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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하고 달콤한 위로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0. 30. 06:11728x90반응형
짭짤하고 달콤한 위로
글쓴이: 김정현(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초봄에는 손가락 힘줄 수술을 받아서 (로) 한 달 동안, 초여름엔 발가락이 부러져서 (골절로) 한 달여 동안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 출근했다. 우리 부서에서는 입소 어르신(한센인)을 씻겨 드리고, 방을 청소해 드리는 등, 사소한 일상생활까지 지원한다. 동참하는 손이 많을수록 근무자가 덜 힘들다. 보통 2~3명이 케어 업무를 전담하는데, 나는 팀장이라서 주로 행정 일을 하지만 오전에는 가능하면 케어 업무를 지원한다.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면 한겨울에도 땀방울이 맺히는데, 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에 일손을 보탤 수 없어 직원들에게 몹시 미안했다.
직접 뛸 수 없다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일들을 이참에 처리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건의안을 작성하는 등 직원 근무환경개선을 위한 건의안 등 크게 티 나는 일은 아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을 찾아 검토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꼼짝 않고 앉아서 온갖 자료를 찾고 내용을 정리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더워서 더위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더 열심히 일했다. 서로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2022년) 9월 중순, 부서 간담회가 열렸다. 케어 직원 대표가 미리 준비했던 인쇄물을 나눠주었다. 과장, OO팀장, 그리고 나에게 불만스러웠던 사항과 고쳐주길 바라는 요청 사항을 담았달까. 그 중에서도 나에 대한 내용이 유독 대문짝 만하게 보였다: ‘케어 업무에 너무 소홀한 것 같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문득 머리가 멍해졌다. 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사항을 논의했지만,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들이 섭섭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한 듯한데...
서로 묵묵히 자기 일을 실행한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나 혼자서 착각했고, 그들은 내 앞에서만 침묵했을 뿐 서운한 마음을 쌓아가고 있었다. 역시 콕 집어서 말하지 않으면 진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가? 반드시 직접 발로 뛰어야만 어르신을 돌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정도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과 한 팀으로서 함께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어색한 채로 두 주쯤 흐르고 내 생일이 다가왔다. 마음이 우울하니 생일인데도 생일 같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며 별 감흥없이 하루를 보냈다. 저녁 6시가 가까워졌다. 야간 근무자 OOO 선생이 일이 있어 출근이 늦는다고 연락해 왔다. 바로 퇴근하려다가 혹시 많이 늦어지면 혼자 남은 직원이 힘들까봐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6시 20분쯤 OOO 선생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앞에서 서성이던 OOO 선생과 무언가 속닥속닥 얘기를 주고 받는다. 출근자를 확인했으니 퇴근하려고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두 선생님이 다가온다.
“저 이거... 케어팀에서 준비했어요. 회의 자료를 만드느라 내용이 좀 딱딱해져서 그렇지, 우리도 팀장님이 얼마나 애쓰고 계신지 알아요. 힘내세요.”
“큰 거 사려고 돌아다니느라 좀 늦었어요.”
우리 부서원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큼직한 케이크를 건넨다. 무뚝뚝한 OOO 선생이 혼자 다 먹으라고 애교섞인 말까지 보탠다. ‘이거 먹고 살찌라고 이렇게 큰 거 샀느냐?’, ‘선생님들 한 입도 안 줄 거다’ 너스레를 떨며 급히 퇴근차에 올랐다. 집에 도착해서는 온 가족에게 자랑하며 큼직하게 자른 케이크 조각을 입에 잔뜩 밀어 넣었다. 눈물, 콧물에 달콤함이 섞여 세상에서 제일 오묘한 맛이 나는 케이크를 먹었다. 주재료는 위로였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정현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정현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기본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적어도, 내용적으로는 완벽합니다. 중요한 지점을 잘 포착/선택하셨고, 전체 이야기가 적절하게 포화되도록 쓰셨습니다. 글쓴이가 느낀 다채로운 감정을 잘 표현하셨고, 이야기 흐름도 자연스럽고 부드럽습니다. 아주 잘 뽑아 내셨어요.
2. 문장 차원에서 보면, 역시 자꾸 문자를 쓰시면서 압축하시는 습관이 상당히 많이 드러납니다. 문장 내용을 압축하면 필연적으로 명사 중심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접어서 쓰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고쳐 드린 대목을 면밀하게 살피시면서, 본인께서 쓰신 문장과 비교해 보세요. 대체로, 명사(구/절)을 동사(구/절)로 바꾸었습니다.
3. 어법에 관해서 딱 두 가지만 지적합니다.
(a1) 원문에 이렇게 쓰셨어요: ~ 수술로 (...), ~ 골절로 (...)
(a2) 이렇게 고쳤습니다: ~ 수술을 받아서 (...), ~ 발가락이 부러져서 (...)
원문을 들여다 보면, '이유' 의미를 전달하려고, 명사(수술, 골절) 뒤에 '로'를 붙여서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로'를 동사 표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동사를 활용하면 아주 조금 더 부드럽게 들립니다.
(b1) 원문에 이렇게 쓰셨어요: 직원 근무환경개선을 위한 건의안 등
(b2) 이렇게 고쳤습니다: 직원들이 일하는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건의안을 작성하는 등
김정현 선생님께서는 책을 많이 읽으신 지식인이시죠. 그래서 어휘도 풍부하고 정확하며 고급지게 구사하십니다. 다만, 문장 전반에 걸쳐서 '먹물' 티가 많이 납니다. 예컨대, 주로 한자어를 사용하셔서 문장 의미를 압축하십니다. 이렇게 한자어로 문장을 압축하면, 결과적으로는 동사보다는 (추상) 명사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비유컨대) 풀이 죽는달까요, 생생한 느낌이 줄어듭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김정현 선생님께서는 동사(형용사)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살려 쓰셔야 합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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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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