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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적 물량 공세를 뚫고 나가는 경험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2.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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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화 관련 유튜브 채널 중에서 '무비건조' 채널을 즐겨 본다. 여기엔 글을 잘 쓰고 말도 잘하는 영화 평론가 세 사람과 음악 평론가 한 사람이 등장한다. 1년 전쯤, 이 채널에서 '영화평론가 직업 탐장'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했다.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다가, 글깨나 쓴다고 평가받는 평론가 네 사람이 글쓰기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만났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김도훈 영화평론가와 배순탁 음악평론가가 필력 향상 방법에 관해서 나눈 대화가 많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김도훈: 정말 영화평론 음악평론 하고 싶으시다면, 하셔야죠. 근데, 진짜 중요한 게 뭐냐면요, 글을 잘 쓰셔야 해요.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글을 정말 열심히, 많이 쓰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배순탁: 그런데 씨네21 같은 잡지에 지원하면 좋은 게, 아까 생각한 건데, 저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한 번 뚫고 나가는 경험이 아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도훈: 50매 60매를 매주 마감하는 경험을 몇 년 동안 하다 보면, 이게 저절로 (글쓰기) 훈련이 돼요.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한 번 뚫고 나가는 경험'이라는 표현이 고막에 와서 콕, 하고 박힌다. 무슨 뜻일까? 일정한 주기로, 일정 수준 이상 글을, 오랫 동안, 열심히, 그리고 아주 많이 쓰는 경험을 지칭한다. 이런 경험을 하려면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을 해야 한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출신이다. 그곳에서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뚫고 나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거의 글쓰는 기계처럼 매주 결과물을 내놓는 체계 안에서 일하고 나니, 해탈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는 설명.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세 번 정도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뚫고 나가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 경험: 스무살 무렵, 내가 몸 담고 있던 선교단체에서는 글을 참 많이도 쓰게 했다. 주로 조직원 단속과 세뇌(?)용으로 글을 쓰게 했는데,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글을 일정한 분량으로 거의 매주 쓰면서 나에게도 글빨이 생겼다. 안 쓰면 언제나 눈치를 받는 구조라서 쓸 때마다 무척 괴롭고, 외롭고, 힘들었는데, 매주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쓰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쉬워졌다.

    그 선교단체에서 겪었던 거의 모든 일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쁘게만 느껴질 만큼, 그러므로 여전히 전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빴다. 하지만 두 가지는 내 삶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첫째, 이때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든, 그 어떤 가치를 위해서든, 사기를 당하거나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내 권리를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넘기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둘째, 이때를 시작으로 어떤 일을 직접 경험했든, 간접적으로 생각하거나 느꼈든, 머릿속에 든 지식, 정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편해졌다. 

     

    글 쓰는 작업이 어떻게 편해졌을꼬? 간단하다.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 좋은 선배에게 꼼꼼하게 문맥을 검토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던 1:1 선배는 무척 똑똑했다(나중에 유학가서 현재는 무려 동경대 정교수다). 나는 3년 넘게 매주 A4로 5~6매 정도 글을 썼고, 이 선배는 늘 세심하게 평가해 주고 고쳐줬다(말하자면 첨삭지도를 받은 셈). 특히, 이때는 작은 이야기 덩어리를 각각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서 수업을 받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글 구조에 대해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경험: 두 번째 대학 시절,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엄청나게 글을 많이 써 보았다. 곰곰 따져보면, 대학생으로 살아가면 글을 끝없이 써야만 한다. 레포트가 뭔가.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 보고, 깊이 생각해 보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적어 내는 글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글쓰기에 열심을 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었다: 무조건 성적을 올려서 각 학과별로 각 학년 단 한 명에게만 주는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 레포트 등 과제물을 낼 때 일단은 양으로 승부하기. 

     

    생각해 보라. 당시 나는 군대까지 다녀온 27살 늦깍이 신입생이었고, 나와 경쟁하는 상대(?)는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르는 19살 현역 신입생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일단 체급이 달랐다. 경험도, 사고력도, 자기 통제력도, 관심사도. 무조건 내가 유리했다. 여기에다가, 나는 동기들보다 최소 5배, 많을 때는 10배는 더 많게 글을 썼다. 각종 레포트를 낼 때 다들 A4로 3, 4매 쓰는 일도 어려워했는데, 나는 기본으로 20매를 써서 냈다. 당시 내 필력이 아주 좋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상대적으로는 눈에 띄게 좋은 글을 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무렵부터 나는 한국어에 대해서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 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고 대단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님께선, 구한말 이래 조선 땅에서 태어난 우주 대천재 지식인들이 일본어나 영어 등 외국어에 영향을 받아 얼마나 한국어를 망가뜨려 놓았는지, 방대한 자료로 증명하셨다. 나는 이때부터 고운 한국어를 구사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최근 글쓰기 클래스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른 어법 시리즈(적의것들)는 바로 이때부터 공부한 결과다. 

     

    세 번째 경험: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부터 주전공인 해결중심상담에 관한 글을 정말 많이 썼다. 일단, 책을 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양원석 선배에게 연락했다가 원고를 요청받고 2018년 늦여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달려서 거의 완벽하게 정리된 글을 A4로 20매 이상 썼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 이전까지 내가 공부해 온 해결중심상담에 관한 온갖 지식을 총망라해서 정리하는 글이었다. 특히, 외국 문헌을 읽으면서 알게 된 고급 정보를 글로 정리하면서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9년 12월 15일에는 이곳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열고 비즈니스적으로 독립한 후에, 그동안 내가 써 온 원고와앞으로 쓸 원고를 꾸준하게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만 3년 동안 주로 해결중심상담에 관한 글을 1,000편 넘게 썼다. 거의 하루에 한 편 꼴로(정확하게는 0.92편) 쉬지 않고 글을 써 온 셈이다. 글 한 편당 평균 잡아서 1천자 정도씩은 썼다고 본다면? 약 1,000,000자를 써온 셈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백만이라는 숫자를 보면 '압도적인 물량 공세'라는 말을 과장이라고 느끼지 않으리라. 그렇다, 나는 압도적으로 많이 써 왔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는 끝없이 고운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노력했기에, 단순히 많이 쓰지 않았다. 내용으로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이고, 어법으로 봐도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글을 압도적으로 많이 써 왔다고 자부한다. 잠깐만 생각해 보시라. 요즘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많지만, 내용으로나 어법으로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정말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상당수는 일기인지 낙서인지 모르는 글을, 어법도 틀린 글을(대개는 스스로 잘못을 알지 못한다) 자랑스럽게 올린다.


    "나는 씨네21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진짜 천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씨네21을 다닐 때, 앞 자리에 김혜리가 있었고, 옆 자리에 남동철이 있고, 또 옆 자리에 김봉석이 있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가장 영화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이 매주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겠구나, 나도 저들처럼 잘 쓰고 싶다, 라는 욕심을 가지면서 일을 몇 년 동안 했어요. 그래서 글을 쓰는 분들이,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프리랜서 할 수도 있지만, 잡지사든 신문사든 들어가서, 정말로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나중에 글쟁이로 성장하는데 정말로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기도 해요."


    김도훈 영화평론가 발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예컨대 페이스북을 들여다 보면, 매일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다들 글을 잘 쓰고 싶어하고,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다작을 선택한다. 무조건 많이 쓰면 언젠가는 늘 거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맞다. 많이 쓰면 확실히 늘긴 는다. 하지만 이렇게 묻지마 덤비기로 나아가면, 필력만 늘지 않고 내가 쓰는 글에 여러 모로 오염된 단어, 잘못 쓰는 문장도 점점 더 많아진다. 뭔가 많이 쓰긴 했는데, 나중에 꼼꼼하게 제대로 읽어 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표현이 거칠기만 하고,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

     

    요컨대, 김도훈 평론가 말에 따르면, 진정한 글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일정 기간 이상 꾸준하게 압도적으로 글을 많이 써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모여 있는 차원으로 넘어가려면, 글을 압도적으로 많이 써 보는 기본선을 넘어야 한다. 둘째, 보고 따라할 가치가 있는 모델(글 잘 쓰는 사람)을 정하고, 그가 쓴 좋은 글을 읽으면서, 그가 걸어간 길을 실제로 따라가야 한다. 훌륭한 모델을 지켜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 좌절감을 끝끝내 이겨내고, 자기 속도대로 뒤좇아 걸어가야 한다. 

     

    '어? 나는 그렇게까지는 잘 쓰고 싶지 않은데요? '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혹시 이렇게 생각할까봐 나는 두렵다. 당연히 틀릴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안타깝게도, 글쓰기 세계에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 아주 잘 쓰는 숙련된 글쟁이 20%와 그 선을 넘지 못해서 늘 잘 쓰고 싶다고 말만 하는 80%만 존재한다. 적당하게 연습해서 적당하게 쓰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잘 쓰거나 못 쓰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니 그대도 진정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상위 20%가 넘은 그 기본선을 넘어야만 한다. 

     

    그렇다. 역시나,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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