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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글쓰기: 내 학생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7. 19. 07:39728x90반응형
나는 글쓰기 선생으로서, 학생이 조금이라도 쉽고 편하게 자기 세계(생각/감정)를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방법: (1) 매번 달라지는 요령을 가르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글 쓰는 방법을 이해하는 원리를 가르친다. (2) 학생이 자기가 쓴 글에 대해서 통제력을 높일 수 있도록, 어떻게 썼는지 묻는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글발이 동시에,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어서 두 번째 방법을 좀 더 강력하게 밀어 붙여 보았다.
일단, 각자 자유롭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도록 권유한다. 학생이 작품을 완성하면, 스스로 자기가 쓴 과정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핵심 질문 세 가지를 던진다: (1) 어떻게 글감을 포착했나? (결국, 우리는 글감이 눈에 보여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2) 어떻게 글감을 주제와 연결했나? (포착한 글감 위에,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생각과 감정을 얹어야 글이 된다.) (3) 글 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 고쳤나? (글을 퇴고하면서 생각을 다시 정리한다.)
결과물이 어땠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학생을 두 유형으로 나누어야 한다. 첫째, 글감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생각하고, 계획을 먼저 세운 후에, 계획대로 쓰는 이성적인 유형. 둘째, 타고 난 직감과 본능을 좇아서 일단 자유롭게 쓴 후에, 크고 작게 고치는 감각적인 유형. 이 두 유형 중에서는, 이성적인 유형이 아무래도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쉽게 내놓았다. 감각적인 유형에 속하는 학생들은,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헌데, 곰곰 따져 보니, 이성적인 유형과 감각적인 유형으로 나누는 분류법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절반씩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성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글감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감동받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시작하기 어렵다. 한편, 감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글감을 경험하면서 대단히 짧은 시간 동안에라도 글에 관한 설계도를 그리지 않는다면 제대로 써 나가기 어렵다.
물론, 학생이 나처럼 상대적으로 이성적으로 글을 쓰는 유형에 속한다면, 위 세 가지 질문에 좀 더 쉽게 답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예술적 영감에 크게 의지해서 집필하는 문학적인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고, 상식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기초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쌓아 나가는 실용적인 글쓰기를 가르친다. 따라서 내 학생이 실용적인 글쓰기를 배우는 한, 글쓰는 과정을 사후에 논리적으로 되짚어 보는 연습이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자, 이제 서론은 그만. 5개월째 나에게 글쓰기를 배우고 계신 학생 분께서 쓰신 글과, 이 글을 어떻게 썼는지에 관해서 쓰신 글을 유기적으로 종합해서 제시해 보겠다.
제목: 거북이
글쓴이: 박지선(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연구원,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난 어딜 가든 항상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출근할 때, 산책 나갈 때, 장 볼 때, 심지어는 의자에 앉아서도 얼마간은 책가방을 멘 상태로 있곤 한다. 등에 무엇이라도 묵직하게 매달아야(?) 마음이 편하다.
등에 묵직한 무언가가 있어야 마음에 평온을 느낀다.나는 대학 때부터 습관처럼 책가방을 메고 다녔다.대학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 던졌다.“꿀단지라도 들어 있는 거야? 거북이 등껍질 좀 떼어놓는 게 어때?”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러게. 완전 거북이 같아“라고 덧붙인다. 이내 또 다른 친구들까지 동조한다. 그 때부터 난 대학시절 내내 ‘거북이’로 불렸다.대학 졸업 후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별명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졸라 빠른 거북이.’ 학과사무실에서 함께 조교로 일한
활동을 했던한 선배가 지어줬다. 말하는 속도는 느릿느릿한데 일 처리와 행동은 생각 외로 빠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운 별명은 금방 소문이 났고, 석사과정 2년 동안 난 ‘졸라 빠른 거북이’로 불렸다.사회복지사로 발을 내딛은
담은첫 직장에서도 난 ‘졸라 빠른 거북이’가 되어 있었다. 자칭했다는 편이 정확하겠다. 면접 때 학창시절 별명을 묻는 질문을 받았고, 난 망설임없이 ‘졸라 빠른 거북이’라고 답했다. 당시 내 사수는 ‘졸라 빠른 거북이’라는 별명과 내 모습이 너무 맞아떨어진다며 지금도 가끔 나를 보면 장난삼아 그렇게 불러주신다.그나저나 별명을 따라가는 것일까? 요즘은 거북목이 되어버린 내 모습에 약간 씁쓸해진다.
(1) 어떻게 글감을 포착했나?
나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 마음 속 과거 폴더를 하나씩 꺼내서 열어본다. 요즘은 ‘습관 폴더’를 꺼내 보는데, 이전에 쓴 ‘졸음껌’에 이어 ‘거북이’란 별명이 떠올랐다. 어딜 가든 가방을 메는 습관 때문에 친구가 만들어줬다. 별명을 떠올리니 연상단어 게임하듯 푸우, 박진영, 엠버 등 아주 짧게 거쳐간 별명까지 떠올랐다. 별명을 나열한 글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길어지거나 지루해질 것 같아 ‘거북이’에 집중하기로 했다.
(2) 어떻게 글감을 주제와 연결했나?
[B] 거북이를 생각하니 당시 모여 앉았던 공간과 친구들, ‘거북이 등껍질’이라고 표현했던 친구 얼굴과 표정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C, D] 거북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졸라 빠른 거북이’도 연달아 떠올랐다. 두 별명이 나름 연결고리가 있기에, 별명이 붙여진 상황 설명으로 두세 단락은 나오겠다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B 생각을 글로 옮긴 단락) 대학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으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꿀단지라도 들어 있는 거야? 거북이 등껍질 좀 떼어놓는 게 어때?”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러게. 완전 거북이 같아“라고 덧붙인다. 이내 또 다른 친구들까지 동조한다. 그 때부터 난 대학시절 내내 ‘거북이’로 불렸다.
(C 생각을 글로 옮긴 단락) 대학 졸업 후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별명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졸라 빠른 거북이.’ 학과사무실에서 함께 조교로 일한 한 선배가 지어줬다. 말하는 속도는 느릿느릿한데 일 처리와 행동은 생각 외로 빠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운 별명은 금방 소문이 났고, 석사과정 2년 동안 난 ‘졸라 빠른 거북이’로 불렸다.
(D 생각을 글로 옮긴 단락) 사회복지사로 발을 내딛은 첫 직장에서도 난 ‘졸라 빠른 거북이’가 되어 있었다. 자칭했다는 편이 정확하겠다. 면접 때 학창시절 별명을 묻는 질문을 받았고, 난 망설임없이 ‘졸라 빠른 거북이’라고 답했다. 당시 내 사수는 ‘졸라 빠른 거북이’라는 별명과 내 모습이 너무 맞아떨어진다며 지금도 가끔 나를 보면 장난삼아 그렇게 불러주신다.
(3) 글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 고쳤나?
‘거북이’와 ‘졸라 빠른 거북이’를 뼈대로 삼고, 당시 별명을 붙여준 친구가 해 준 말과 상황을 살로 붙여 한 단락씩 먼저 썼다. 이 부분이 본문이 되겠다 싶었고, [A]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 필요해 보여 가방 매는 습관을 설명하는 글을 가장 첫 단락에 써 넣었다.
(A 생각을 글로 옮긴 단락) 난 어딜 가든 항상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출근할 때, 산책 나갈 때, 장 볼 때, 심지어는 의자에 앉아서도 얼마간은 책가방을 멘 상태로 있곤 한다. 등에 무엇이라도 묵직하게 매달아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대학 때부터 습관처럼 책가방을 메고 다녔다.
여기까지 쓰고 한번 읽어봤다. 마무리짓는 단락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고민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기에 무엇을 써야 할지 꽤 고민했다. 거북이 에피소드가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 흐름상 시간에 대한 부분도 고려하고 싶었다(주: '거북이' 글감과 관련된 현재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최근 내가 보내는 일상에서 거북이와 연결지을 만한 소재나 장면이 없을지를 생각해 봤다. [E] 내 얼굴이 거북이같기도 하고, 이전보다 움직임도 많이 둔해진 것 같고, 별별 생각을 하다 결국 떠오른 단어가 ‘거북목’이었다. (노트북 앞에서 목을 내밀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정확히 지금 상황이기도 하여 나쁘지 않겠다 싶었고, 그렇게 거북목으로 짧게 마무리했다.
(E 생각을 글로 옮긴 단락) 그나저나 별명을 따라가는 것일까? 요즘은 거북목이 되어버린 내 모습에 약간 씁쓸해진다.
<메타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습니다. 박지선 선생님께서는 그냥 글도 잘 쓰시지만, 글 쓰는 과정을 복기하는 글도 분석적으로 잘 쓰시네요.
2. 그동안 제가 제시한 글쓰기 틀(형식)은 '서사(서론/글감 소개) + 설명(본론/글감에 핵심 생각 연결하기 – 주제 제시)’입니다. 그런데, ‘거북이’ 글은 약간 다릅니다. 순수한 ‘서사문’에 가깝습니다. 즉, '거북이' 글에는 '서사' 요소만 있고 '설명'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 단락이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본격적인 생각을 선명하게 펼치는 본론이 아니라, 살짝 여운을 남기면서 마무리짓는 (서사) 결론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박지선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거북이' 글에서는 세 가지 중심 에피소드(대학 시절, 대학원 시절, 사회 초년병 시절)를 본론으로 보아야 합니다.
3. 박지선 선생님께서는, 제가 가르친 내용에 따라서, 본론(정말 표현하고 싶은 핵심 생각/감정)부터 먼저 쓰시고, 나중에 서론(글감 제시)과 결론(현재 이야기 + 여운)을 덧붙이셨지요. 전체적으로, 내용도 충분히 포화되었고, 형식 면에서 구조나 리듬도 아주 훌륭합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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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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