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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초를 피우면 어떤 점이 좋니?
    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1. 11. 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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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 청소년을 해결중심적으로 만나면서 상담하는 대가, Anne Lutz(앤 럿츠) 박사가 있다. 이 사람은 아동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로서, 주로 약물이나 마리화나 중독 문제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과 가족을 상담한다. Anne Lutz 박사가 청소년을 상담하는 장면을 녹화한 동영상을 보면 대단히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Lutz 박사가 약물 중독 문제로 청소년 재활시설에 입소한 10대 소녀에게 묻는다: "너는 평소에 시간이 나면 뭘 즐겨 하니?" 해결중심상담에서는 상담 초반, 내담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내담자의 강점과 자원을 탐색하기 위해서) 취미나 여가 생활을 물어본다. 취미나 여가 생활이라고 하면, 당연히(!) 누가 봐도 그나마 썩 바람직한 활동을 이야기 하게 되고, 해결중심 상담자는 긍정적인 답변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재활센터에 입소한 소녀는 대뜸 'getting high(대마초 하고 뿅 가기)'라고 답한다. 

     

    워~ 워~ 아직 놀라지 마시라. 이 답변에 대응하면서 Lutz 박사가 내놓는 질문이 진짜 놀라우니까:

     

    "대마초를 피우면 어떤 점이 좋은 거니?"

     

     

    (내 생각: "뭐라고라고라고라고요? 대마초를 피우면 어떤 점이 좋냐구요? 야, 이 양반아~ 대마초는 마약이라고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요!) 그러자 소녀가 답한다:

     

    "대마초 피울 때는 문제가 생각나지 않아서 좋아요." 

     

     

    (내 생각: 엇? 이 답변 속에는 뭔가 있는데요? 지금 당장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있어요.) 내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사이에, Lutz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마초를 피우면 또 뭐가 도움이 되니?"

     

     

    (내 생각: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후후... 아냐, Lutz 박사님은 해결중심상담 대가이신데, 확실히... 뭔가 선한 의도가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겠지?) 소녀가 또 답한다: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내 생각: 아하! 두 번째 답변을 듣고 보니, Lutz 박사님 의도/전략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네요. 이 대화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시는지 알겠어요.) 그렇다... 이 양반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대화를 유도할 분이 아니다.


    각설하고, 

     

    최근에 강북교육복지센터 조지민 센터장님께서 내게 교육을 청하는 이메일을 보내셨다. 올해 여름, 서울시교육청에서 주최한 교육에서, 서울시 전역에서 일하고 계시는 교육복지 관련 동료 270명과 함께, 이틀 동안 15시간에 걸쳐서 강점관점실천을 위한 상담 기술을 공부했다. 조지민 센터장님께서는 이때 강의를 들으셨다고 한다. 

     

    "저희 센터에서는 매년 자원봉사자를 양성하여 학습지원, 정서지원, 사회성프로그램 지원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 1:1로 아이들을 만나 동화책을 읽어주시면서 정서적인 지원을 해주시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과 사회성 향상 지원 프로그램, '좋은 친구 모임'에서 보조 강사 역할을 해 주시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보수교육을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재원 선생님을 강사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교육 제안을 수용한 후에, 나는 교육생 분들께 사전 질문을 던졌다: 

     

    "저항하는, 퉁명스러운, 말 안듣는 것 같이 보이는 아동/청소년 마음을 열기 위해서 선생님께서 사용하셨던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가급적이면 구체적으로,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말씀해 주세요."

     

    자원봉사자로서 수년 동안 적극적으로 아동/청소년을 만나오고 계신 분들이므로, 아마도 이번 교육 주제 중 하나인 '공감(empathy)'와 관련된 경험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확신했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에 이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강점을 확인하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사전 질문을 드린 후 1주일 정도 기다리니 조지민 센터장님께서 답변을 취합해서 보내 주셨다. 결과는?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활동가 선생님들께서 적어 주신 답변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역시 이분들은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 01: 꾸준히 밝게 인사하기. 가능한 많은 인원이 인사하기. 처음의 부담스러운 인사가 자연스럽도록 적응하게 하며 큰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임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유지함. 신체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함: '방학 사이에 키가 빠르게 자랐구나', '방학 사이에 머리를 잘랐구나' 로 긍정적인 신체변화에 관해 이야기 함. 

    이재원: 우선, 꼽아주신 활동 자체가 참 친절하고 자연스러워서 좋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낯설고 어색한 마음, 그리고 관심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동시에 헤아리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결국, 선생님처럼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공감하는 자세가 아닐런지요. 

     

    학생 02: 아이의 감정을 공감 해줬을 때가 효과적이었습니다. 신경질 내고, 짜증낼 때 공감해 주면, 바로 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재원: 아이가 보이는 즉각적인 문제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아이가 느끼고 있는 불편한 마음을 먼저 포착해서 풀어 주셨군요?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괜찮으실 것 같은데요? 하산하셔요. (농담입니다. 우리 수업에서 함께 공부하시면 이미 알고 계시고 하고 계시는 활동을 좀 더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학생 03: 다정한 눈빛으로 자상하게 지켜보면서 아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기. 

    이재원: 진정한 자상함은 상대 리듬에 내 몸을 맡기겠다는 태도에서 나오지요. 멋지십니다. 

     

    학생 04: 먼저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을 해 주었습니다. 불만이 많은 학생에게 그래서 화가 많이 났겠구나 하면서 편을 들어주니, 신나게 불만 이야기를 하다가 스스로 자신도 잘못한 게 있는 거 같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한 일은 편 들어 주고 잘 들어준 일이었습니다. 

    이재원: 오! 선생님은 정말로 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함께 공부하려는 취지, 그 자체를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지요.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왜,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선생님처럼 문제 행동 이면에 놓인 아이 감정을 깊이 공감해 준다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인상적인 말씀을 해 주셨어요!) 

     

    학생 05: 마음을 열기 위해서 그들이 관심있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제로 가볍게 대화 하다가 한 명씩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줬던 것 같습니다. 

    이재원: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수업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바로 '기다림'과 '정중함'인데요, 정확하게 이미 하고 계신 듯 합니다.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학생 06: 먼저 다가가기, 경청과 이야기 소재를 찾아서 대화하기, 곁에 있어 주기, 놀아 주기. 

    이재원: 처음 선생님을 만나는 아이들이 금방 마음이 녹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학생 07: 칭찬해 주기, 들어 주기, 공감해 주기. 

    이재원: 그렇죠? 누구든지, 이 세 가지만 잘 해도 아이들 마음을 금방 얻겠지요? 

     

    학생 08: (처음에는) 관심을 안 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다음에 좋아하는 것을 준비해 주면서 "해 볼래" 하고 하며 다가가 보아요. 

    이재원: 캬~ 감탄이 나오네요. 그러니까 관찰하면서 기다리시다가, '정중하게' 다가가시는군요? 이렇게 다가오면 누가 마음을 열지 않겠습니까. 

     

    학생 09: 공감하고, 아이들이 좋아 할 만한 주제나 보드게임으로 친해지기. 

    이재원: 최고로 효과적인 외교 전술은? 역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주제로 친해지기죠. 아마 국가 간에 정상회담할 때도 거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10: 1대1로 얘기한다. 

    이재원: 오~ 너무 짧은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는 알겠어요. 

     

    학생 11: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다음 만남에 그 주제에 대해 사전 공부 및 공감 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만화 등등 아이에게 솔직하게 OO이가 좋아하는 것을 선생님도 해 봤다, 해 보니 어떻더라,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이재원: 역시, 진정성 있게 미리 공부하는 사람을 당할 수는 없겠지요?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12: 하고 싶은 걸 못하고 프로그램에 와서 불평하는 아이 - 옆자리에 앉아서 눈높이를 맞춘다. "OO이 무슨 일 있었어?" "혹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 감정 수용한다. "OO이는 나들이를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속상했구나. 기분이 안 좋았구나." 참여한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래도 오늘 여기 왔네." "오, OO이 멋지게 만들었구만." 자신이 만든 작품을 기분 좋게 들고 나와서 담당자가 정리하는 것도 도와줌.

    이재원: 마치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생생하게 써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이가 보이는 불평/불만은 겉모습에 불과하지요. 선생님처럼 세심하고, 정중하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면, 어떤 아이라도 금새 불편했던 마음을 풀고 의젓한 모습을 보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 13: 관심있는 분야를 관찰하고, 무심히 관심 분야를 소재로 이야기 건네기.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마워하기, 다음에 또 도움받고 싶다고 질척대기. 

    이재원: 무심한 듯, 안 무심하게 접근하기. 도움을 요청하기. 또 도움 받고 싶다고 질척대기. 그동안 선생님께서 쌓아오신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진심으로 인상적입니다. 

     


    "대마초를 피우면 어떤 점이 좋은 거니?"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Anne Lutz(앤 럿츠) 박사가 약물 중독으로 재활센터에 입소한 10대 소녀에게 어째서 '대마초를 피워서 좋은 점'을 물어 보았는지 생각해 본다. 우선, 럿츠 박사는 대마초 피우는 행동을 옹호하거나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마초는 그 자체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대단히 해로운 향정신성 물질이며, 특히나 10대 청소년에게는 그 해악이 더욱 크다(잘 알려진 과학 연구에 따르면, 대마초는 청소년 뇌 발달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고, 청소년 자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당연히(!) 대마초는 소녀에게 수단일 뿐이다. '대마초를 피우면 어떤 점이 좋냐'는 질문에 10대 소녀가 답한 내용을 살펴 보자: (1) 대마초를 피우면 문제가 생각나지 않아서 좋다. (2)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답변을 정리하자면, 결국 이 친구는 '(문제에서 벗어나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럿츠 박사는 이 소녀가 대마초를 수단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어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대마초를 피우면 좋은 점'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 같다. 해결중심치료자로서 이 소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  

     

    "저항하는, 퉁명스러운, 말 안듣는 아동/청소년에게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었나요?"

     

    강북교육복지센터 교육에서 내가 미리 드렸던 질문에 학생들께서 제출하신 답변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방향은 '공감(empathy)'이었다. 피드백에 써 드렸듯이, 학생들께서는 현장에서 아동/청소년을 만날 때 '이미' 충분히 깊이 있게 공감을 하고 계셨다. 그렇다면 공감이란 무엇인가?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깊이 있게 공감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겉으로 보이는 즉각적인 문제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알아내고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부정적인 행동 너머, 상대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성장 욕구'를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 

     

    대마초를 피우는 미국 10대 청소년과 저항하는, 퉁명스러운, 말 안듣는 한국 아동/청소년. 지리적 거리로나 문화적 차이로나 양자 간에 놓인 간극이 어마어마하게 깊고 거대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럿츠 박사가 보여준 상담 장면은 해결중심모델을 전형적으로 적용한 장면이고, 내가 교육복지센터 활동가 선생님들과 함께 나눈 사전 질문과 답변은 칼 로저스 박사가 강조한 공감/수용/진정성과 관련이 깊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세세하게 뜯어 보면 해결중심모델과 칼 로저스 박사의 사상은 상당히 차이가 많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바'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을 해결중심적으로 도울 때도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니?'를 알아내야 하고, 저항하는/퉁명스러운/말 안듣는 아동/청소년에게 공감을 할 때도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였)니?'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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