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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좋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8. 10. 07:15728x90반응형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좋다
글쓴이: 차정숙(군산나운종합사회복지관 과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저 언니 곱게 늙었다야!"
"저 오빠는 여전하다, 왜 우리만 늙었대?“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여러 가수가 나온다는 공연에 왔다. 우리가 문이 닳도록 다녔던 ‘롱다리노래방’인 양 신나게 노래를 따라부르고 흔들었다.
H와 L과 S, 우리 넷은 고등학교 때 만났다. 우리는 교과서보다 그 시절 유행했던 패션잡지나 음악방송에 빠졌다. 몰려 다닌다고 언니 오빠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핀잔을 들었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놀았다. 우리 학교가 미션스쿨이라 매주 드리는 예배 시간에 자주 도망쳐 나왔고 시험 기간에 학교가 일찍 파하면 빨간 비디오를 빌려 집집마다 순회했다. 또 동시상영 극장에서 본 영화 얘기를 문과 반반마다 알려주려고 쉬는 시간마다 돌고 돌았다. 환경단체에서 개최한 가요제에도 나가 인기상으로 받은 상금 몇 배를 뒷풀이로 쓰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이지 공부를 뺀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열일곱 여고생은 항상 배고프다 Ep. 1
아침 보충수업에 늦지 앉으려면 아침을 굶고 오는 날이 부지기수.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해 2교시 수업 마치기 5분 전 필담을 나눈다.
‘컵라면?’
‘몸 생각해야지, 삶은 계란도 하나’
‘종 치면 튀어’
‘당근빠따’
종이 울리자마자 5층 교실에서 1층 가장 구석 매점까지 정신없이 달려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며 ‘아버지 뭐하시노’ 친구 OST가 들리는 듯하다. 매점에 도착하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계산하자마자 물 붓고 계란을 깠다. 두 눈은 시계로 고정. 10분 안에 먹고 5층 교실까지 복귀하려면 면발이 익도록 기다리라는 3분은 사치였다. 1분이나 지났을까 와그작와그작 덜 익고 뜨거운 라면을 입천장이 까지고 데이면서 먹었다. 속도가 남다른 H는 벌서 끝, 나를 재촉했다. 꾸역꾸역 밀어넣고 다시 5층 교실로 돌아간다. 내려올 때와 달리 올라갈 때는 훨씬 힘들다. 배가 부르니 속도가 더 느려졌나 보다. 끌어당기고 밀어주고 겨우겨우 종소리와 함께 교실 도착. 배가 부르다. 3교시도 숙면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열일곱 여고생은 항상 배고프다 Ep. 2
교문 바로 옆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간판도 없는 분식집. 저녁 시간 배고픈 여고생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 (을 혼미하게 만드는 곳), 우리는 그곳을 ‘기둘려분식집’(서빙을 하는 할아버지는 항상 ‘어~ 기둘려’를 외치셨다)이라고 불렀다. 떡볶이, 라면, 김밥. 달랑 메뉴 세 개지만 우리에게는 미슐랭 3스타 버금갔다. 심지어 전 메뉴 천 원!
저녁 시간 종이 치면 번개처럼 달려가 이곳에서 만찬을 즐겼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젓가락 열댓 개가 모여든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손놀림이 빠르고, 면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라면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을 때 방 한구석에 놓인 전기 밥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 주방을 쓰윽 살폈다. 주방아주머니는 라면과 떡볶이를 조리하느라 바쁘고, 할아버지도 서빙하느라 바쁘시다.
‘지금이다!’
나는 망을 보고 H는 슬로우 모션으로 밥솥을 열어 두 숟갈 밥을 퍼 옮겼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도 몰랐다. 계산할 때까지 시침 뚝하고 나와서 ‘장발장이냐’ ‘빵대신 밥을 훔쳤냐’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밥까지 몰래 훔쳐먹는 여고생이라니 뉴스에 나올 일이었다.
참새방앗간에서 시작한 인연: L과 처음 인사한 곳, 이성당
수업마치고 항상 그래왔듯 H와 ‘이성당’에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눈앞에서 요즘 말로 썸 타는 중, 꽁냥거리는 커플을 발견했다. 열일곱 여고생에게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닌데 뭔가 어색하고 또 한편으론 웃음꽃이 핀다. 아무 상관도 없지만 또 너무 궁금하다. 바로 옆테이블에는 같은 교복을 입은 두 여학생이 보인다. 어! 바로 옆반 애다. 거침없이 다가가 바로 옆에 앉아버렸다.
“너 나 알지? 너네 엄마랑 우리 엄마랑 친구래.”
“어... 알어”
“그럼 우리도 이제 인사하고 지내자”
“그... 그래”
“나랑 내 친구랑 너무 궁금해가지고 말야, (갑자기 속삭이며)이 커플 뭐하는지 같이 듣자”
L과 나는 이날부터 친구가 되었다.
L은 키가 굉장히 크다. 어딜 가도 눈에 띄고 주목을 받아서인지 성격은 오히려 의기소침했다. 그런데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로 까불대던 우리를 만나 L이 변하기 시작했다. 같이 길을 걸을 때 옆에서 키를 대보던 남학생에게 대신 화를 내고, ‘너도 해’ 바람을 잡았다. 말도 안 되는 장기로 가요제도 나가자고 부추기고 모델 학원에 보내자고 포트폴리오도 같이 준비했다.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을 ‘우리’는 같이 했다.
연예인 한번 보자: H와 내가 오갔던 창고 앞, 초원사진관
군산은 아주 작은 지방 도시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에 열일곱 여고생 마음이 들썩인다.
“명화극장 옆에 무슨 간판 걸렸잖아, 거기라는데?”
“심은하래잖아, 한번 가줘야지”
“언제? 오늘?”
“오늘!”
수업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도 구경꾼이 많다. ‘초원사진관’ 간판 앞에는 티비에서 보던 영화촬영장처럼 조명이며 여러 가지 장비가 거창하다. 가뜩이나 키도 작은데 까치발을 들어본들 배우가 보일 리 만무하다. 한참 동안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다보니 겨우 보일락말락하다. 대체 누가 배우인지, 정말 심은하가 맞는지 궁시렁거리는데 경광봉을 든 스텝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는 사람도 우리를 말렸다. 영화배우 구경 한번 해 보려고 열심을 떨었는데 창피하고 또 머쓱해져버렸다. 둘이서 눈이 마주친 순간 웃음이 터졌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는다는 열일곱 여학생 둘은 결국 구경도 멈추고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신나게 웃어버렸다. 그렇게 우리 동네가 떠들썩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그 날 우리는 심은하 배우 뒷모습만 겨우 봤다.)
같은 동네에 사는 H와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 같은 동아리였다. 우리는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비슷했다. 제일 친한 친구이면서 또 둘이 참 많은 사건사고를 쳤다. 담임 선생님마다 둘이 그만 붙어 다니라 다그쳤다. 가끔 상상해본다. 시간을 돌려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어떨까. ‘H랑 열심히 놀면서 또, 공부도 열심히 한 번 해 보자 해야지’라고 생각해본다.
새내기 대학생 고군분투기: S와 함께한 공부방 봉사, 해망굴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노느라 바빴던 어느 날, 우연히 봉사 모집 홍보지를 보았다. YWCA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학습지도 봉사자를 모집한단다. 호기심에 물어보니 3월에 입학할 예비대학생도 할 수 있지만, 일단 시작하면 1년 동안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S와 나는 한번 해보기로 했다.
공부방에 다니는 형석이는 유독 볼이 빨간 남자애였다. 수줍음이 많아 한 번도 큰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지만 눈웃음이 귀여웠다. 형석이는 결석도 없이 성실히 공부방에 출석했다. 우연히 S가 부모님이 계신 가게에서 봉사하러 오는 날, 형석이를 ‘해망굴’에서 만났다고 했다. 해망굴은 바닷가 쪽인 해망동과 시내를 연결하는 터널인데 바람이 많이 불어 한여름에도 전혀 덥지 않았다. S는 형석이가 그 터널을 넘어오느라 볼이 얼어서 항상 볼이 발그레했던 듯하다고 얘기해 줬다. 우리는 형석이가 기특하고 또 한편으로 애틋했다. S는 부모님 가게에 갈 때마다 형석이를 챙겼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나와 달리 어문계열 학과에 진학해서 봉사활동이 꼭 필요하지 않았지만 S는 나보다 훨씬 열심히 활동했다.
S는 모범생이었다. 우리와 달리 튀지 않았지만 성실하고 야무지고 똑부러졌다. 우리가 말짓(사투리: 하지 말하야 할 못된 짓)을 할 때마다 S도 같이 있었으니 S에게 우리는 ‘해방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숨겨놓은 끼를 우리랑 있을 때 한번씩 터뜨려 주었다.
세 친구 부모님 모두 자영업을 운영하시느라 늘 바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바쁜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위로했다. 나 역시 기꺼이 그랬다. 지금 각자 직업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여러 역할을 수행하며 치열하게 사는 나와 친구들. 하지만 지금도 그때처럼 항상 든든한 우리. 만나면 여전히 열일곱 여고생처럼 시답지 않을 일에도 웃느라 정신이 없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좋다. 그래서 앞으로 20년 더 기대한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차정숙 과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차정숙 과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심화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내용에 대한 피드백
어째서, 학창 시절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고 언제나 새로울까요? 좋은 소재는 독특하지만 보편적이어야 하는데, 이번에 꺼내 드신 소재야말로 (개인 경험이라서) 독특하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경험한다는 면에서) 보편적이지요. 시기나 모양은 약간씩 다르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던 기억과, 가족도 이해해 주진 못한 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친구는 누구나 있습니다. 이 좋은 소재에 차정숙 과장님만 내실 수 있는 맛(세심하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하면서도 여운이 남는)을 슬쩍 더해서 멋지게 써 내셨습니다. 정말 잘 쓰셨습니다.
(2) 형식에 대한 피드백
초고를 내셨을 때, 제가 역으로 제안했지요? 소재/주제가 썩 괜찮으니, 연작으로 써 보시면 어떻겠냐고요. 그때 써 내셨던 에피소드가 바로 항상 배고픈 여고생 무리가 구내 매점으로 달려가는 장면이었죠. 비슷하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을 듯하여, 다른 에피소드도 덧붙이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최종적으로 내신 작품을 읽어 보니, 제가 제안한 내용을 너무나도 잘 소화하셨어요. 무엇보다도, 차정숙 과장님께서 이렇게 긴 글도 밀도를 떨어 뜨리지 않으시면서 충분히 풍성하게(즉, 충분히 포화되도록) 잘 소화하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셨다고 봅니다.
(3) 문장/어법에 대한 피드백
사물을 주어로(사람을 목적어로) 쓰면서, ~하게 하다로 끝맺는 문장을 부드럽게 고치세요.
원문에 이렇게 쓰셨죠: (예문 1) ~ 간판도 없는 분식집. 저녁 시간 배고픈 여고생을 혼미하게 만드는 곳.
자, 이 예문은 형태상으로는 두 문장이지만, 의미상으로는 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재정리하겠습니다.
(예문1-1) 간판도 없는 분식집은 저녁 시간 배고픈 여고생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이 문장을 차근차근 문장 구성 요소로 분석해 봅시다. 주어가 뭔가요? 분식집이죠. 목적어는 뭔가요? 여고생이죠. 동사는 뭔가요? 혼미하게 만들다. 전형적인 사역동사 구문입니다. 사역동사? 네, 학창시절 영어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바로 그 문형입니다.
그런데 사역동사 구문을 사용할 때, 주어가 사물(분식집)이고, 목적어가 사람(여고생)이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국어에서는 주어로 사물이 나오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요. 다시 말해서, 한국어에서는 행위 주체로서 사람이 나와야만 자연스럽다는 말씀입니다.
(예문 2) 슬픔이 나로 하여금 울게 만들었다.
단적인 사례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리고 뭐랄까... 약간 시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은 면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말을 쓰진 않지요. 어색하다는 뜻입니다.
(예문 2-1) 나는 슬퍼서 울었다.
어떤가요? 훨씬 쉽고, 간결하지요? 그리고 읽으면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요. 어려운 문법 용어는 잊으세요. 그리고 그냥 읽어 보세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어색하다면? 고쳐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위 분식집 문장은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요? 쉽습니다. 주어로 사람을 세우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뜻에 맞춰서 단어를 배열하면 됩니다. 해 볼까요?
(예문 1-2) 저녁 시간 배고픈 여고생은 간판도 없는 분식집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때요? 괜찮지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요? 그런데, 원문에서는 이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쪼갰죠. 원문을 쓴 차정숙 과장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문장도 원문 비슷하게 두 문장으로 쪼개 볼까요?
(예문 1-3) 간판도 없는 분식집. 저녁 시간 배고픈 여고생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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