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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 일기(D+218)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9. 15. 06:02728x90반응형
“아까 기저귀를 갈다가 옆으로 조금 새서요, 옷을 갈아 입혔어요. 그런데… 큭큭큭…”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웃음을 참으시며 말씀하셨다. 달리 설명은 필요 없었다. 유모차에 타서 나를 올려다 보는 딸 모습을 보니 딱 알겠다. 아이가 너무 빨리 커 버려서, 여름 내내 잘 입었던 반바지가 곧 터지려고(?) 한다.
우리 딸이 생겼을 때 기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자폐와 관련해서는 엄마보다는 아빠 연령이 큰 변수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일이 어쩌면 애초부터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담당 의사 선생님이 기형아 수치가 높다면서(270명 중 1명 확률) 우리에게 겁(?)을 줬다. 말하자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뽑아 먹는 효과적인 루틴 같아 보였다.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받으려다가, “만약에 기형아면 안 낳으려고요?” 아내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아이 존재를 수용하고 무조건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했다. 상태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딸이 태어난 날, 분만실 앞에서 아기를 받았을 때 어색했던 마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팔순잔치 하면 옆에서 도와 주는 도우미처럼, 간호사는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라고 지시(안내)했다. 많이 우습고 어색했다. 누런 분말 같은 유분을 뒤집어 쓴 채 태어난 딸은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처럼 낯설었다. 처음에는 정이 안 갔다. 왠지 머리도 찌그러져 있고 귀도 비뚫게 생긴 외계인 같았다. 앞으로도 정이 안 붙으면 어쩌지? 걱정했다. 다행히, 함께 산 지 석달 만에 애착이 생겼다. 역시,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똥 싸면 치우고, (엄청 울면) 달래고, 분유 먹인 후에 등 두들겨 주며 코~ 재우고, 뒹굴뒹굴 함께 놀아 봐야, 겨우 사람 같이 느껴진다.
현재 우리 딸은 몸무게는 상위 10% 안에 들고, 키로는 상위 5% 안에 든다. 무척 크고 튼튼한 셈이다. 역아였기 때문에 고관절에 어려움이 조금 있어서 치료 받은 걸 제외하면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건강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 정말로 어렵고 힘들 때가 많다.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했지만 앞날도 훤히 보인다.) 특히, 늙은 아빠와 엄마는 팔, 다리, 허리, 머리가 모두 아프다. 기저귀 한 번 갈면서도 허리가 아파서 끙끙댄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아기를 키우는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세상에 그 어떤 일에서도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아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기쁨에 댓가를 제대로, 잘 치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기저귀 갈면서 허리는 아플 거고, 아기는 배고프다 싶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새벽부터 울어댈 거고, 우리 부부는 무시로 깔깔깔 웃어대겠지. 허벅지가 너무나도 튼실한 우리 딸이 순수한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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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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