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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기다리는 사람이니까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7. 06:58728x90반응형
부모는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글쓴이: 송주연 (인천중구가족센터 사회복지사)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아기를 계획하면 당연히 생기리라 예상했다. 호기롭게 언제쯤 갖자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계획한다고 아기가 생기진 않았다. 다 생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월경 주기가 불규칙했고, 결국 난임센터를 찾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물로 배란일을 맞추었다. 배란일이 지난 후에는 혹시라도 임신했을까봐, 감기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임테기에 한 줄만 뜨면 눈물을 삼켰다.
몇 달 동안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일이 반복됐다. 남편은 내가 실망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하며, 조급해하지 말자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친구 부부가 엄마와 아빠를 똑 닮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도 그런 미래를 꿈꾸게 된다. 우리 부부를 똑 닮은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데 한 달, 한 달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다. 배란일을 기다리고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날만 기다리는데, 야속하게도 시간은 더디 흐른다.
가끔씩, 결혼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전해 오면 마음껏 기뻐해 주지 못헀다. 이런 내 모습이 많이 미워질 무렵, 처음으로 임테기에 선명하게 뜬 두 줄을 마주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흐르는 눈물을 닦고, 남편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서로 부둥켜 안은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인물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아이 태명을 '바다'라고 지었다.
"바다야, 안녕!"
임신을 하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막연하게 불안했다. 바다를 눈으로 본 적이 없어 내 뱃속에 정말로 존재하는지 있는 게 맞는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며칠 기다렸다가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임신호르몬 수치가 잘 나왔단다. 다음 주에 아기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다시,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역시 부모가 되려면 잘 기다려야 하나보다. 기다리는 게 부모 역할인가보다.
그런데, 아기집을 확인하는 날, 의사 선생님이 몸 속에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자궁 외 임신일 수도 있으니 피검사가 다시 필요하단다. 채혈하고 또 다시 결과를 기다린다. 나는 너무 놀라서 급하게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아침에 출근도 못하고 병원으로 곧장 달려왔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떨면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임신 호르몬) 수치가 얼마 오르지 않아, 정상적인 임신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화학적 유산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멀뚱멀뚱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만 있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진료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리 부부는 병원 로비에 선 채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눈에 담아보지도 못한 아기와 작별 인사를 나눠야 했다.
"바다야, 안녕! 우리에게 찾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2주 동안 설레고 행복했어. 다음엔 엄마로서 좀 더 잘 준비할게. 우리, 다시 만나자.”
언젠가, 다시 바다를 만날거라 믿으며 우리는 또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은 엄마 마음을 배운걸까? 이제는 아무리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남은 평생 내내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부모는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송주연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송주연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습니다. 이 글은 솔직하고, 쉽고, 깊습니다. 제가 가르친 '좋은 글 3요소'를 제대로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글이고, 무척 아름답습니다.
2. 두 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기약없이 기다리다가' 예쁜 봄이를 만났답니다.)
3. 어법과 관련해서는 딱 한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송주연 선생님께서는 '게'를 무척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게'는 되도록 쓰지 않으셔야 글이 좋아집니다. '게'는 어디서 왔을까요? '것이'를 줄여서 생겼지요. 그런데 '것'은 우리가 쓰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영어식 말투입니다. '것'은 '이것', '저것', '그것' 형태로 쓰지 않으면 거의 항상 없애야 합니다. 제가 고친 부분을 열거할 테니, 주의깊게 보시면서 감을 익히세요.
_ 아기가 생기진 않았다. 다 생기는 게 아니었다.
_ 기약 없이 기다리는데 한 달, 한 달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다.
_ 내 뱃속에 정말로 존재하는지 있는 게 맞는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_ 역시 부모가 되려면 잘 기다려야 하나보다. 기다리는 게 부모 역할인가보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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