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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번째 생일 파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14. 06:38728x90반응형
아흔 번째 생일 파티
글쓴이: 이근자 (베스트지역아동센터 센터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캠핑 가는 양 물건을 챙긴다. 그릇, 수저와 물통 그리고 국까지 빠뜨린 것이 없나 또 손가락을 접어 본다.
작년에 이어 엄마의 생일 즈음 캠핑장에서 바비큐 파티로 모이기로 했다. 점심에 맞춰 만나기로 했다. 리어커에 물건을 옮겨 싣고, 조카 둘이 끌어서 예약한 장소로 이동한다. 텐트 안에 전기장판을 켜 자리를 잡고, 엄마에게 무릎 담요를 덮어 드렸다. 남편과 큰 딸은 화로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굽고, 나는 분주히 움직이며 식탁에 준비 한 음식을 놓는 찰나, 식구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한다. 동생네 식구, 오빠네 식구, 그리고 결혼한 조카들이 아이와 함께 도착하여 텐트 안은 금세 시끌벅적해 진다.
준비해 간 와인을 종이컵에 채우고 건강을 기원하는 건배로 식사를 시작했다. 잘 익은 삽겹살과 탱글탱글한 굴이 들어간 겉절이는 완벽한 궁합을 자랑하며 리필을 계속해야 만 했다. 미역국은 간이 잘 맞았는지 여기저기서 “누가 끓였냐?”며 칭찬했고, 심지어 누군가는 “고모가 이렇게 요리를 잘했나?”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조금 민망했지만, 기분 좋았다.) 역시 밥은 여럿이 모여 먹어야 맛있나 보다. 주인공인 엄마도 영양찰밥을 잘 드셨다.
밥을 다 먹은 후 식탁을 정리하고, 엄마가 키워 준 큰 손주가 준비해 온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생일 초 9개와 하트 초에 불을 붙이고, 손뼉을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문득,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손뼉을 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찡하다. 엊그제 생일이 지난 나연이(4살)를 위해, 한 번 더 초에 불을 붙이고 호~ 불게 해 준다. 아기가 있는 집안에선 이런 풍경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아주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 가족도 이렇게 아이 재롱을 보며 흐믓해 한다. 나연이는 큰조카의 딸내미인데, 장성한 조카들이 죄다 결혼을 안 해서 아이가 없어, 어른들 사랑을 독차지한다. (하는 손주다.) 예쁘게 키우는 큰조카와 조카 사위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나연이 재롱을 보며 (에) 눈에 (가득) 사랑을 가득 담는다.
집에서 가져온 대봉을, 식구 수 두 배로 각각 담아 보내며 우리는 내년을 기약한다. 이렇게 나의 엄마며 나연이 외증조모의 90번째 생일 파티를 마친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이근자 센터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이근자 센터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습니다. 이 글은 두 가지 면에서 대단히 훌륭합니다. 첫째, 대단히 '이근자스럽습니다'. 늘 말씀 드렸지만, 결국 글은 개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유려하고 세련된 글이라도, 글쓴이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좋은 글이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는 딱 이근자 선생님이 있습니다: 여유롭고, 부드러우며,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 둘째, 이근자 선생님께서 그동안 제가 지적한 사항을 아주 많이 보완하셨습니다. 특히, 이근자 선생님께서는 글을 다소 간략하게 쓰셔서 (본의 아니게) 글이 부분적으로 뻑뻑했는데요, 이 글에서는 곳곳에 난 구멍을 잘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이근자 선생님 글 스타일이 더 잘 살아납니다.
2. 사진도 참 좋습니다. 처음에 사진을 볼 때는, 이근자 선생님의 어머님(생일 주인공)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약간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고 다시 들여다 보니, 어머님 얼굴이 이미 보인다고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아마도 증조할머니와 많이 닮았을, 나연이 얼굴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두 분이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느껴졌달까요. 게다가, 배경에 앉은 분(조카 사위) 얼굴이 신기하게도(피가 섞이지 않았는데도) 나연이 얼굴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나연이는 정말로 가족들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라고 느껴집니다. 나연이 표정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잖아요? 이 아이가 온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3. 형식적인 면에서도 논평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서사(이야기)+설명' 틀을 쓰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먼저 쓰고, 뒷부분에 그 이야기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적으시라고 가르쳤지요. 그런데 이번 글은 형식 면에서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는 글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뒤에 몰아서 쓸 감상을 곳곳에 뿌려 놓은 글이랄까요. 아무튼, 이야기를 풀어 내시면서, 이근자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셨는지를 자연스럽게 녹여 내셔서, 무척 좋았습니다. (이근자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글 구조에 대해서 이해합니다.)
4. 어법에 관해서 네 가지 사항을 지적하겠습니다.
(a1) 아기가 있는 집안에 아주 흔한 풍경이지만,
(a2) 아기가 있는 집안에선 이런 풍경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원문을 보시면, 주어가 생략되었습니다. 주어는 '이런 풍경은'입니다. 제가 수정한 문장을 보시면, 역시 주어가 생략되었는요, 주어는 '우리는'입니다. 두 문장이 겉으로는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원문은 'A는 B이다' 구조를 취하고, 수정문은 '우리는 C할 수 있다' 구조를 취합니다. 그래서 구조 면에서는 상당히 다르고요, 늘 말씀 드리지만, 한국어는 동사와 형용사를 강조해야 자연스럽습니다. '풍경이다'로 끝나는 구조보다는 '흔하게 본다'로 끝나야 좀 더 한국어스럽습니다.
(b1) 나연이는 큰조카의 딸내미인데, .... 어른들 사랑을 독차지하는 손주다.
(b2) 나연이는 큰조카의 딸내미인데, .... 어른들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 사례는, 위 사례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문장 끝을 보세요. 원문은 '손주이다'로 끝났지요? 수정문은 '독차지한다'로 끝났습니다. 둘 문장 중에서 어떤 문장이 좀 더 자연스럽습니까? 동사로 끝난 수정문이 좀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이다'로 끝나는 문장은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있는지 늘 고민해 보셔야 합니다.)
(c1) 우리는 나연이 재롱에
(c2) 우리는 나연이 재롱을 보며
이 문장에서 '나연이 재롱'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게 만드는 원인/이유입니다. 이렇게 원인/이유를 표현할 때, 원문처럼 '명사+에'로 쓸 수도 있지만, 수정문처럼 '동사'로 쓸 수도 있겠습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한국어는 동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자연스럽습니다.
(d1) 눈에 가득 사랑을 담는다.
(d2) 눈에 사랑을 가득 담는다.
'가득'은 어떤 말을 수식할까요? '담는다'를 수식합니다. 한국어에서는 단어 위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교착어라서 단어 뒤에 붙는 조사나 어미 때문에 위치가 바뀌어도 의미가 보존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있습니다. 즉, 수식하는 단어는 수식을 받는 단어와 거리가 가까워야 합니다. 거리가 멀수록 덜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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