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이 위로가 될까요?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3. 10. 13:40728x90반응형
첫 번째 만남.
"안녕하세요? 송부연입니다. 저, 선생님 강의 언젠가는 꼭 듣고 싶어서, 오늘은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들어 보니, 선생님 수업을 더 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할 수 있지요?"
작년 말, 어떤 훌륭한 책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토요일 새벽에 원격으로 강의했다. 남들 다 자거나 편히 쉴 시간에 변변치도 않은 나 같은 선생에게 뭐라도 배워보시겠다고 찾아 오신 분들이 흐뭇해 보였다. 그 중에는 송부연 서운장애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께서도 계셨다. 송부연 센터장님은 여러 온라인 활동이나 지인 통해서 어떤 분이신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가 다였다. (1) 엄청나게 바쁘신 분. 강의 활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 (2) 할 말은 하시는 분. 정중하시지만, 종종 뼈 때리는 말씀을 하시는 분.
송부연 센터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아~ 내가 조금 더 알려졌구나, 그래도 사람들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두 번째 만남.
"사회복지사나 엄마로서가 아니라, 온전한 나 개인으로서 평소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려우니 동료들과 함께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올 겨울에 시작한 이재원의 실용 글쓰기 클래스 제 3기에 송부연 센터장님께서 지원하셨다. 솔직히,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송부연 센터장님은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시면서, 무엇이든 평가를 냉정하게 하시는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선생으로서 내 실력이나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 자신감은 있지만, 이런 분이 오셨으니 더욱 빈틈이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똑바로 준비하지 않고 어설프게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대로 된 프로는 제대로 된 프로를 알아 보는 법이니까.
결국,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히려 잘 준비하고 잘 가르쳐서 송부연 센터장님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내 글쓰기 철학과 글쓰기 클래스를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글.
제목: 우문현답 현문우답
글쓴이: 송부연
첨삭 지도: 이재원
입학통지서가 도착했다. 이 종이를 들고 있는데, 가슴이 무거우면서도 간질간질해진다. 신기하다.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7년 인생 중 5년이나 어린이집에 다닌 경력이 있는데도, 초등학교는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학부모가 되었다. 아이가 근사하게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시작이 빛나길...
가장 먼저, 책가방을 사러 갔다. 블링블링 빛나는 책가방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꼼꼼히 살펴보니 더욱 마음에 드는 가방이다. 자연스럽게 가격표로 눈이 간다. “298,000원” 살랑살랑한 가격표는 나의 동공을 흔들어 놓았다. 과연, 이것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가방 가격이란 말인가? 다른 매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만원 중후반에서 30만원 중반 책가방이 즐비했다.
결국,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학년 가방은 1~2년만 사용하고 다시 바꿔줘야 한다는데 왜 이리 비싸지?’ 이리저리 생각하며 중고물품 거래 어플을 연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 쓰고 판매한다는 글이 많다. 낮에 본 가격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이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새로로 출발을 새 책가방으로 축하해 줘야 하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나.
도저히 결정할 수 없어 아이에게 직접 물어 본다. “지훈아, 엄마 아빠가 새 가방을 사 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비싸더라. 3학년 형아가 되면 또 사야 하는데... 혹시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쓰던 것도 괜찮아?” 장난감을 붙잡고 있는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한다. “엄마, 나 어차피 학교 안 갈 거라 책가방 안 필요해.” “학교를 왜 안 가?” “학교 가면 지금보다 공부 더 많이 한대. 난 그냥 계속 유치원에 다닐 거니까, 책가방 안 사도 돼.”
첫 번째 비공식 피드백.
(1) 글이 대단히 좋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2) 지훈이를 왠지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네요.
(3) 동의하시겠지만, 우리는 타인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의외로 많은 정보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아주 많이 바쁘시죠? 아마도 개인을 위한 시간은 거의 확보하기 어려우실 테고요. 만약 그렇다면, 글쓰기 공부를 하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입니다. 글이란 물 위에 떠다니는 부표가 아니라 강바닥에 가라앉은 딴딴한 돌멩이 같으니까요. 그런데, 글 솜씨가 워낙 좋아 선생으로서 욕심도 들고 벌써 애정이 갑니다.
첫 번째 공식 피드백.
깜짝 놀랐다. 다르게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양반, 놀라울 정도로 서사 글을 잘 쓰신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을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에 맞춰서 생각해 본다. 첫째, (본인 치부를 드러낼 정도로) 솔직한가? 그렇다. 둘째,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가? 그렇다. 셋째, (어려운 말 쓰지 않다도 내용이) 깊은가? 그렇다. 이 세 가지 기준을 흡족하게 통과했으니,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근사한 글이다.
추가적으로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 본다. 넷째, 문장이 간결한가? 그렇다. 다섯째, (문장은 간결하지만)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생각/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는가? (댜른 말로 하자면, 내용이 포화되었는가?) 그렇다. 여섯째, 유머가 한 스푼 이상 담겨 있는가? 그렇다. 보통, 간결하게 쓰면 비어 보이기도 하고 휑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송부연 센터장님 글은 깔끔하면서도 풍성한 느낌이 든다. 꽉 찬 느낌이 든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위에 소개한 글은 최종본이지만) 원본에서는 몇 가지 일본식/서양식 표현이 눈에 띈다. 내가 글쓰기 클래스에서 박멸(?)하자고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외치곤 하는, '적의것들'이 보인다. 헌데, 전반적으로 장점이 너무 많고 강력해서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정도 약점은 앞으로 클래스 진행하면서 충분히, 확실하게 고칠 수 있다.
두 번째 글, 그리고 이재원 피드백. (읽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라.)
세 번째 글, 그리고 이재원 피드백. (읽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라.)
첫 번째 이상한(?) 대화.
송부연: (끈금없이) 선생님, 혹시 아프십니까?
이재원: ?
송부연: 사실, 제가 꿈을 좀 잘 꾸는데, 제 꿈에 나오셔서 아프시다고 말씀하셔서요. 그냥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이재원: 아픈 곳은 없고, 약간 우울감이 있네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으로서, 제가 송부연 선생님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시면 좋겠습니다.
송부연: 우울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재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생략) 육아에 조금 지치기도 했어요.
송부연: 육아 이야기는 공감이 많이 되어요. 기쁜데 슬픈, 행복하지만 힘든 느낌이죠. 저는 아이 이야기 하면서 정말로 좋은데 눈물이 난 적이 있어요.
네 번째 글.
제목: 오늘 엄마
글쓴이: 송부연
첨삭 지도: 이재원
(EPISODE 1)
지훈이가 입학한 뒤, 우리 가족은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 쉽게 고쳐지랴. 우리(남편과 나)가 지훈이 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오늘은 지훈이 보다 늦게 일어났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훈아, 늦었어. 빨리 가야해"
"엄마, 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먹을 시간 없어. 그냥 가."
결국 아이는 잼도 안 바른 식빵을 입에 물고, 잠바는 한 팔만 집어 넣은 채 집을 나섰다.
시끄러웠던 집은 고요해 졌지만,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아침식사도 못 하는 이 사단을 누가 만든 것인가? 바로 어른이다. 그런데도 애한테 채근하는 나쁜 어른이다. 우린 좋은 부모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EPISODE 2)
나는 심호흡을 몇번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에게는 아직 미션이 남아 있다. 지민이 등원과 나의 출근. 지민이는 작년까지 다닌 유치원에서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를 마치고 지민이와 나서려는데 남편이 이야기 한다."지민아, 오늘은 엄마사랑 유치원으로 바로 가야해."
엘레베이터를 타자 지민이가 말한다."엄마. 기린유치원(예전 유치원)에 가보자."
"왜?"
"나 친구들 얼굴이 기억이 안 나."
"그래, 가보자. 근데 들어갈 수는 없고 밖에서 보기만 하자."
"왜? 나 친구들 보고 싶은데"
"지민이는 이제 거기 안 다니니까, 들어 갈 수는 없어."
예전에 다녔던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유치원 건물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더니 "엄마, 이제 엄마사랑 유치원으로 출발 해도 돼"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난다. '엄마가 회사에 다니지 않고 널 돌볼 수 있었다면, 친구들과 헤어지는 슬픔 따윈 몰랐을 텐데. 엄마가 미안해. 정말 정말 정말 미안해'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아침 시간에 오만가지 감정이 든다. 나는 오늘 쪼그라든 엄마다.
문득, 어떤 사진을 회상하다.
약 한 달 전에, 글쓰기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서사를 가르치고 자연스럽게 글감을 찾을 수 있도록, 사진을 5장씩 제출하시라고 공지했다. 송부연 센터장님께서 내신 사진 중에서 '웃픈'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분홍색 헤어롤를 이마 위에 매달고, 한 손엔 휴대전화를, 다른 한 손엔 씽씽카를 잡으신 채,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바삐 걷고 계신 모습. 설명을 안 해도 알겠는데, 그래도 설명을 들었다.
"직장인이자 엄마인 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 같아서 선택했어요."
어느날, 뜬금없이 송부연 센터장님께서 보내주신 글, '오늘 엄마'를 읽고 있노라니, 예전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웃으면서, 울면서 보았던 '웃픈'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 분홍색 헤어롤을 이마 위에 매달고, 양 손에 휴대전화와 씽씽카를 잡으신 사진. 나와 내 아내도 부모로서 사진을 찍는다면, 이 사진과 비슷하게 찍지 않을까. 아니, 우리 뿐만 아니라 이땅에서 일과 육아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모든 부모가 비슷하게 찍지 않을까.
나는 글쓰기에 진심이 있다. 글을 자주 쓰는데, 필요 때문에 쓸 때도 있지만, 글쓰기를 사랑한다. 어째서? 솔직하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 억압해 두었던 과거를 꺼낸다. 그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정리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러면, 상했던 마음이 시나브로 정화된다. 본인께선 심하게 부끄러워하시고 민망스러워하시지만, 송부연 센터장님은 글을 눈이 부시도록 잘 쓰신다. 글을 쓰면서 발산하시는 빛이 자랑이나 과시가 아니라, 부끄럽거나 슬픈 마음을 다른 차원으로 근사하게 승화시킨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특별히 중요하다.
좋은 글은 매혹적이다. 솔직하고 쉽고 깊은 글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송부연 센터장님께서 쓰신 글에서도 이 마법은 동일하게 작동한다. 송부연 센터장님께서 앞으로도 꾸준히 마법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복지사가 쓴 설명 단락 #01 (0) 2023.03.15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합니다 (0) 2023.03.14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0) 2023.03.10 간결하면서도 풍성하게 글을 쓰는 비법: 상술(부연) (0) 2023.03.09 놀아줄 때, 잘 놀자! (0)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