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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1개월차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3. 14. 07:31728x90반응형
40대 후반 나이가 된 우리 부부가 태어난지 이제 겨우 30일이 된 신생아를 키우고 있다.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경험한 아기는 '순수한 욕구 그 자체'다. 우리 딸은 까탈스럽지 않고 대체로 순한 편이지만, 역시 배고플 때는 적극적으로 울면서 의사를 표현한다. 대개 손을 입에 가져 가거나, 입을 뻐끔거리거나,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면 배고프다는 신호인데, 분유를 먹일 타이밍이라서 엄마가 젖병 등을 챙기고 있으면 그 짧은 1, 2분을 못 참고 앵앵 울어버리곤 한다.
한 달째 밤잠을 못 자면서도 대단히 세심하고 성실하게 아기 울음에 응답하고 있는 아내가 대단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진다. 워낙에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데다가 모성도 강해서 그런지,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도 짜증 한 번을 내지 않는다. 며칠 전 아내가 한 말: “오빠, 지금 시기가 젖 먹이고 보살피느라 잠을 못 자는 시기니까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감탄했다.)
여전히 나는 종종 딸이 조금 얄밉게 느껴진다. 말을 알아 듣는다면 때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잔소리를 하든지 혼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서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혹은 내 몸에서도 젖이 나온다면 아내 대신 먹이면서 쉬게 할 텐데, 최소한 밤이라도 대신 먹일 수 있을 텐데… 유축기도 가지고 있지만 딸이 먹는 양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어서 지금은 별로 소용이 없다. (나중에 아내가 출근하기 시작하면 좀 더 많이 사용할 듯 싶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관찰한 딸의 모습을 곰곰이 되돌아보니,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내 딸은 왜 엄마 젖을 필사적으로 먹는가? 딸 처지에서는 젖 먹는 활동이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지상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굴 근육이 통제가 안되기 때문이란다. 우리 딸도 종종 웃지만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는 말씀. 이 정도로 자기 통제가 안되고 엄마에게 생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서 울고, 온 힘을 다해서 엄마 젖을 빤다.
아기는 지금 이 순간, 빨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 감각 때문에 목숨을 다 바쳐서 순수하게 빤다. 그러므로 이다지도 맹렬한 반응은 역설적으로 그가 대단히 취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 예컨대 분노나 폭력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내면이 너무나도 취약해서 두려움과 불안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분노를 터트리고 폭력을 행사한다. 분노나 공격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 너머에 있는 취약한 요소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면, 분노와 폭력에 대처할 수 없다.
무시로 미간을 찌푸리는 불수의적 표정,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까지 맹렬하게 울어대는 행동, 가장 기본적인 팔다리 근육도 충분히 자라지 않아서 제멋대로 허공에 허우적대는 모습, 먹으면서 싸고 싸면서 먹는 원초적인 존재. 엄마의 작은 움직임이나 아주 미세한 주변 온도 변화에도 깜짝 놀라는 취약한 존재. 아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흐릿하고 시끄러운 흑백 TV 브라운관 같다고 한다. 100일의 기적, 이라고 하는 게 있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우리 딸도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겠지?
사랑한다, 내 딸. 봄아.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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