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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즈, 달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3. 06:16728x90반응형
마티즈, 달려
글쓴이: 김정현(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부아앙~”
바둑무늬 깃발이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나는 페달을 힘껏 밟았다.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바퀴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경기장에는 흙먼지가 일고 함성 소리가 뒤엉켜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친다. 급회전 구간을 지나며 앞서가던 차들을 차례로 따돌린다. 이제 한 바퀴만 남았다. (마지막 한 바퀴다.)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순간, 속력을 이기지 못한 내 차가 가이드 레일 벽을 긁으며 심하게 흔들린다. 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이 흔들린다. 어지럽다.
“여보, 일어나!”
겨우 눈을 뜨는데 아직도 몸이 흔들린다.
“아니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심하게 해? 승리는 또 뭐야? 애들 아침밥 안 차려줄 거야?", "집 앞에 세워둔 차도 운전하지 못하면서 무슨 카레이싱. 개꿈이네.”
“꿈도 못 꾸냐?”
잠을 깨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황금색 마티즈가 보인다. 한숨이 나온다. 운전대만 잡으면 긴장해서 머리 속이 하얗다. 겨우겨우 면허는 땄지만 무서워서 운전하지 못했다. (그 무서운 운전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 손에 끌려 운전대에 앉으면 겨우 한 시간 남짓 직진만 하다가 지쳐버렸다.
직장을 옮기고 내가 맡게 된 업무는 ‘후원과 홍보’. 과장님은 시내 다섯 곳에 다니면서 서류와 물건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첫 임무였다. 그런데 내가 운전 못 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큰길까지 걸어가서 택시를 탔다. 무사히 지나갔다. 그 다음에는 직장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기관에 가서 자원봉사 관리자 교육을 받고 오라는 임무를 받았다. ‘교육이니까 여러 명이 같이 갈 거고 원내 차를 이용하면 나는 운전 안 해도 되겠지’ 혼자 추측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과장님은 나 혼자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남몰래 택시 타고 간다고 문제를 풀 순 없었다. 어쨌든 이번엔 나 스스로 운전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목적지가 운전 연수 받기 위해 달려봤던 직진 코스였고 남편이 집에 있어 같이 갈 수 있었다는 점이랄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가 이런 경우로구나. 비상 깜빡이를 켜고 시속 30km 속도로 한 시간 반을 달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도 시속 30km 이상은 엄두도 못 냈다.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아 과장님은 퇴근도 못 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날 세 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 열쇠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담담했다. 시동을 켜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살짝 뗀다. 살짝 긴장은 되지만 왠지 할 수 있을 듯하다. 엑셀레이터 페달을 좀 더 깊게 밟아 본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머뭇거리면서 차선도 변경해 본다.
시간이 흘러 내가 입사한 지도 사 년이 넘었다. 일이 생겨서 친정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앞차 속도가 늦어 답답하다. 부아앙~ 수년 전, 꿈 속에서 카 레이싱을 펼치던 때처럼, 급히 1차선으로 바꿔 들어가며 등 뒤로 한 마디 안 남길 수가 없다.
“아니, 누가 고속도로에서 90km로 다니냐? 마티즈도 100km은 달린다야.”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정현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정현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기본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어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본인에게 의미있고, 타인에게도 흥미로울 법한 이야기를 잘 선택하셨습니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잘 섞으셨어요.
2. 첫 번째 단락에서 보여 주신 '묘사적 서사 ' 부분이 특별히 좋습니다. 느낌이 생생하기도 하지만, 내용상 운전 초보셨던 김정현 선생님 모습과 잘 대비가 됩니다. 내용과 표현이 너무 좋아서 후반부 내용을 첨삭할 때 슬쩍 인용했습니다. (부아앙~ 수년 전, 꿈 속에서 카 레이싱을 펼치던 때처럼, 급히 1차선으로 바꿔 들어가며 등 뒤로 한 마디 안 남길 수가 없다.)
3. 이제 보니, 김정현 선생님께서는 겉으로는 할 말이 많지만, 쓰신 글을 뜯어 보면 자잘하게 내용을 생략하시네요. 그래서 글이 여러 곳에서 뻑뻑합니다. (김정현 선생님 설명: "일단 초고를 더 많이 썼어요. 그런데 지적해 주신 여러 부분이 모두 군더더기처럼 느껴져서 다 삭제했어요.") 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간결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감을 찾는 중이시네요. 좋습니다. 인정. 어느 정도 선이 적당한지 정답은 없겠지만, 어쨌든 저에게 배우시니 우선은 제가 느끼는 선으로 맞춰 보세요. 그 선에 익숙해지시고 나면, 그때부터 본인 선을 정하시고 지키시면 됩니다.
4. 어법 관련해서는 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a1) 초고에서 이렇게 쓰셨지요:
마지막 한 바퀴다.
(a2)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이제 한 바퀴만 남았다.
'마지막 한 바퀴다' 문장에서 주어는 무엇일까요? 생략하셨는데요, 굳이 복원하자면 '이번 바퀴가'입니다. 술어는 '한 바퀴(명사)+이다'이고요. 'A는 B이다' 구조를 사용하셨어요. 늘 말씀 드리지만 문장을 '-하다' 혹은 '-있다' 혹은 '-이다'로 끝내시면 지루합니다. 한국어는 술어(동사/형용사)를 최대한 다채롭게 살려 써야 생기가 돌거든요. 그래서 '바퀴이다'를 '남았다'로 바꾸었습니다.
(b1) 초고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 무서운 운전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b2)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무서워서 운전하지 못했다.
초고에 쓰신 문장을 들여다 보면, '무섭다'는 형용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형용사를 '운전(명사)'을 앞에서 수식하는 관형어로 쓰셨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부사로 바꾸어서 '운전하지 못했다(동사)'를 수식하도록 썼습니다. 한국어는 '관형어+명사' 패턴보다는 '부사+동사' 패턴을 살려 써야 생기가 돕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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