을 직접 배워 보니,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좋고, 여러 가지 질문 테크닉을 배우는 과정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해결중심 질문이 생소하고 어렵다는 느낌이 드네요. 내용도 낯선데 방식은 더 낯설어서 무척 어렵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저희가 주로 만나는 비자발적인 내담자를 도울 때는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안될 것 같아요. 저희가 만나는 내담자는 ‘몰라요’, ‘아니요’, ‘싫어요’, 뭔데요’ 이 네 마디 말을 주로 사용하거든요.”
이 말씀은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참 솔직해서 좋은 말씀이다. 현장에서 일하시면서 느껴 오신 현실적인 어려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다음으로 이 말씀은 누구도 쉽게 풀기 어려운 방정식이다. 그대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주고 싶어할지라도, 상대가 받지 않겠다고 하면 무용지물이다. 상담은 관계가 있고 난 후에야 의미가 있는데, 아예 처음부터 나를 배척하고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고 나오는 (듯 보이는) 상대와 무슨 상담을 할 수 있으랴.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아무리 답하기 힘들어도 내가 답해야만 하는 질문이다. 현장 동료들께서 해결중심모델을 ‘빛 좋은 개살구’로 여기지 않도록 도우려면, 반드시 정면으로 직면해서 그럴 듯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다. 상담이든, 대화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말에는 절대로 반응조차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 마음을 손쉽게 여는 방법은 없다. 만약, 어딘가에 그런 ‘도깨비 방망이’가 있다면 제발 나에게 알려 달라. 억만금을 줘야 한다고 해도 사고 싶다.
다음으로, 여러분께서 알고 계시고 배우고 계신 해결중심모델은,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 협조해 주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하는 내담자를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격렬하게) 저항하는 단계를 일정하게 넘어선 내담자를 상정하고 만든 모델이다. 그렇다면 저항하는 내담자에게는 해결중심모델을 적용할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본격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내담자를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작은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그래서 이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활용/응용하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해결중심모델에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와 맺는 관계를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눈다: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특성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정해지는 일시적 유형이라는 점을 주의하라. 쉽게 말해서, 특정 유형으로 고정되어 태어난 사람은 없으며, 누가 누구와 만냐느냐에 따라서 관계 유형이 가변적으로/임시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A 내담자는 J 상담자를 만날 때와 K 상담자를 만날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반항만 하는 내담자는 없다.)
첫째, ‘고객형에 있는 내담자’와 ‘보완적으로 돕는 코치/자문가’ 관계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해 보자. 우리가 아는 ‘고객’은 어떤 사람인가? 일단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다. 고객형에 있는 내담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해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객형에 있는 내담자는 자신에게도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다. 이런 내담자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도 뭔가 노력해야 하고,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가 고객처럼 주체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므로 우리도 그에 맞추어서 말하고 행동한다: 필요한 도움을 주되, 그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보완적으로 돕는 자상한 코치/자문가처럼.
둘째, ‘불평형에 있는 내담자’와 ‘불평/불만을 받아주는 공감자’ 관계이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아왔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서 ‘비자발적으로’ 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불평형에 있는 내담자도 기본적으로 자신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해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불평형에 있는 내담자는 자신에게는 문제에 대한 책임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말한다. 따라서 힘든 상황이 개선되려면 다른 사람이 (적어도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상대가 힘들어 하고 있으므로(불평/불만), 그 힘든 마음을 받아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 후에 접근하는 세세한 방법은 생략한다.)
샛째, ‘방문형에 있는 내담자’와 ‘정중하고 친절하게 맞이하는 주인’ 관계이다. ‘방문형에 있다’는 뜻은 이곳에 (단순하게) 방문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타인의 의지에 따라서, 즉 누가 시켜서) 이곳에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방문형에 있는 내담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서(완전히 몰라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문제를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방문형에 있는 내담자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중하고 친절하게 맞이하는 주인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면 안되고, 최대한 그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방문형에 있는 내담자는 ‘타인이 시켜서(강제/의무로)’로, 혹은 ‘타인이 애걸복걸해서’ 이곳에 왔다. 예컨대 판사가 법적인 명령을 내려서 왔다고 치자. 이 사람에게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자신이 원하는 바나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아닐 터. 그를 이곳에 보낸 사람, 판사가 이 사람에게 원하는 바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판사가 이 사람을 이곳에 보낸 이유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본인 의사에 반해서(정말 어쩔 수 없이)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사람은 무엇을 가장 원할까?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서 자율성(자유)을 되찾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 타인이 원해서/시켜서 이곳에 온 사람에게도 ‘원하는 바’는 있다. 그리고 방문형에 있는 내담자에게서 뭔가 협조를 얻어내려면, 그가 원하는 바를 존중하면서 협상해야 한다: 예컨대,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면(당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나에게 협력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라고 말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상담자가 가질 수 있는 ‘조급함’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내담자에게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는 당신이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고 있거나, 조금이라도 빨리 결과물을 얻고 싶어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저항을 힘이라고 규정한다면 어떨까? 예컨대, 줄다리기를 한다면 내가 줄을 당기면 상대도 줄을 당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줄을 당기는 행위는 ‘선한 행위’나 ‘도와주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상대가(내담자가) 줄을 당기는 행위는 ‘저항하는 행위’나 ‘반발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누구의 관점에 기반하고 있는가? 거의 전적으로 내 관점, 전문가의 시각, 상담자의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저항하고 있는’ 내담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떨까? 그대가 선의와 간절한 마음으로 도우려는 행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저항하는 상황’을 전제로 보면, 정반대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조급한 마음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과연 ‘효과가 있을까?’
저항하는 내담자를 만나면,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질문을 마음 속에 품기 쉽다: “저 사람이 수용하지 않아도 멘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계속 다가서야 할까?” vs “아무리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해도 나를 거부하니, 관심을 거두고 멀리해야 할까?” 내가 추구하는 길은 두 가지 길 모두 아니다. 상대가 거부해도 끝없이 대쉬하는 방법도 아니고,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방법도 아니다. 양 극단을 적절하게 절충하는 ‘제 3의 길’이다. 내담자가 처한 상황과 내담자가 상담자와 맺는 관계 유형 및 변화 단계에 맞추어서, 은근하고도 느긋하게, 내담자가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만 다가서는 방법이다. 귀찮게 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방법이다. 그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다. 마침내 그가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방법이다.
기다림. ‘몰라요’, ‘아니요’, ‘싫어요’, ‘뭔데요’ 이런 말을 주로 듣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참 답답하고 막막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단어다. 뭔가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기대했을 우리에게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단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진리에는 음/양 개념처럼 역설적인 면이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가 원하는 협력이 가능해지기를 애타게 갈망하기보다는, 우리가 강렬하게 원하는 바를 가볍게 내려 놓았을 때, 오히려 멀리 보이던, 오래 걸릴 것만 같던 미래가 눈앞으로 다가올 수 있다. 빨리 가면 넘어져서 오히려 늦을 수도 있고, 오히려 늦게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빠르게 도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공감(Empathy)을 강조하고 싶다. 공감은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단순히 언어적으로 반영해서 표현해 주는 기술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 너머에 자리 잡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포착하는 일이다. 상담자는 저항하는 내담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내서(?) 뭔가를 하려고 하기 이전에, 그의 마음, 감정, 생각에 공감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다들 알고 있듯이, 공감이란 동정이 아니다. 한 마디로, 동정은 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 보는’ 행위다. 반면에 공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같은 눈높이로 보는’ 행위다. 그래서 동정을 하면 관계가 나빠지고, 공감을 하면 관계가 좋아진다. 불쌍해 보인다고 접촉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접근하면 저항만 생긴다. 제 아무리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노력이라도, 먼저 상대 마음에 공감부터 하고 난 후에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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