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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나만 덕선이냐고!!!
    지식 공유하기(기타)/돌아오라 1988(공감 텍스트) 2021. 12. 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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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엄마, 노을(남동생): (박수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보라(누나)~ 생일 축하합니다~ 우~ 

    보라(언니):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며) 후~

    노을: (케이크을 자르려고 하며) 잘 먹겠습니다아~ 

    아빠: (오늘이 손을 붙잡으며) 아이~ 잠깐만 기다려잉. (초를 뽑는다) 요렇게, 세 개 뽑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자, 됐어, 됐어. (불을 모두 붙인 후에) 자! 이제 우리 둘째 딸 생일 파티! 자, 하나, 둘, 셋. 생일 축하...

    덕선: 하지 마, 진짜! (울부짖으며) 내가 얘기 헀잖아! 언니랑 같이 (생일 파티) 안 한다고 얘기 했잖아! 왜 맨날 내 말은 안 듣는데? 내가 언니랑 (함께) 생일(파티) 하기 싫다고 엄마랑 아빠한테 얘기 했잖아! 

    엄마: 올해만 같이 하고, 내년엔 따로 해 줄게... 

    덕선: (울부짖으며) 작년에도 그랬잖아! 재작년에도! 왜 맨날 나한테만 그래? 내가 만만해? 난 뭐,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사람이야? 왜 나만 계란 후라이 안 해줘? 내가 계란 후라이 얼마나 좋아하는데... 맨날 나만 콩자반 주고... 나도 콩자반 싫어하거든! 그리고, 왜 노을이만 월드콘 사줘? 통닭도! 아저씨가 나 먹으라고 준 건데, 닭다리 언니랑 노을이한테만 주고. 나만 날개 주고. 나도 닭다리 먹을 줄 알거든! 

    아빠: 덕선아. 

    덕선: (더 크게 울부짖으며) 왜! 나만! 덕선이야! 왜 나만 덕선이냐고? 언니는 보라고, 얘는 노을인데, 왜 나만 성덕선이야! 내 이름만 왜 덕선이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이제 와서 내가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너를 아들이라고 더 예뻐한 게 맞더라."

     

    수년 전,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 어머니께선 아들을 낳기 위해서 딸을 네 명이나 임신했다. 그 중 둘만 낳고 둘은 저 세상으로 보냈다. 아들(나)을 낳기 전에도 7살 연상이었던 남편(내 아버지)에게는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으면서 사셨단다. 하지만 아들(나)을 낳고 나서 시댁 식구들, 특히 시어머니(내 친할머니)에게 크게 인정받으셨다고 한다. 역시, 전통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는 아이(특히 아들)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매개로 시댁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고,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이 집에 아들 낳아준 사람이야.'

     

    19살 여름, 어느 휴일에 우연히 작은 누나(둘째)가 쓴 일기를 훔쳐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작은 일기장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언어가 씌여 있었다. 바로, 나에 대한 온갖 욕설과 저주, 그리고 남동생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글. 그때까지 나름 사이가 좋았다고 느꼈던 작은 누나가 나를 거의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으로 묘사해 놓은 글을 읽으면서 그때까지 경험해 본 적인 생경한 감정을 느꼈다. 뭐랄까, 처음으로 내 원가족에 대해서 관찰자로서 들여다 보았달까.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계란 후라이? 요즘 같으면 줘도 안 먹을 수 있는 하한가 음식이지만,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대개 나만 온전히 한 개를 먹을 수 있는, 나름 고급진 음식이었다. 이제 와서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당시에 '계란 후라이는 그냥 원래부터 내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밥상 위에 계란 후라이가 올라오면, 무조건 한 개는 내 차지였으니까. 세 개가 올라와도 하나는 내 것, 두 개가 올라와도 하나는 내 것. 하나만 올라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아버지 밥그릇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내 밥그릇으로 올 때가 많았다. 이러니까 누나가 그런 생각을 했겠지?

     


    아빠: (숨겨두었던 생일 케이크를 꺼내며) 짜잔~ (밝게 웃으면서) 우리 덕선이 생일 축하한다.

    덕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 

    아빠: 오메, 그나저나 벌써 초가 열 여덟개여. 우리 딸이 언제 이렇게 커부렀을까? 흐흐흐...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덕선: (아빠를 말없이 바라본다) ... 

    아빠: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는 어떻게 키우고, 막둥이는 어떻게 사람 맹글어야 하는지 몰라서.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여.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그러니까, 우리 딸이 쪼까 봐 줘.

    덕선: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아빠: 우리 딸내미, 예쁘게 잘 컸어야. 언제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되어 갖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88 올림픽 개막식 기수로). 예쁘게 화장도 하고. 흐흐흐... 그나저나 우리 덕선이 시집 가면, 아부지 서러워서 어떻게 살까. 

    덕선: (울먹이며) 나, 시집 안 갈건데? 

    아빠: 예끼,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녀. 흐흐흐... 자, 우리 요거... 초 붙이고 생일 축하하자. (케이크에 촛불을 붙인다) 아따~ 예쁘네. 덕선아, 생일 축하한다. 자. 

    덕선: (울먹이며 촛불을 끈다) 후~ (박수친다) 아빠도 먹어. 

    아빠: 아냐, 아냐, 아냐... 아빠는 느끼한 거 안 좋아하거든.


    물론, 진짜 현실에서는 이런 장면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오신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둘째 딸을 홀대한 사실을 문제라고 인식조차 못하고 계실 수도. 하지만 어쩌면 '돌아오라 1988'은 대표적인 회고적 드라마였던 바, 이땅에서 눈물을 삼키면서 살아온 모든 덕선이에게, 작가가 따로 달콤한 생일 케이크를 차려 준 듯 하다. 그 시절을 경험한 기성 세대에게는 등을 토닥여 주되, 쌍팔년도 문화를 깡그리 모르는 어린 세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선사한 셈이다. 판타지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가족을 덕선이네 가족과 비교한다면, 나는 아빠가 월드콘을 몰래 사주던 노을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노을이로서 산 세월이 쉬웠느냐? 결코 아니었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려던 모든 것은, 내가 원했던 바가 아니라 본인에게 필요했던 것이었다. 없는 중에서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더 받은 내가 또 다른 덕선이인 우리 누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나도 별로 행복하진 않았다. 솔직히,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거의 언제나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애정과 인정을 갈구했고, 당연하게도 언제나 실패하곤 했다. 

     

    겉모습은 이미 중년이 되어버렸지만, 내 마음 속 아이는 여전히 피부를 뚫고 그 억눌렸던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예컨대, 아내가 나쁜 의도 없이 지나가는 말을 했는데 내가 갑자기 짜증을 낼 때가 있다. 과거에 비하면 현저하게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너무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아내를 놀래킨다. 이제는 내가 용수철처럼 튀어 나오는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줄 알고 있고, 어떻게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서(그러니까 마음을 잘 달래서) 마음 속으로 들여 보낼지 아니까, 참말로 다행이다. 마음 속에 나만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놓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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