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돌봄을 위한 글쓰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9. 07:19728x90반응형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나는 그냥 작문 기술을 가르쳤는데, 그냥 내가 내 이야기를 쓰던 방법을 평이하게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한 두명씩, 마음에 치유가 일어난다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출해서 혼자 힘으로 살았던 15년전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학생은 젊은 며느리로서 명절에 시댁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미묘하게 느꼈던 부담감과 소외감에 대해서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외적으로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심리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외톨이였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드러냈다.
'힘든 기억을 고백하면 치유가 일어나나?'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일리가 있지. 억압했던 부정적 감정을 외적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면 '배설'하는 쾌감을 느낄 테니까. 그리고 마음 속에 있어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막상 꺼내 놓고 보면 그렇게 끔찍하거나 기괴하지 않다고 확실히 느낄 테니까. 그동안 남몰래 끙끙 앓아 온 증상이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판타지였다고 깨달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설명은 왠지 불충분했다. '억압-배설' 가설도 강력했지만, 이 기제로만 해석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스스로 질문했다.
'내 방식으로 글을 쓰면 왜 치유가 일어날까?'
내 방식? 내 방식이 어떤 방식이지? 나는 글쓰기 기본기를, 대학교 1학년 시절 너무 순진해서 들어간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배웠다. 그 선교단체에선 구성원 마음에 심고 싶은 설교 내용을 주제로 글을 엄청나게 많이 쓰게 했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마음을 고쳐 먹도록 묘하게 강요했다. 나는 이 선교단체에서 4년 동안 빡세게 글쓰기 훈련을 받으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약점을 고백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 둘째, 남을 설득하기 이전에 나 스스로 고통과 번민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절, 주구장창 고백적인 글을 쓰면서 얻은 강렬한 종교적 체험과 이후 20년 이상 글쓰기 일반에 관심을 두면서 읽은 책 내용을 종합해서, 나만의 '좋은 글' 기준을 정리했다. '좋은 글'이란? 첫째, 솔직한 글이다. 둘째, 쉬운 글이다. 셋째, 깊은 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기준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좋은 글'이란 '선명한 글'이다. 어떤 대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때 마음에 품은 감정과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게 기록하면 '선명한 글'이 되고, 바로 이 '선명한 글'이 '좋은 글'이다. 그리고 선명하게 표현하려면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특히, '자기-돌봄'과 관련해서 무슨 뜻일까?
저명한 언론인으로서 퓰리처 상 심사위원을 역임한 Jack Hart가 쓴 'STORYCRAFT! The Complete Guide to Writing Narrative Nonfiction'을 읽어 보면, 훌륭한 논픽션 글(실용적인 글)에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 공식이 나온다. 바로, '인물-시련-해결' 3단계 구조(과정)이다. Jack Hart는 소설에 적용하는 플롯 구성 방법(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변형해서 이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구조에, 그동안 내가 꾸준히 공부해 온 '자기-돌봄' 개념을 겹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릿 속에서 둥둥 떠 다니던 생각이 바닥에 안착했다.
우선, '자기-돌봄(self-care)' 개념은 필연적으로 '어려움(stress)'를 전제한다. 삶이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자기(self)를 돌볼(care) 필요가 없다. 그냥 어렵지 않은 삶을 즐기면 된다. 다시 말해서, 삶이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고 어려워진 사람(만)이 '자기-돌봄(self-care)'에 관심을 쏟게 된다. 그런데 Jack Hart가 제시한 '인물-시련-해결' 글 구조에서도 핵심은 '시련'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요 '인물(배경)'을 먼저 소개하고, 이 인물이 어떤 '시련'을 만나고, 이 시련을 일정하게 '해결'하는 과정 중에서 '시련'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어려움(stress)+자기-돌봄(self-care)'은 2단 구조이고, '인물-시련-해결'은 3단 구조다. 여기에서 '어려움(stress)'은 사람이 겪으므로, '어려움(stress)'는 '인물-시련'과 정확하게 겹쳐진다. 아울러, 이렇게 이해한다면, '자기-돌봄(self-care)'는 '해결' 단계와 겹쳐지므로, '자기-돌봄(self-care)'와 '해결'이 위에서 언급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다'는 말과 어떤 관계인지를 뚜렷하게 규정하면, 내 방식으로 글을 쓸 때 어째서 치유가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내가 글쓰기를 가르친 학생들에게 일어난 '마법'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는 경우를 자주 못 본다. 인간은 욕망이 무한하고, 이 욕망을 완벽하게 채워 줄 능력, 자원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애초부터 '문제' 혹은 '어려움(stress)' 혹은 '시련'이라는 단어도 생기지 않았을 터. 그래서 인간지사 많은 문제는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만큼 해결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생은 해결보다는 이미 벌어진 처참한 상황을 뒤늦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어쩌면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미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꺼내 놓은 많은 '문제(problems)' 혹은 '어려움(stress)'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며느리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시고 깊이 사랑해 주신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가정하자. 당연히, 이 상황은 절대로 말끔히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문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었다'라면, 이 문제는 누구나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한다면 아주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말끔하게' 해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는 대부분 그 정도까지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한다'는 말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나에게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현재/과거/미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뜻이 된다. 대단히 예외적으로 '말끔하게'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이제 알겠다. 어째서 내가 글쓰기를 가르친 많은 학생들이 '말끔하게' 해결되지는 않은 문제를 글로 쓰면서 '말끔하게' 해결된 느낌을 받았는지. 학생들은 불안과 고독을 느끼면서도, 용기를 내어서 '불확실한 대상'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했다.
그렇게 솔직하게 글을 썼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합니다 (0) 2023.11.15 아흔 번째 생일 파티 (0) 2023.11.14 쓰러진 유모차 (0) 2023.11.09 사과 깎듯 글을 쓰자 (0) 2023.11.07 부모는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0) 2023.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