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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의 '딸'이 쓰는 성장 일기(D+142)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7. 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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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했어요. 하늘에서 축축한 것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아빠가 어린이집에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제가 싫어하는 어깨띠에 올라탄 채 ) 아빠 품에 안겨서 집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일단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났어요. 저는 세상에 태어난지 4개월 밖에 안 되어서 사실 앞이 잘 안 보이거든요. 아무래도 귀를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있는데, 지금까지 들어봤던 소리 중에서 가장 소리가 크게 났어요. 아빠 재채기 소리도, 엄마가 꺄르르 웃는 소리도 이 소리보다는 적었어요. 

    "봄아, 이게 비야. 장맛비. 이런 큰 비는 처음 보는 건가?"


    아빠가 미소를 띈 채 저를 내려다 보면서 말하셨어요. 저 축축한 것이 '비'래요. '비'라구요? 이름이 재미있어요. 한 글자라서 기억해 두기도 좋고요. 그렇게 어린이집 앞 골목을 지나서 둔촌동 재래시장을 지나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시장 골목 위에 쳐져 있는 천막 사이로 비, 라고 하는 것이 떨어지는데, 소리도 컸지만... 눈부신 빛에 쪼개져서 공중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아빠는 제가 웃는 소리에 저를 내려다 보시고는... 어제처럼 웃으셨어요. "신기하지? 봄아!" 

    시장 골목을 지나면 우리 집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해요. 오늘은 저 비, 라고 하는 것이 많이 쏟아져서 그런지 오고 가는 사람이 적었어요. 골목에서 뛰던 사람은 모두, 목욕한 후에 열어둔 하수구 속으로 물이 빠지듯이, 금방 사라졌어요. 그렇게 저는 드물게 오고가는 아저씨, 아줌마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어요. 빤히 쳐다보면서 관찰하는 건, 제 특기랍니다. 보통은 아빠가 쇼파에 앉아 계실 때, 뭔가 숟가락으로 드실 때, 바운서에 앉아서 아빠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거든요. (저는 아빠랑 사이가 좋아요.) 

    "봄아, 비가 와서 바지가 다 젖는 이 순간도 너랑 있어서 소중하단다."


    갑자기 느꼈어요. 저를 내려다 보시면서 말하는 아빠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제가 어려서 말은 못하지만, 다 느끼고 있거든요. 특별히, 엄마 아빠가 어떤 마음인지 표정을 보면 다 알 수 있거든요. (네, 엄마 말이 맞아요. 저는 아직 어른들처럼 말은 못하지만, 다 듣고, 다 느끼고, 다 생각하고, 다 말해요. 아직은 의미 없이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저도 말을 하고 있어요.) 음... 하늘에서 내리는 저 축축한 것. 비, 라고 부른다는 저것이 아빠 눈에서도 찔끔, 나오는 걸 봤어요. 

    "어? 아빠 눈에서 왜 비, 가 내리는 거죠? 뺨을 흐르는 저건 뭔가요?" 저는 아빠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면서 눈빛으로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이 참, 저는 아빠 딸, 아빠는 제 아빠가 맞네요. 제 눈을 빤히 들여다 보시던 아빠도 제 마음을 느끼셨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봄아, 아빠는 봄이가 우리집에 찾아올 줄 정말 몰랐어. 아빠에겐 들어갈 수 없는 금지 구역 같았어. 그런데 이 모든 특별한 순간을 너와 함께 지나려니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어. 오해하지 마, 아빠는 기뻐서 우는 거야."

    "네가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소한 시간이 다 특별하단다."


    집 앞에 다 왔을 즈음, 아빠는 갑자기 멈추시더니 손에 검은 뭉치(사진)를 들고 땅을 향해서 팔을 뻗으셨어요. 찰칵! 저는 눈빛으로 아빠에게 물었죠: "아빠, 뭐 하시는 거에요?" 아빠가 제 눈빛을 읽으셨는지 대답을 해 주셨어요: "여기 바닥에, '진입금지'라고 써 있는 거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아빠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먼 판타지였던 시간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너를 안고 걸으려니까, 금지된 곳에 들어선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아빠는 셔츠로 눈가를 문지르시더니, 우리집 앞에서 언제나처럼 네모 단추를 여러 개 누르셨어요. 그렇게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우리집 현관 문에 도착했죠. 아빠는 우산을 털고, 우산 꽂이에 우산을 내려 놓으시고, 문을 열기 전에 저를 꼬옥 앉아 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셨어요: "봄아, 아빠에게 너와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전해 줘서 고맙다. 우산을 쓰고 그냥 함깨 걸었는데도 감격스러웠어. 아빠는 앞으로도 네가 성장해 가는 그 모든 순간에 함께 할 거야." 

    저는 아빠가 하시는 말씀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뭔가 어려운 말도 있고(평소에도 아빠는 어려운 말을 많이 쓰셔서 다 이해하지 못해요), 표정도 밝은 표정과 어두운 표정이 뒤섞여 있어서 어려웠어요. 하지만 시장 골목을 지날 때 제 눈앞에서 밝게 빛나면서 부서진 빗물과, 그때 제 어깨를 포옥 감싸면서 빙그레, 웃어 주신 아빠 표정은 분명히 기억해요. 아빠의 표정을 보니, 맨날 듣던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말했어요: "아빠, 저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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