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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의 육아일기(D+185)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8. 1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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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눈이 점점 더 초롱초롱 빛난다. 꺄르르 꺄르르 웃는 소리도 점점 더 커진다. 도톰한 카스테라 빵 같은 팔뚝도 점점 더 굵어진다. 허리 힘이 세져서 앉아 있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점 더 무거워진다. (미안하다, 딸아. 그래도 아빠는 너를 깃털처럼 가볍게 느낀단다.)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직업처럼, 내가 하는 일에도 좋은 점, 안 좋은 점이 있지만, 프리랜서로 살아서 제일 좋은 점은,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오전 오후 어린이집에 내가 데려가고 데려 온다. 어깨띠를 두르고 어린이집에 가는 도중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서 아빠 얼굴을 직접 올려다 보기라도 하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숨이 멎을 것 같다. 

    우리 시대 아빠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있(었)다. 바로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목표. 베이비부머 혹은 바로 그 아래 세대 밑에서 성장한 아빠들은 늘 바쁘고, 엄하고, 심리적으로 먼 곳에 서 계신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육체적인 매질이 용인되는 시절이었다. 거짓말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어쩌면 성장 과정에서 있을 수도, 아니 있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엄하게 처분 받곤 했다. 다 성장해서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아 키우면서, 아버지가 살아가야 했을 그 험한(!) 세상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정한 면은 찾아보기 힘든 반쪽(?) 아버지와 살았던 기억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그토록 원했지만 손도 잡아보지 못했던 나머지 반쪽 아버지를, 내 아이에게는 돌려 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성장한 가족 안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한계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어째서 자기 모습을 모를까? 아니, 아는 것 같은데 왜 깡그리 외면하고 사는 걸까? 과연 언제까지 저러고 살까?'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 원가족 안에서 경험한 결핍 혹은 넘치는 경험 때문이다. 다르게 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 따라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만 있는 모델을 따라가려고 하니, 앞뒤가 이해가 안 되어서 어렵기만 하다.

    내 아버지는 어떠셨나? 몹시 가난하셨다. 한국 전쟁을 겪으셨다. 거의 못 배우셨다. 일만 하셨다. 통이 작은 분이셨다. 책임감이 많으셨다. 말이 없으셨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가끔씩 장난기를 보이셨다. 하지만 무서우셨다. 대단히 권위적이셨다. 본인 생각이 늘 정답이었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 밝은 분은 아니셨다. 불안이 많은 분이셨다. 걱정도 많은 분이셨다. 쳇바퀴 돌듯 사셨다. 욕심도 없지만 배짱도 없으셨다. 외로우셨다. 족보를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하셨다. 친척들이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김대중을 싫어하셨다. 손재주가 좋으셨다. 집안 일을 아주 많이 하셨다.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딸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하게 될까? 내가 버리고 싶은 아버지 유산은 무엇인가? 내가 재현하거나 이어가고 싶은 아버지 유산은 무엇인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데려 올 때마다 이런 질문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보는 시간이 많다는 이 사소한 조건이 아마도 나에 대해서 품는 딸의 인상을 결정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품에 안긴 딸을 매 순간 어떻게 대하느냐가 무척 중요할 것 같다.

    며칠 전, 어떤 선배님께서 아들 이야기를 해 주셨다. 여름 휴가 때 스킨스쿠버 체험을 한 아들이 학교에 스킨스쿠버 슈트를 입고 산소통을 멘 채 학교에 갔다고 한다. "네? 뭐라고요? 산소통을 메고 학교에 갔다고요?" 부모니까 당연히 아셨단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보내셨다고 한다. 누구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 '또라이 아들에 또라이 부모'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조금 과하다는 인상이 들긴 했지만(아마도 학교 선생님들은 이 특이한 친구 덕분에(?) 죽을 맛일 수도), 내 귀에 너무 신나고 재미있게 들렸다. 그래서 말씀 드렸다: "선배님, 걔는 뭐가 되어도 될 거에요. 진짜에요. 학교에 산소통을 메고 갈 생각을 하다니. 진짜 창의적이잖아요!"

    왜 모르셨겠나. 아들이 선생님에게 '이상한(?) 또라이' 취급 받을 줄을. 하지만 나는 이 선배님이 아주 멋지게 보였다. 그런 사회적인 압박보다 아들이 가진 개성과 발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넓고 강한 마음. 아들도 나중에 알게 되겠지?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깊이 사랑해 주셨는지. 아들은 세상 모든 이들이 등을 돌려도 엄마만은 나를 알아주고 내 등 뒤에서 턱을 들고 당당하게 서 계실 거라고 믿을 것 같다.

    나는 딸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딸도 나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땅에 내던져진 운명을 타고 왔는데,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연을 맺고 잠시 함께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로 '아주 특별한 손님'이긴 하지. 딸이 자기 삶을 잘 발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귀한 손님이 내 집에 오셨는데, 내 마음대로 이 귀한 손님을 모실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내어 드릴 수 있는 모든 귀한 것을 내어 드리되, 내 집에서 내 방식대로 살아가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묶여 있게 되었지만, 딸은 내 집을 찾아오신 '귀한 손님'일 뿐이다.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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