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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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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투

     

    글쓴이: 민경재(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매우 피곤하다. 더 늘어지게 자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시어머니 생신이다. 우리는 경기도 군포에 살고 어머니는 천안에서 사시면서 파리바게트를 운영하신다. 전화를 걸어 약속을 정한다. 

     

    나: “어머니 점심, 같이 해요?”

    시어머니: “얼굴 본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안 내려와도 된다.”

    나: “어머니 생신인데 같이 식사라도 해야죠. 천안 금방 가요.”

     

    어머니께서는 (늦게) 아침을 늦게 드셨다며 오후 한 시에 만나 점심을 먹자 하셨다. 

     

    열한 시 사십 분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 차가 많다. 길이 막힌다. 꾸벅꾸벅 졸다가 겨우 눈을 떴다.

     

    나: “어머니 드릴 용돈 찾았어?”

    남편: “아니, 천안 가서 찾아야지”

    나: “얼마 드릴 거야?”

    생신 용돈을 물어봤는데 남편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남편: “어머니 힘드신가 봐. 용돈 드린다고 말씀 드리면 “엄마 아직 돈 버니까 괜찮다” 하시더니, 이번에 “용돈 좀 드릴까요?” 말씀드렸더니 아무 말씀 안 하시더라고.”

     

    나는 어머니께 갑자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고 감당하기 어려워하신다는 사실을 대략 알았다. 

     

    남편: “어머니께 육 개월 정도 오십만 원씩 드릴까,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 

     

    남편이 묻는다. 한참동안 (을) 가만히 있었다.

     

    나: “힘든 이야기를 들으니, 몸이 쑤시는 느낌이야 몸살이 오려나!” 

     

    좌석 열 시트 버튼을 누르고 생각에 잠겼다. 한 달에 오십 만원, 우리 사정도 있으니 흔쾌히 그렇게 하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혹여나 어머니께서 우리 형편이 괜찮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나: “그래 그러자, 그런데 육 개월 정도 드릴 수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 있어?” 육 개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단서를 붙였다.

     

    어머니와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감기가 들어 몸이 좋지 않으셨다. 문제가 조금 해결되어 한숨은 돌리셨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사정이 나아졌다고 말씀하시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남편은 오늘 생신 용돈만 드리면 되겠다고 한다. 나도 여러 달 용돈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부담이 적었다. 

     

    나: “오십만 원 찾았어?”

    남편: “아니 이십만 원 드리려고 하는데.”

    나: “무슨 소리야, 오십만 원 드려야지!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기운 내시게 오십만 원 용돈 봉투에 넣어요.”

     

    어머니는 집에 있던 포도며 대추며 챙겨주신다. 나는 괜찮다고 어머니 잘 챙겨 드시라고 말씀 드리는데도 기어코 한 봉지 가득 내 손에 넘기신다. 엄마 빵 가게 할 때라도 마음껏 먹으라며 빵도 가득 담아주신다. 한가득 선물을 받고 나는 작은 용돈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니 많이 못 도와드려 죄송해요! 더 잘 살아서 어머니 든든하게 해 드려야 하는데...” 인사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늦은 밤 어머니께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다. 

     

    “너희도 애들하고 어려운데 왜 돈을 이렇게 많이 줬어! 미안하게~~ 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어면 좋겠구나. 고맙다 잘 쓸게. ^^♡” 

     

    용돈을 자주 드리지도 못하는데 (자주 드리는 용돈도 아닌데) 많이 받았다고 미안해하시는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다. 우리 어려운 상황을 모르실까,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집안에 버거운 일이 생기면 먼저 속상한 내 마음을 추스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인다. 오늘도 힘겹게 살고 계신 어머니, 늘 후히 주시는 어머니 모습이 이제야 보인다. (어머니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민경재 센터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민경재 센터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기본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습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약간 길다고 느꼈지만, 다시 읽어 보니 시어머니 용돈 관련해서 고민하고 주저하신 과정을 고려하면 오히려 약간 길게 느껴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포화 개념을 실전에서 느껴 보셨다고 생각하세요. 

     

    2. 민경재 선생님 글에는 내용상 군더더기가 거의 없습니다. 퇴고하면서 많이 들어내셨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결국 생각을 거듭하시면서 군더더기를 덜어내신 셈이니, 과정이 무척 훌륭하다고 평가해야겠네요. 

     

    3. 어법에 관해서 네 가지 사항을 지적하겠습니다. 

     

    (a1) 원문에 이렇게 쓰셨지요: 어머니께서는 (늦게) 아침을 드셨다며

    (a2) 이렇게 고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을 늦게 드셨다며

     

    부사 '늦게'는 동사 '드셨다며'를 꾸미는 수식어구입니다. 수식어구는 가급적 피수식어 가까이에 놓아야 독자가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b1) 원문에 이렇게 쓰셨지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b2) 이렇게 고쳤습니다: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한참'은 시간/기간을 나타내는 명사입니다. 따라서 그 뒤에 목적격 조사 '을/를'보다는 '동안'을 붙여서 부사로 처리하는 편이 좀 더 낫겠습니다. 

     

    (c1) 원문에 이렇게 쓰셨지요: (자주 드리는 용돈도 아닌데) 

    (c2) 이렇게 고쳤습니다: 용돈을 자주 드리지도 못하는데 

     

    원문 문장에서 주어는 무엇일까요? 자연스럽게 생략하셨지만, '이 용돈이'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A는 B이다' 문형에 속합니다. '-이다'로 문장을 끝내면 단조롭습니다. 그래서 주어를 '내가'로 바꾸고, 명사(용돈)를 강조하는 '자주 드리는 ~도 아닌데'를 동사를 강조하는 '자주 드리지도 못하는데'로 바꾸었습니다.  

     

    (d1) 원문에 이렇게 쓰셨지요: (어머니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극영화를 촬영할 때, 가장 피해야 할 장면은 무엇일까요? 바로, 극중 인물이 극 바깥에 존재하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대사를 읊는 장면입니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극영화라는 판타지 세계가 무너지게 되니까요. 센터장님께서 쓰신 마지막 문장은 마치 극영화에서 극중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 보고 말하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약간 어색해서 그냥 생략했습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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