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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원서 150권을 읽은 이유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2. 1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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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견은 ‘학식과 견문. 즉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표준국어대사전) 관심이 있어야 찾아보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세상 이치다. 이런 ‘축적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관점이 생기면, 사안의 경중과 선후를 분별하는 안목이 열린다.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란 평을 듣는다.”

    신문 기사를 읽다가 이런 대목을 읽었다. 식견(컨텐츠)은 어떤 주제에 대한 안목(관점)인데, 안목(관점)이 생기려면 해당 주제에 관심을 쏟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기사를 읽자마자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2012년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가족치료 모델 중 하나인 해결중심모델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부시절부터 ‘체계이론’과 ‘강점관점’이야말로 사회사업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결중심모델은 역사적으로 볼 때 어쩌면 체계이론 그 자체인 가족치료 분야에서 태동했고, 강점관점을 끝까지 밀어 붙인 강점관점 끝판왕 모델이었다. 체계이론과 강점관점이 융합된 해결중심모델이야말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실천모델이라고 확신, 미친듯 파고 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출간된 모든 해결중심모델 자료를 읽겠다'는 심정이었다. 3개월 동안 “해결중심”이라는 제목을 달고 서점에 나와 있던 모든 책을 독파했다. 10권을 읽고 나니 뭔가 윤곽이 잡히고, 15권을 읽었더니 머릿속에 이 모델에 대한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20권을 읽고 나서도 내 안에 차오르는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 모델을 개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 질문 기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을까?”, “정서를 외면하는 듯한 특성은 왜, 어떻게 형성된 걸까?” 그런데 책 20권 이상을 읽었는데도 이런 고차원적인 질문을 해소하지 못하자, 좌절감이 느껴졌다.

    “원서를 찾아 볼까?”

     

    이 모델에 관해서 너무나 궁금한 게 많아서 밤이 되어도 도무지 잠이 안오는 상황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덜컥, 영어책을 샀다. 아마존, 이라는 해외 서점에 들어가서 “solution-focused”라고 검색하니 책이 250권 정도 나왔다. 너무 많아서 막막했지만 하나씩 일일이 들어가서 책 개요를 읽어 보았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이 눈에 띄였다: “Beyond technique in Solution Focused Therapy.” 제목이 무려 “기법을 넘어서”란다. 해결중심모델은 어쩌면 기법 그 자체인데, 그걸 넘어선단다. 그래, 이 책을 읽어보자! 바로 주문하고 한 달쯤 후에 태평양을 건너온 내 인생 첫 원서를 손에 쥐었다.

     

     

    헐… 그런데 원서는 원서. “책이 오면 무엇 하나? 읽을 수가 없는데. 아니지. 어떻게든 읽어야지. 한 줄씩이라도 해석을 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영어 사전을 옆에 끼고 220쪽에 달하는 원서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쪽을 읽는데 장장 1주일이나 걸렸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영어깨나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거의 10년 정도 완전히 놓아 버린 감각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이 한 쪽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뭔가 용솟음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불타는 궁금증. 이제 겨우 한 쪽을 읽었는데 나머지 200쪽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궁금했다. 솔직히, 궁금해서 밤에도 잠이 안왔다.

    그래서 번역을 시작했다. 그냥 읽고 끝낼 수가 없었다.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모 장애인복지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통근 거리가 꽤 멀어서 지하철로 왕복 3시간 반이 걸렸다. 그런데 좋았다. 러시 아워 시간대에 사람들 사이에 낑겨서 다녀야 했지만, 내 두 손에는 "Beyond Technique"와 아이폰이 들려 있었다. 왼쪽 손에는 원서를, 오른 쪽 손에는 아이폰을 들고, 메모장 앱과 영어사전 앱을 열어둔 채, 한 줄씩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냥 읽을 때는 대략 무슨 뜻인지만 알아도 괜찮았지만, 이제 번역이 목표가 된 이상, 말이 되도록 작업해야 했다. 쉽고 부드럽게 쓰는 글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번역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독자가 술술술 읽고 무슨 뜻인지 알아 먹는 완전 소화가 목표였다.

    결국, 220쪽을 완역하는데 총 200일이 걸렸다. "아... 이게 되는구나!" 마지막 장, 마지막 줄을 탈고했을 때, 나는 강렬한 호기심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만 있으면 나처럼 영어를 썩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책 번역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옥철에서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메모장 앱과 영어사전 앱과 책을 오고 가면서도, 내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을 여러 차례 읽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뜻이 안 통해서 한 문장을 번역하는데만 며칠씩 써 가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적어도, 다음 장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엄청나게 헤매면서도 하나씩 짐을 치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새벽 길이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번역한 책은 나중에 학지사를 통해서 공식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책 한 권을 번역하고 났더니, 내가 품고 있던 여러 가지 궁금증이 아주 조금 풀렸는데, 곧바로 더 깊은 궁금증이 마음 속에서 피어났다. 이 말은, 원서를 더 많이 번역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왜 못 해? 한 번을 했는데, 두 번을 못하겠어?" 이런 생각으로 원서를 한 권 더 주문했다. (이후 구구절절 사연 생략!) 이렇게 해서 나는 해결중심모델 관련 원서를 약 150권 정도 번역하거나 읽었다(완역한 원고는 매우 적지만).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자니, 단순히 지식 획득이 목적이었다면 10권 정도 읽었을 때 중단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내가 경험 해 보니, 어떤 분야든지 단행본을 10권 정도 읽으면 그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적인 주제 목록과 전체적인 판도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저 좋아서, 완전 미쳐서, 원서 150권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식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식견은 ‘학식과 견문. 즉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표준국어대사전) 관심이 있어야 찾아보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세상 이치다. 이런 ‘축적의 시간’을 거쳐 자신의 관점이 생기면, 사안의 경중과 선후를 분별하는 안목이 열린다.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란 평을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식견을 바탕으로 해결중심모델에 대해서 최근 2년 동안 엄청나게 글을 써서 내 세계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백날 책 많이 읽어봐야 글 써 본 적 드물다면 읽을 만한 글 쓸 수 없다. 절대로 없다. 레알 없다. 누적의 힘이란 참으로 강력해서 많이 써 본 놈이 결국 이긴다. 그것도 단지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해도 될까 말까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메인 작가, 배순탁 작가 블로그 글에서 인용)

     


    많이 읽고, 많이 쓰라. 
    대충 읽고 찔끔 쓰지 말라. 
    압도적으로 많이 읽고 압도적으로 많이 쓰라.


     

    세상에 해결중심모델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서서 내려다 보면서 본질을 꿰뚫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분명한 식견과 관점을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언제,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사람은 적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 해결중심모델을 포기하거나 유연하게 절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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