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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166)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7. 25. 07:23728x90반응형
간만에 아내와 단 둘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번역하면 '잃어버린 딸', 저명한 배우 매기 질렌할이 이탈리나 나폴리 출신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가 쓴 소설 <잃어버린 사랑>을 원작으로 삼아서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 나로서는 오스카 수상자인 올리비아 콜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온갖 악평은 다 받았으나 실제 연기력도 괜찮고 배우 경력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다코타 존슨이 출연한 영화기에,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아내에게 보러 가자고 간청했다.
우리 부부가 대낮에 영화를 보려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다행히 사랑이 많으신 장모님께서 한나절 이상 봄이를 맡아 주신다고 '먼저' 제안해 주셔서 마음 놓고 다녀왔다. 수수한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나 있는 티셔츠와 청치마, 그리고 아담한 단화를 신은 아내와 손을 잡고 장맛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난 시내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살짝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이 얼마만에 잡아보는 섬섬옥수던가! 우리는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다가 커피샵에 들러서 카푸치노와 쥬스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극장에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잠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솔직히 약간 어지러웠다. 시각적인 설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핸드 헬드로 영화를 찍었고, 2인 대화 장면에서 깊이감이 없게 찍어서 등장 인물이 서로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하지 않은 장면 생략과 어렵지 않은 상징물, 그리고 올리비아 콜먼이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묘하게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이 영화, 죄책감에 대한 영화 같지?"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최신 흥행작, '외계+인' 1편을 마다한 채, 장모님 댁이 위치한 수유리에서 굳이 사당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대단히 작은 소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 애초부터 상업영화 같은 명쾌함이나 무조건 신나는 내용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아트하우스 영화답게, 모호한 지점이 많아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함께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듬으면서 내용과 주제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장모님 댁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하철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죄책감'에 대한 영화가 맞았다. 그런데 순수한 죄책감, 이라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있었다. 주인공 레다는 학자로 성공한 중년 여성. 이혼했고 장성한 딸이 둘 있다. 그런데 젊은 시절, 그녀는 성공에 대한 욕망과 여러 모로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실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자기 삶을 가로막고 갉아먹고 있다고 느껴지는 두 딸에 대한 피해의식이 겹쳐져서, 어느날 갑자기 집을 떠난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아니, 이런 나쁜 엄마가 다 있나?' 라고 생각한다면, 원작 작가와 감독이 그려 놓은 길을 제대로 따라가는 셈.
나는 여성이 아니지 않나. 엄마도 아니지 않나. 내가 만약... 타고난 재능과 지성을 무기로 막 세상에 받을 딛어 무한하게 뻗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30대 초반이라면? 오로지 여성이고 엄마라는 이유로 나뭇꾼에게 붙잡힌 선녀 처지라고 느껴진다면? 그러니까 잠시 눈 딱 감고 한 발만 디디면 바로 승천할 수 있다면? 어릴 적 살던 끔찍한 우물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손톱과 발톱이 갈라지고 피가 나면서 기어 올랐는데, 나와 보니 또 다른 우물이라면? 내가 가진 온갖 공감 회로를 풀 가동시켜서 가만히 느껴보니, 주인공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느낀 장면이 있었다. 젊은 레다가 헤드폰을 낀 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린 딸이 자기를 봐 달라며 엄마에게 손짓을 하고, 책 속에서 한참 헤매고 있던 엄마 레다는 당연히 딸을 무시한다. 아무리 손짓을 해도 엄마가 봐 주지 않자, 딸 비앙카는 엄마를 때린다. 그러자 눈을 뜬 채 빠져 있던 레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딸 손을 붙잡고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한다: "비앙카, 절대로, 절대로 엄마를 때려서는 안돼!" 그리고 비앙카를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방에 가둔다. 문을 너무 세게 닫아서 유리창이 깨진다. 관계가 깨진다.
이 장면을 떠올리니 특정한 내 경험이 곧바로 소환되었다. 오늘은 우리 딸이 세상에 태어난지 166일째 되는 날. 요즘 딸은 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고군분투 중이다. 팔/다리를 땅에 단단하게 붙이고 상체를 지탱해야 하는데, 팔/다리를 허공에 들어 올려서 버둥거리고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는 약간 답답함을 느끼곤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 위치가 가깝다 보니 딸이 다리로 나를 찰 때가 자주 있다. 그때 느낀 내 감정이 소환되었다. 솔직히, 나는 불쾌했다. 아이에게 아무런 나쁜 의도가 없는데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이 상황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딸은 아무 상관도 없고 오로지 내 문제일 뿐이다.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나는 나를, 내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고, 나를, 내 문제를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젊고 매력적이었던 30대 레다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볼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는 더욱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발목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 실제로는 두 딸, 이라고 칭하는 관계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엄마가 엄마를 죽인 셈. 그리고 나서 3년 만에 엄마가 엄마를 죽인 피 묻은 칼을 입에 물고 나타난 셈.
세상 모든 엄마가 레다 같지는 않을 것 같다. 레다 같은 엄마도 시기에 따라서 또 다를 것 같다. 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마음 속 묻어 두었던 죄책감 칼에 찔려서 비앙카를 잃어 버렸던 해변과 비슷한 바닷가레 쓰러졌지만, 성공에 눈이 멀어서 욕망에 눈이 멀어서 장장 3년 씩이나 아이들을 버렸던 젊은 시절 자신을 그러게 처절하게 죽인 후에, 다시 깨어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성인이 된 딸 전화를 심지어 '다정하게' 받는 모습을 보라. 웃으면서 눈물짓는 그녀는 이제 죄지은 댓가를 치루었기에, 감옥에 갇혔던 3년을 스산하게 떠나보낼 수 있다.
새벽이 지나서 아침이 되었나 보다. 열심히 옹알이 하는 딸을 안고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삶의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자주 손을 씻는 습관, 커텐을 치고 자는 습관 등등 고정된 패턴이 있었다. 그런데 딸 아이를 낳고 나서 그 모든 습관이 바뀌었단다. 아니, 바뀌었다기보다는 오래되 습관조차 '언제든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바뀌었단다. 생명을 잉태하고, 뱃속에 10달 동안 담았다가 배가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면서 낳고, 눈을 뜨는 모습과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없어진 듯한 행복한(?!) 느낌을 받았단다.
나는 아내에게도 레다와 같은 시기가 있었을 거라고 가만히 상상해 본다. 40대 후반이 아니라 30대 초반에 딸을 낳았다면? 그 어떤 이유로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시기에 딸이 태어났다면? 실제로 아이를 떠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 어떤 여성도 노예가 되기 위해서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속박당한 노예처럼 느껴진다면, 적어도 마음으로는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관한 평론에서 읽은 바처럼, 이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는 '죄책감'보다는 '모성이 가진 적나라한 모습'이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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