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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욕을 많이 한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4. 2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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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다~ 옛날 비디오를 틀어 놓는 거에요. 과거는 싹 지나가 버렸는데,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는데, 왜 바보처럼 옛날 비디오를 주구장창 틀어 놓는 거죠?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법륜 스님, '즉문 즉설' 에피소드에서)

    나는 욕을 많이 한다. 물론, 사람들이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전혀, 혹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체면도 지켜야 하고, 왠지 좀 있어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이 없을 때, 특히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욕이 수시로(?) 튀어 나온다: 혼잣말로 하기도 하고, 넌즈시 들으라고 방백처럼 하기도 한다.

    내 딸이 똥을 싸면 아내가 나를 부른다. "오빠~ 우리 봄이 똥 쌌어요~" 그러면 내가 오른팔로 딸을 들고 화장실 세면대 앞으로 출동한다. 아내는 가제수건을 한 장 들고 내 옆에 선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왼손으로 딸 다리를 잡는다. 시큼한(?) 냄새가 위로 올라오지만 아내는 열심히 딸 엉덩이며 이곳 저곳을 정성스럽게 닦는다.

    이 어정쩡한 자세에서 눈을 내려 딸을 보면, 딸 눈이 정통으로 보인다. 날이 갈수록 나를 닮은 얼굴이 나타난다. 요즘 세수를 한 후에 거울을 보면 내 얼굴 속에서 자꾸만 아버지 얼굴이 비쳐서 깜짝 놀라곤 하는데(점점 더 비슷해 보인다), 이제 보니 딸도 내 얼굴을 닮아가는구나, 싶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딸이 세상 순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오빠~ 이젠 욕을 좀 줄여 주세요. 우리 딸이 들어요. 악의가 없는 건 알지만, 이젠 줄일 때가 된 것 같아요." 역시, 아내는 참 현명하다. 내 말이나 행동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을 때는, 무조건 판단하거나, 아니면 못하게 강요하거나 하질 않는다. 대신 부드럽게, 점잖게 이야기 해서 나를 바꾼다. 아니, 바꿀 수 밖에 없게 만든다.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욕이 무슨 죄가 있나. 세상에 가득한 욕 먹을 넘들이 문제지. 욕을 먹을 넘들은 욕을 먹어야 해. 그것도 오지게. 찰지게. "알아요~ 오빠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그래서 줄여 달라는 거에요." (마음 속으로 혼잣말) "아이 X발~ 어쩌면 아내는 맞는 말만 골라서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쓰는 언어 중 팔 할 이상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전라도 외딴 섬 중에서도 깊은 산속에서 사셨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도 전쟁이 일어난 줄 모르고 살았다는 정도로 깊은 산골. 외할아버지는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 가장이셨는데, 대단히 폭력적인 분이셨단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전쟁 같은 삶'을 사셨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맞고, 또 맞고, 욕 먹고, 또 욕 먹고.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사셨다. 그래도 신기한 건, 그렇게 최악 조건 속에서 사셨는데도, 그나마 건강하게 살아오셨다는 사실. 온갖 고난을 헤치면서 3남매를 키우셨다는 사실. (나는 어머니를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외할아버지부터 어머니를 거쳐서 내려오는, 너무나도 고된 삶이 만든 그림자가 내 입으로 흘렀다고. 그래서 내가 욕을 하는 거라고. 3대 역사가 압축적으로 내 입에 남았다고. 힘들어서 욕하고, 미워서 욕하고, 살아남으려고 욕하고. 욕을 아니할 수 없는 역사였다고. 3대가 흘렸던 눈물 조각이 쌓인 탑이라고. 

    하지만 이젠 중단할 때가 되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삶, 3대에 걸친 역사를 마침내 멈출 때가 되었다. 퇴화된 꼬리처럼 남아 있던 바로 그 흔적을 잘라 버릴 때가 되었다. 나에겐 그 흔적이 바로 욕이다. 이젠, 전쟁이 끝났으므로. 우리 아이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므로. 그의 마음에 전쟁 그늘을 드리워선 안되기에.

    당연히! 한 번에 그만 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40년 넘게 내 입에 붙어 있던 이물질이다. 이제는 내 피부처럼 변해 있는 흔적이다. 그러니 이 옛날 비디오를 무작정 뜯어내긴 어렵다. 다만, 시작은 이 비디오가 옛날 비디오라는 사실을 때마다 상기하는 노력일 터. 그래서 내가 또 욕을 한다면, '내가 또 옛날 비디오를 틀었구나' 생각하련다.

    세상 순수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고 있는 딸에게 말해 본다: 

    "딸아, 아빠가 노력하고 있으니, 이해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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