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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 원 포인트 레슨: 잘라 먹고 들어가기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2. 5. 2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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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어한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들이 쓴 글쓰기 책도 사서 읽어 보고, 나름대로 연습도 해 본다. 하지만 어렵다. 잘 안 된다. 당연하다. 글쓰기는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따라하고, 연습해도 아주 조금씩 향상된다. 그래서 대부분은 포기한다. 요컨대, 불가능하진 않지만 오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라는 댓가를 지불할 수 없어서(혹은, 지불하기 싫어서) 익히기를 포기하는 기술. 글쓰기.

    물론, 지름길은 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조금 덜 헤매는 방법이 몇 가지 있긴 하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 지름길로 간다 해도, 시간과 노력이라는 댓가를 반드시 지불해야만 한다. 지금 내가 떠올린 지름길 중 하나는, 글쓰기 과정 내부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 외부에 있는 비결. 단어나 문장을 다듬거나 단락을 견고하게 쌓아나가는 방법 말고, 주제를 정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쓸모가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글쓰기 실력과 상관없이 통하는 방법.

    글쓰기를 어려워 하는 사람들은 글 재료가 되는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초점이 없다. 두루뭉술하거나 중구난방이다. 넓은 들판으로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고 가정해 보라. 찍을 대상이 너무 많다. 벼가 익어가는 모습, 농부가 노심초사하며 일하는 모습, 누더기 허수아비가 웃음 짓는 모습, 참새 떼가 날아다니는 모습, 풀 벌레가 찌르르 찌르르 우는 모습 등등. 그러면 이 넓은 들판을 사진으로 어떻게 찍기 시작해야 할까?

    시야각을 좁혀야 한다. 초점을 분명하게 잡아야 한다. 무엇을 찍을 것인지 찍는 사람 마음이 확실히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예컨대 인물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저기 멀리 서 있는 배경도 살리고 싶어한다. 프레임은 한정되어 있는데 담고 싶은 피사체가 너무 많다. 그래서 결과물을 보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 무엇을 찍으려고 한 걸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잘라 먹고 들어가기. 우리는 글을 쓸 때, 글감에 대해서 처음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중간엔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마지막엔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시시콜콜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막막하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지 답답하다. 귤을 맛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껍찔을 조금씩 하나 하나 예쁘게 까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반을 뚝 잘라서 바로 한 조각을 떼서 먹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바로 치고 들어가는 방법.

    예컨대, 신생아 100일 잔치, 를 글로 쓴다고 해 보자. 무엇부터 무엇까지 쓸 것인가? 처음에 언제 아기가 생겼고, 언제 출생을 했는데, 어떻게 성장해 왔고, 이제 100일이 되었으니, 100일 기념 잔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어떻게 준비를 시작했는데, 당일이 되어서는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고, 끝나고 나서 아기 얼굴을 들여다 보니 이런 저런 감정이 떠오르고... 이런 식으로 쓰고 싶은가? 아... 너무 지루하다. 재미 없다. 예측 가능하다. 평범하다.

    100일 잔치와 관련해서 벌어진 많은 상황과 온갖 과정, 쏟아진 말을 포함해서, 이 잔치가 보인 특성을 딱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라. 어려운가? 다시 들판으로 나가 보자. 내가 서 있던 그 들판에서 보이는 모든 장면 중에서, 이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인간지사, '의미'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부여하는 것이다. 저기~ 유유히 날아다니는 학처럼.

    그래! 늘 똑같은 들판이지만, 오늘은 다리가 긴 새하얀 학이 날아 들어서 이리 저리 누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사진을 찍을 때 이 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젠, 100일 잔치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우리 딸 100일 잔치에 대해서 쓴다면? 100일 잔치에서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빌려야만 했던 OO만원 짜리 소품 대여 세트에 대해서 쓸 것 같다. 실제로는 지저분하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뽀사시 한, 다시는 빌리고 싶지 않은 소품 대여 세트.

    결국 남는 건 사진 뿐, 이라는 주제. 욕하면서 빌렸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진이 예쁘니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나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소품을 그렇게나 많이 받고 대여해서 살아가는 업체 사장의 상혼, 에 대해서 쓸 것 같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실속은 별로 없이 보여주기에 매달리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서 쓸 것 같다. 결국 시작점은 사진으로만 번지르르한 소품 대여 세트, 종착점은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진에 목을 매는 우리네 문화.

    과일을 먹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반을 잘라 먹는 방식이다. 그렇게 자른 단면을 보면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 뭔가 본질을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도 글감을 한 방에 보여줄 수 있는 각(angle)을 찾으려고 애쓴다. 필요한 대목에서는 구구절절 설명도 해야겠지만, 글 구조를 짤 때는 명쾌한 초점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과일을 반으로 잘라서 먹을 때처럼 입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다시, 상상 속에서 들판으로 나가 보자: 벼가 익어가는 모습, 농부가 노심초사하며 일하는 모습, 누더기 허수아비가 웃음 짓는 모습, 참새 떼가 날아다니는 모습, 풀 벌레가 찌르르 찌르르 우는 모습. 이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 사진 프레임 안에 모든 요소를 다 넣으려고 하지 말라. 과일을 잘라 먹듯이, 해당 장면을 한 방에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라.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 펜을 들기 전에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분명히 결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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