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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1편)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6. 07:13728x90반응형
나는 해결중심상담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는 '부디 자신을 홀대하지 마시라', '자신에게 가혹한 기준을 대지 마시라'고 가르친다. 해결중심상담을 배우는 사람(사회복지사)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데, 타인(클라이언트)을 진정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야말로 이 말이 가장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정말로 가혹한(?) 기준을 대기 때문이다.
5년 전까지,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뛰어난 해결중심치료자가 되고 싶었다. 그냥 최고가 아니다. 한국에서 최고도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해결중심치료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결중심치료 관련 문헌을 많이 읽었다. 해결중심치료는 세상에서 가장 간결한 상담 모델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간결한 모델을 이해하려고 영어책을 150권 이상 사서 읽었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 대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토론했다.
실제로 임상 경험을 쌓으면서도 나는 치열하게 노력했다. 단 한 가족을 돕기 위해서 외국 논문까지 찾아서 번역하면서 상담을 준비했고, 회기가 끝나면 (내담자에게 허락받고) 녹음한 상담 내용을 수없이 고쳐 들으면서 내 기술을 다듬고 연마했다. 지도받으려고 외국 대가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 한국인은 고3 시절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나는 최고 해결중심치료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
남들은 5년 걸려서 도달한 지점에, 나는 2년 만에 도달했다.
그런데 3년 전, 나는 운명적으로 현재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 부모라서 난임 클리닉에 다니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건강하고 고운 딸을 낳아 키우게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무엇을 포기했나? 박사학위를 포기했다. 뒤늦게 대학원을 다니면서 시작한 공부, 남들보다 열 배는 더 치열하게 공부했으므로 멋지게 마침표를 찍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주로 선생으로서 일하는데,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에 (아내가 출근한 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그리고 주말에는 두 사람이 함께(물론, 아내가 좀 더 많이) 아이를 돌본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쉽진 않다. 아내는 발달장애인을 돕는 뛰어난 사회복지사, 나는 공부할 때 책을 갈아 마시는 열혈 학생/선생이었는데, 이젠 그렇게 살 순 없다.
육아에 동참하면서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지만, 나는 무엇보다 공부하고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공부/강의도 잘 하고 싶은데, 둘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힘들다. 특별히, 나는 성격상 일정하게 혼자만의 시간도 보내야 하는데,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다 보면 이런 시간을 가지기가 어려워서 많이 힘들다. 잠을 줄여서 시간을 만들곤 하는데, 영원히 잠을 덜 잘 순 없다.
나도 가끔씩 환장하겠는데, 나보다 더 노력하는 아내는 어떤 마음일까?
최근에 개봉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제 5화를 보니, 내 아내 뿐만 아니라 이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워킹맘/워킹대디 마음을 딱 알겠다. 김여진 배우가 열혈 워킹맘으로서 직장 일과 딸 육아를 동시에 잘 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지만, 딸이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엄마를 연기했다. 그런데 그런 엄마는 병원에도 있었다: 박수연 간호사(실제로 간호사였던 배우가 연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제 5화 명장면을 대사와 함께 톺아보자.
권주영(환자): 아이 있으시다 그랬죠?
박수연(간호사): 아~ 예예.
권주영(환자): 애 키우면서 일하는 거 힘드시죠?
박수연(간호사): 어~ (웃음) 그렇죠 뭐. 권주영님 따님은 몇 살이에요?
권주영(환자): 중2요.박수연(간호사): 한창 공부 많이 할 때네요. 혹시 뭐 뭐 시키는지 여쭤봐도 돼요?
권주영(환자): 남들이랑 비슷해요.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시키고.
박수연(간호사): 그... 과외 코디네이터 선생님이요, 저도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권주영(환자): 아, 네. 이따 제가 연락처 드릴게요.박수연(간호사): (기뻐하며) 아~ 감사합니다.
권주영(환자): 나도 예전에 단톡방 엄마들한테 있는 아양 없는 아양 다 떨어가며 초대받은 적 있어요. 그때 꼭 면죄부 받은 느낌이더라. 엄마 노릇 안 한 것도 아닌데. 그때만큼 내가 엄마 노릇 하는구나 생각했던 적도 없네요. 아직도 그러고 있고.
박수연(간호사): 제가 지금 딱 그래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권주영(환자): 아이, 몇 살이에요?
박수연(간호사): 어, 하나는 초3이고, 둘째는 유치원 다녀요.
권주영(환자):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초등학교 때부터 무슨 유난 떤다 그럴 거예요.박수연(간호사): 워킹맘 때문이란 소리 듣기 싫어서, 더 잘하고 싶은데, 이게 힘드네요. 무엇보다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고요. 그렇다고 일 그만두기도 그래요. 내가 벌면...
<해설> 이 장면에서 감독은 환자-간호사 관계를 떠나서 두 워킹맘 속마음을 시각적으로 기가 막히게 제대로 보여준다. (아래 gif 애니메이션 파일을 대사 없이 들여다 보시라.)
권주영(환자): 내가 벌면 지금 선생님보다 한 단계 더 좋은 선생님 구할 수도 있고, 정작 제대로 뒷바라지 필요한 상황에서 돈이 없으면 안 될 거 같거든요. 요즘은 엄마들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데, 워킹맘은 정보 얻을 데도 없고 소외되잖아요. 애들은 엄마가 커뮤니티에 묶이면 친구도 못 만들고. 내 새끼가 나 때문에 친구들 못 사귀면 어떡해요? 내가 고생해서 우리 애가 조금만 더 잘 될 수 있으면 그것만 보고 사는 거죠.
권주영(환자):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 모든 걸 다 해 주고도 못해 준 것만 생각나서 미안해질 거고. 다 네 탓 할 거고. 죄책감 들 거야. 네가 다시 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 인생이 전부 노란색일 거야. 노란 불이 그렇게 깜빡이는데도, 너 모를 거야. 아이 행복 때문에, 네 행복에는 눈 감고 살 거야. 근데,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권주영(환자): 죄송해요 간호사님. 어...
박수연(간호사): 아니예요. 괜찮아요. (잠시 침묵) 애 많이 쓰셨다. 그죠?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觀察(관찰)보다는 愛精(애정)이, 애정보다는 實踐(실천)이, 실천보다는 立場(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同一(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신영복)"
곰곰 생각해 보면, 그래도 우리 부부는 많이 유리한 편이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다. 아내는 사회복지 기관에서 센터장으로 일하기 때문에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다. 연세가 높으시지만 아직도 건강하시고, 무엇보다도 손녀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부모님께서 언제든 도와 주신다. 이런 저런 도움 하나도 없이 아이 하나도 아닌 여럿을 키우는 부모가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안 힘들지는 않다. 내가 안 힘들지는 않다. 우리도 충분히 힘들고, 피곤하고, 어렵다. 특별히, 늙은 부모라서(40대 후반에 아이를 얻었다) 체력 면에서 아주 많이 부담이 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 허리는 굽을 테고, 어깨는 빠지듯 아프리라. 그 모든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회가 날 때마다 의도적으로 쉬면서 너무 지나치게 애쓰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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