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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괜찮다, 괜찮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8. 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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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토닥토닥. 괜찮다, 괜찮다

     

    글쓴이: 권송미(사랑누리장애인단기보호센터 원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3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헤어짐을 선택했다.) 마음이 떠나버린 그 사람에게 더는 구차해지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익숙한 동네 골목이 눈물로 뿌옇게 보였다. 그대로 서 있기 힘들어 담벼락에 기대었다. 흐르던 눈물은 이내 통곡이 되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단지 이별이 아파서 울진 않았다. 이별도 예의가 필요한데, 그는 이별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왔다고, 그래서 마음이 변했다고 이야기하기 싫어서, 나로선 아픈 핑계를 대며 모질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모진 말로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나는 네가 아픈 사람이라 힘들었어.” 이 말이 너무 아파서 길 위에 서서 꺼이꺼이 울었다.

     

    200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응급실에 있었다. 간호사가 측정한 내 혈당 수치는 576이었다(정상 수치에 비해서 4~5배 이상 높음). 쓰러지지 않고 응급실까지 혼자 걸어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고 의료진은 말했다. 나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 옆 집중관리실에 입원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케토산증(혈당 조절이 되지 않아 몸이 산성화되어 장기가 망가지는 증세)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사는 1형 당뇨라고 진단하면서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췌장이 멈춰버려서 하루 4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꼼짝없이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병원에서 맞이해야 했다. 그때 바로 그 사람이 입원 서류에 보호자라고 자기 이름을 썼다. 

     

    내가 처음 아팠을 때 보호자라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섰던 사람이, 이제 와서는 내가 아픈 사람이라서 힘들다고 말하니, 절망스러웠다. 그와 나눈 추억이 마음을 찌르는 가시로 돌아와 피 흘리듯 아팠다. 순간순간 눈물이 나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발달장애인 4명을 돌보아야 하는 그룹홈(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사회복지사였다. 나 혼자 행정 업무와 프로그램, 장애인 케어 및 일상 생활을 모두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아픈 마음과 몸을 일으켜 밥을 하고, 함께 사는 장애인을 돌보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울고 있는 내 등을 누군가 토닥토닥 다독였다. 진영(가명) 씨였다. 지적장애로 발현 언어가 어려운 그가 웅얼웅얼하며 나를 토닥였다. 진영씨가 내 등을 토닥이던 손과 나를 바라보던 눈은, 나에게 괜찮냐고, 그만 울라고 위로하며 말하는 듯했다. 진영 씨 덕분에 나는 ‘아픈 사람’에 머물지 않았다.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견디고 이겨나갈 힘을 얻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장애인을 일방적으로 돌보지 않았다. 내가 아파할 때 나를 위로해 주었고, 그분들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내 삶도 변했다. 그러니까 그 분들도 나를 돌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돌보았다. 우리는 20년이 넘도록 함께 서로 돌보면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냈다. 나는 여전히 ‘아픈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나여도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그때 나를 위로해 준 사람들과 사랑누리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잘 산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권송미 원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권송미 원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심화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내용에 대한 피드백

     

    제가 어째서 '글을 솔직하게 쓰면'이 다른 어떤 훌륭한 글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는지, 권송미 원장님께서 글을 써서 절절하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누군가와 아프게 헤어지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도 뜨겁게 진솔해서, 읽는 사람 마음이 금방 설득됩니다. 이 글 내용도, 대단히 특수하지만 그만큼이나 대단히 보편적입니다. 정말로 잘 쓰셨습니다. 

     

    (2) 형식에 대한 피드백 

     

    연인과 헤어진 이야기를 먼저 꺼내셔서, 아픈 연애 이야기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직업적인 맥락에 덧입혀서 더 큰 이야기로 만드셨어요. 표현력이 워낙 뛰어나신데 이야기를 굉장히 부드럽게 전환하셔서, '어? 이야기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또 다른 공간에 도달합니다. 글을 쓰시기 전에 많이 고민하시고, 소재/주제를 많이 생각하셨겠지요? 선생이 지도한 내용을 잊지 않고 성실하게 수행하셔서 이렇게 글을 빛나게 쓰신 듯합니다. 

     

    (3) 문장/어법에 대한 피드백

     

    동사를 억지로 명사로 만든 표현을 쓰지 마시고, 원래대로 돌려 놓으세요. 

     

    원문에 이렇게 쓰셨죠: (예문 1) 헤어짐을 선택했다. 

    저는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예문 1-1)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원장님께서는 '헤어지다(이별하다)'를 '헤어짐'으로 바꾸셨습니다. 동사를 명사로 바꾸셨지요. 그런데 한국어는 동사/형용사가 다채롭게 발달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동사/형용사를 (특히 서술어로서) 살려 써야 생기가 돕니다. 그러므로 '헤어짐'을 '헤어지다'로 바꾸시고, 적절하게 사용하셔야 생기가 돕니다. 

     

    이런 문장도 쓰셨습니다: (예문 2) 모진 말로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저는 이렇게 바꾸었지요: (예문 2-1) 

    나로선 아픈 핑계를 대며 모질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거의 비슷한 패턴입니다. 원래 동사로서 태어난 단어를 부자연스럽게 명사로 바꿔서 문장이 뻑뻑해집니다. 사실, 그동안 첨삭 지도하면서 권송미 원장님께서 '매우 자주' 명사화한 동사 패턴을 구사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이 강점을 가로막는 뻑뻑한 문장 패턴을 뜯어 고치셔야 합니다.  

     

    간단합니다. 언제나, 최대한 동사와 형용사를 살려 쓰세요.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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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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