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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의 육아일기(D+199): 끔찍한 악몽을 꾸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8. 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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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밤에, 48년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어느날 밖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딸은 안 보이고(사실 이 꿈 속 세계는 딸이 없는 설정이라서, 뭔가 이상하게 허전하긴 했지만 딸이 있다는 느낌이 명료하게 들진 않았다) 낯선 남자가 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내가 알지 못할 미소를 띄우며 서 있었다. 첫 느낌이 너무 이상해서 아내에게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내 왈: "재원씨, 미안해요. 저에게 애인이 있었어요." 엥? 갑자기? 애인? 

    꿈 속 시간이 급박하게 흘러갔다. 믿을 수 없어서 볼부터 꼬집어 보았는데, 아팠다. 차가운 현실이었다(꿈 속에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처음에 나를 만날 때부터 알던 남자인데, 우리가 결혼하면서 멀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연락을 나누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자기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줘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아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내겐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 표정이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미소가 어울릴 정도로.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냐, 고 물으니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고 물으니 남편 두 명과 번갈아가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당신 미친 거 아니냐, 고 말했더니 안 쳤단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냥 말없이 수용해 달라고 한다. 안 들어주면 차라리 헤어지겠다, 는 말도 없었다. 내가 '당연히' 이 미친 소리를 수용할 거라는 믿는 사람처럼, 아내는 시종일관 여유롭게 미소를 띄었다. 그런데 나는 그 미소에 이상하게 설득되고 있었다. 왠지 아내 말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뭔가에 홀린 듯.

    우리는 협상을 했다. 두 달씩 번갈아 가면서 아내를 공유하기로. 그 자식에게 먼저 아내와 살라고 말하고,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라고 혼잣말을 뱉으면서, 옷이며 책 등을 커다란 여행 가방에 우겨 넣었다. 기분이 야릇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데, 묘하게 설득되어서 짐을 싸고 있는 내가 완전히 미친 상태 같이 느껴졌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아내와 그 자식을 남긴 채 문을 닫고 나서...

    는데 잠이 깼다. 오늘, 토요일 아침 7시 15분이었다. 옆으로 손부터 뻗었다. 보드라운 아내 다리가 만져졌다.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아내가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 너머, 우리 부부 침대 아래쪽 범퍼 침대 자리에서 우리 딸이 칭얼대는 소리가 슬며시 들려왔다. "아이고, X발, 꿈이었네." 나는 아내를 깨웠다. 내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차다는 듯 웃는 아내에게,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말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사실은, 이 세계에는 우리 딸이 지우개로 지운 듯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이상은 2022년 8월 27일 토요일,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이다. 나도 아내도 이것은 분명히 '개꿈'이라고 동의했지만, 나는 이 꿈이 마음 속에 잔상으로 남아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꿈이 주는 의미가 뭘까? 꿈 속에서 왜 우리 딸이 안 보였을까? 왜 그 남자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까? 왜 그 남자는 거기 분명히 있었는데, 내가 그다지 적의를 느끼지 않았던 걸까? 왜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 미소까지 띄우며 나에게 고백했을까? 왜 나는 이 끔찍한 상황을 깽판을 치지 않고 그냥 수용했을까? 

    한동안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 개꿈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 그 남자는 사실은 또 다른 나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내와 달콤하게 연애를 시작하던 시기 내 모습이었다. 아내를 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부드럽게 말하고 행동하던 나. 만난지 3개월 만에 결혼을 선택할 정도로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던 내 모습. 그 남자가 바로 나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놀라긴 했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상황을 수용했고 그 남자가 밉지 않았다. 

    둘째, 우리 딸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딸이 없는 세상에서 아내와 좀 더 연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내는 내가 해결중심모델을 온라인으로 가르치던 시절 수업에서 만난 사람. 아내는 수업을 들으면서,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수백편 읽으면서 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후로 직접 만나게 되었을 때 벽이 전혀 없었고,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으며, 결혼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시절 아내, 그리고 아내에게 빠져들던 내 모습이 그리웠나 보다. 

    셋째, 나는 우리 부부가 육아에 지쳐서 여러 모로 조금씩 멀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상황이 몹시 두려웠던 것 같다. 연인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듯 해서 몹시 안타까우면서도 두려웠나 보다. 우리 둘 만의 시간을 가진 게 언제 적인지 기억도 잘 안날 정도로, 아이 키우느라 바빴다. 최근 몇 달 기억을 돌아보면, 거의 빨래를 개는 기억과 젖병을 삶은 기억이다. 물론, 너무나도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확신하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나는 여전히 아내가 여자로서 너무 좋다.)

    미국 부부치료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많은 신혼부부가 아이를 갖게 되면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서 사이가 나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신혼부부가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신혼부부 중에서 약 1/3에 해당하는 부부는 신혼 시절 관계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좋아진다고 한다. 학자들이 연구해 보니,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와 좋아지는 부부 사이에는 생활 조건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으니, 사이가 좋아지는 부부는 서로 상대에게 사소한 관심을 끊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바빠지면 부부는 서로 상대방이 말하는 바에 신경을 덜 기울이게 된다. 아이에게 신경 쓰고 있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넘기곤 한다. 그런데 사이가 좋아지는 부부는 그렇지 않았다. '어, 그래? 그거 웃기네." 이런 식으로 상대가 말을 하면 아무리 사소해도 단 0.1초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작은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상대에게 보이는 작은 관심이 부부 관계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좋아질 수 있는 중대한 변수였다는 발견.

    그러므로 내가 가야할 길도 분명해 보인다. 육아에 지친 아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스쳐 지나가는 몸짓, 표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기. 그리고 포착한 몸짓, 표정, 말에는 짧더라도 진심으로 반응해 주기. 이는 끔찍한 악몽을 현실로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리고 아내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이런 작은 노력은 우리 가족이 함께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보약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극히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쉽진 않겠지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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