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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육아 일기(D+121)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6. 10. 14:42728x90반응형
"선천성 고관절 탈구 소견이 있네요."
우리 딸이 태어난 지 딱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딸이 태어난 산부인과에서 근무하시는 소아과 전문의께서 우리 부부를 호출하시더니, 소견서(정밀 검사 의뢰서)를 한 장 써 주셨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 보라는 권고를 하시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어 보니, 우리 딸처럼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몸 위치가 거꾸로 있게 되어서, 선천성 고관절 탈구 증상이 잘 나타난단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 딸도 고관절이 탈구되어 있는 소견이 보인단다.
고관절이 무엇인가? 다리와 엉덩이 뼈를 이어주는 관절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선천성 고관절 탈구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관절이 빠져 있었다는 뜻이다. 부랴부랴 의학 정보를 찾아 보니, 신생아 시기에는 온몸에 있는 뼈가 부드러워서 고관절이 빠져 있어도 아프지 않고 겉으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생후 6개월이 지나고 어느 정도 관절이 자리를 잡는 시기가 오면, 커다란 문제가 시작된다. 관절이 빠져 있는 상태로 몸이 굳어지면, 말도 못하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말씀.
우리 부부는 정말 많이 놀랐다. 고관절 탈구는 신생아 시기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면 나중에 걷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까지도 갈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딸은 태어난 지 2주 만에(그러니까 대단히 빨리) 탈구 증세를 발견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거나 뼈에 철심을 박지 않아도 완치가 가능한 상태였다. 치료 방법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간단한(?) 보조기를 차고 지내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보조기가 바로 저 사진에 나온 물체다.
그렇게 우리 딸은 신생아 시기(석 달) 내내 밤낮으로 보조기를 차고 생활해야 했다. 너무 어려서 말을 못하니 망정이지, 이제 막 세상에 나와서 자유롭게 자기 몸을 움직이면서 세상을 알아가야 할 시기에, 세상 답답한 이물질(!)을 꼼짝 없이 몸에 묶고 누워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꼬. 신생아 시기엔 소화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젖을 빨 때마다 아기가 힘들어 하는데, 우리 딸은 가슴팍을 보조기 줄로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답답해서 소화가 더욱 힘들었을 듯 싶다.
다행히, 우리 딸 봄이는 그리 예민한 성격은 아니라서, 배고플 때 외에는 거의 울지도 않았다. 나는 우리 착한 딸이 걱정하는 늙은 엄마 아빠가 불쌍해서, 온 몸을 칭칭 묶은 보조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들어도 꾹 참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낙천적인 성격, 그리고 인내심. 우리 딸이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보여준 대단히 훌륭한 강점이다. 만약 나였다면? 가슴과 다리를 꽁꽁 묶는 보조기를 차고 100일 동안 생활했다면, 너무 답답해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울상만 짓고 있었을 것 같다.
며칠 전, 마침내 우리 딸 몸을 칭칭 감고 있었던 보조기를 뗄 수 있는 순간이 왔다. 큰 병원 소아 정형외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완치 판정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우리 딸. 그동안 아주 많이 답답했을 텐데도, 엄마 아빠 안 힘들게 말 없이 꿋꿋하게 잘 버텨 준 친구. 우리 딸도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무수히 경험한 테지만, 나는 별로 걱정이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상태였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게 이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의미를 부여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회고적 존재.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만을 선택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면 운명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판타지가 아니다. 생각이 실제로 현실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딸이 지금 아빠가 쓰고 있는 이 기록을 읽으면서, 말 못하는 신생아기에 자신이 얼마나 강인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생생하게 깨닫고 수용하길 바란다.
2022년 6월 10일
늙은 아빠, 이재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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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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