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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육아 일기(D+17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8. 4. 19:02728x90반응형
우리 딸 이름은 '봄'이다.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있을 때 아이 태명은 '기적'이었다. 무려 48세 아빠와 47세 엄마 사이에서, 그것도 자연적으로 온 생명이었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이름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기적'이라는 이름을 주민등록에도 올릴 생각이었지만, 혹시라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봐, 조금 더 일반적인 이름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나는 곰곰 생각해 보다가, '기적'이라는 이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우리에게 이 아이가 준 의미를 품은 이름으로, '봄'을 선택했다.
그러면, 왜 '봄'인가? 아내가 아이를 임신한 시기가 늦봄(5월)이었다. 잠시였지만 매서운 겨울처럼 느껴진 시험관 아기 시술을 두 번 실패하고 나서, 학창시절 봄방학 때처럼 잠시 쉬는 동안에 아이가 들어섰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시기도 이른 봄(2월)이었다. 말하자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경험하게 될 계절이 바로 봄이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가지고 낳은 실제 계절도 봄이었지만, 상징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아이는 엄마, 아빠가 맞이한 따뜻한 인생 봄날에 태어난 셈이다. 뒤늦게 좋은 인연으로 만난 우리 부부를 상징하는 계절도 봄.
어느새 아이가 훌쩍 커서 만 6개월이 다 된 지금... 나는 우리 부부가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금 속이 상했다. 우리 딸은 지금도 무겁지만(딸아, 미안하다), 앞으로 점점 더 급격하게 무거워질 텐데(딸아, 미안하다고!), 우리 허리는 조금씩 기울고 있고(에고 허리야~), 앞으로 점점 더 급격하게 꼬부라질 터(에고 허리야~). 아이 세수 시킨다고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힐 때마다, 아이 옷 갈아 입힌다고 침대맡에서 허리를 굽힐 때마다, 아이를 차에 태운다고 번쩍 들어서 카시트에 앉힐 때마다, 에고 허리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요즘엔 아이를 초등학교에 취학 보낸 부모가 모옵시, 부럽다. 졸라 부럽다. 며칠 전, 내 가장 친한 친구도 초등학생 아들이 자전거 탄 동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부러워서 거의 까무러칠 뻔 했다(오해 마시라, 질투는 아니다. 다만 부러웠다). 이제 막 투정부리며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우리 봄이는 언제 커서 저 친구처럼 재미나게 자전거를 타게 될꼬? 사실, 내가 내 동년배 친구들이 다들 아이 낳은 시기에 딸이 태어났다면, 적어도 고등학생은 족히 되었을 터.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상상 세계를 헤매고 있을 때...
"오빵! 인생에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 봄이가 아직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지만, 우리한테 세상 귀엽게 방긋 웃어주고, 알아 듣지 못할 옹알이를 힘차게 되뇌이는 지금이 너무 만족스럽고 좋기만 한 걸요. 우리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만족하면서 살아요. 우리가 이 나이에 만나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이렇게 예쁘고 건강한 딸을 얻고, 봄이와 눈을 맞추면서 살아가는 자체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잖아요. 저는 돌아보면 감사한 일 투성이라서 우리가 나이 먹고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지내는 걸요."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1살) 동생이지만, 내면은 10년은 더 성숙한 우리 사모님(아내)께서 나를 상상 세계에서 훅, 하고 끄집어 내신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온몸에 이유식을 뭍히면서 식사를 마치신 우리 딸 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나를 보며 방긋 웃고 있다. 그래... 우리가 결혼한 때가 바로 몇 초 전 같이 생생한데, 벌써 2년 가까이 지났잖아?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눈 한 번 깜빡하면 빠르게 뒤로 흘러가버릴 텐데, 정신줄 놓치고 집중 안하면, 우리 딸이 성장하는 모든 귀한 순간도 연기처럼 사라질 거야.
바로 어제, 동해 바다로 여름 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속초, 정암 해변에서, 나는 우리 딸 봄이를 어깨띠로 품에 안고, 한 손에는 커다란 장우산,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손선풍기를 든 채 수평선을 바라 보았다. 인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바다가, 연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내 발밑까지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째깍째깍...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바라보며 호흡하던 백사장 모래처럼, 금방 흘러가버리겠지? 그러니 나는 아픈 허리에 신경 쓰기보다는 우리 딸 미소를 한 번 더 마음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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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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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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