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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깎듯 글을 쓰자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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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힌트 #003 (이재원 해설)

    나는 '힌트'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힌트는 종결점(요령)이 아니라 시작점(태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작은 힌트를 잡고 문을 나서면, 걸어가야 할 먼 길이 보인다. 문밖으로 나갔다고 주저 앉으면 '요령'에 그친다.

    글쓰기는 '요령'으로 배울 수 없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에 가깝기 때문이다. 긴 거리를 뛰다 보면, 기본 체력과 폐활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본 체력이 탄탄하지 않고 폐활량이 적으면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배우기는 좀 부담스럽다? 사실이다. 이해한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우리에겐 힌트가 필요하다. 흥미롭게 시작하려면 훌륭한 페이스 메이커가 필요하다.

    그래서 '글쓰기 힌트'를 생각해 보았다.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글을 쓸 때 도움도 되지만, 단순한 '요령'에 그치지 않는 지식. 좀 더 먼 길을 힘 내서 걸어 갈 수 있도록 호기심이라는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음료.


    나의 감옥생활은 특별히 가혹했습니다. 청주에서의 나의 감방은 세 칸이었는데, 나는 한가운데 칸에 수용되었고, 한쪽 옆칸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배정된 간수들이 머물렀고, 반대 편 옆칸에는 목욕할 때 사용하는 작은 양동이만 놓아두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의 방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복도도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 버렸고, 감당 둘레에는 새로운 벽돌 담장을 쌓았습니다. 

     

    나에게 배치된 간수들은 모두 다서 명이었는데, 항상 두 명씩 조를 짜서 교대로 내 감방을 감시했습니다. 보통은 열 개의 감방으로 구성딘 각 동마다 간수가 한 명씩만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한 감방에는 각기 10명 정도의 죄수들이 수용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간수와 죄수의 비율이 대개 100대 1인데, 내 경우에는 2대 1의 비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와 접촉할 수가 없었고, 어떠한 정보도 새어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내 감방 앞쪽에는 두꺼운 문이 있었고 뒤쪽에는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나는 이 창문을 통하여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작은 창문이 외부와 나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창문 위에는 또 굵은 철망이 씌워져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하늘이나 달의 모습을 시원스럽게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한눈에 달을 바라보지 못하는 대신, 나는 철망의 수많은 구멍을 통하여 수많은 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달을 가진 부자라고 스스로 자위하곤 했습니다.

     

    _ 김대중. (2018).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개정판). 김영사. 


    독자는 좋은 글을 단박에 알아낸다. 좋은 글을 읽으면 이렇게 말한다: "술술술 잘 넘어가네요." 이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바로 위에 든 글을 사례 삼아 생각해 보자. 이 글은 김대중 선생께서 1993년 12월에 내신 책에 나온다. 수감 생활을 설명하는 대목. 김대중 선생은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다. 거물급 정치범이니 수감 생활도 보통 죄수보다 훨씬 더 가혹했으리라. 

     

    첫 단락 첫 문장을 보라: '나의 감옥 생활은 특별히 가혹했습니다.' 굉장히 뚜렷하고 선명하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적당히 구체적이고 적당히 추상적이라는 뜻이다. 좋은 소주제문은 이렇게 쓴다. 단락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하면서도, 세부 내용을 충분히 담을 수 있을 만큼 은근히 암시한다. 실제로 이 문장은 첫 번째 단락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락도 지배한다. 

     

    <단락 구조 요약> 

    A. 강력한 소주제문: '나의 감옥 생활을 특별히 가혹했습니다.'

        (a) 첫 번째 단락: 여러 겹으로 감시하는 감방 구조였다. 

        (b) 두 번째 단락: 항상 간수 두 명이 죄수 한 명(나)을 감시했다.  

        (c) 세 번째 단락: 달이 보이는 작은 창문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이 구조를 사과 깎는 행동에 비유해 보자(위 사진을 보라). 잘 익은 사과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쥔다. 꼭지 부분에 칼날을 톡톡, 두드려 칼집을 낸다. 그 중 알맞는 틈으로 칼날을 슬쩍 집어 넣고, 손에 쥔 사과를 천천히 돌리며 껍질을 벗겨낸다. 손놀림이 섬세하다면 일정한 너비와(약 1.5cm) 깊이로(약 2mm) 동심원을 그리며 일정하게 사과를 깎아낼 수 있다. 핵심은?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잘 쓴 글은 전체적으로 매끈해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생각 조각을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이음새 없이 붙여 놓은 집합에 가깝다. 이음새가 없어 보이려면? 우선, 잘 선택해야 한다. 어지럽게 뒤엉켜 쌓인 조각 더미 중에서, 내가 재구성하려는 매끈한 그림에 맞는 생각 조각만 신중하게 골라낸다. 그리고 모든 생각 조각을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조립한다. 제대로 조립한다면, 애초부터 매끈한 사과처럼 보인다. 

     

    어떻게? 의뢰로 쉽다. 어지럽게 뒤엉킨 생각 조각 더미를 같은 색깔 조각끼리 분류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색깔(주제)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 후에는, 같은 색깔 생각 조각 중에서도 비슷한 모양끼리 분류한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모양끼리 모은 생각 조각을 일정한 순서대로 줄 세운다(단락 나누기).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 그대 두뇌가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생각 조각을 분류하고 줄 세울 테니.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성숙을 담는 글쓰기(PDF 버전)

    '자기-돌봄(self-care)'를 주제 삼아 인천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하고, 지난 수 년간 사회복지사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온 강점관점실천연구소에서 진행했습니다. 인천시 각 지역에서 성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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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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