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못 다한 말이 있어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1. 28. 06:35
    728x90
    반응형

    못 다한 말이 있어

     

    글쓴이: 강진구 (인천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일어나... 일어나...."

     

    무슨 소리지? 확실히 들리지는 않지만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 나랑 같이 놀자..."

     

    문득 눈을 뜨니 어떤 아이가 나를 내려다 본다. 쌍꺼풀 짙은 큼지막한 눈, 호랑이 눈썹 위로, 조용필 머리를 얹은 아이. 누구지? 이 아이는?

     

    녀석이 어리둥절 두리번대는 내 팔을 잡아 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한다.

     

    "나랑 나가서 놀자, 응?"

    "야, 잠깐만 잠깐만!"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어느새 동네 골목길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아이는 어디선가 축구공을 들고 와서는, 돌멩이로 골대를 만들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공을 힘껏 찼다. 나는 반사적으로 공을 찼는데, 아이 머리 위로 넘어가 버렸다.

     

    "에이 참~ 그렇게 힘을 듬뿍 줘서 차면 어떻게 해?“

     

    공을 찾아온 아이는 공을 내 쪽으로 다시 찼다. 아이 머리 위로 넘어갈까봐 조금 살짝 찼더니 이번에는 공이 아이 앞으로 가다가 섰다.

     

    "아이 참. 힘을 듬뿍 줘서 차야지, 이게 뭐야?"

    "아니, 듬뿍 힘주지 말라며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렇게 한참 노는데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나타났고, 우리는 모두 함께 어울려 신나게 놀았다. 축구, 야구, 말빵까기, 술래잡기, 그리고 오징어 게임까지. 두 아들이 어느 정도 큰 후로는 이렇게 신나게 놀지 못했는데... 헌데, 저녁이 되자 아이들이 나를 깨운 그 녀석에게 말한다.

     

    "진구야, 엄마가 불러서 이제 간다"

    "진구야, 나도 엄마가 저녁밥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갈게."

     

    '잉? 이 녀석이 이름이 진구야? 진구? 아니, 나라고? 나 어렸을 때는 더 이뻤는데 비듬 가득한 머리에 꼬질꼬질 더러운 옷을 입은 이 녀석이 나라고?'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어린 시절 내가 자랐던 (인천) 학익동 동네 골목길이다. 아까 일어났던 집도 학익동 살 때 엄마와 단 둘이 살았던 단칸방이었다.

     

    '무슨 일이지? 꿈을 꾸고 있는건가?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시간 여행이라도 했나?'

     

    내가 황망해하는 사이,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어린 진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말 없이 친구들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너도 이제 가야 해?"

    "너는 집에 안 가니?"

    "집에 가도 아무도 없어. 티비에 개그맨들이 웃겨도 함께 웃어줄 사람이 없어."

    "엄마는 집에 없니?"

    "엄마는 집에 없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바뻐. 얼마 전 태권도장에서 나만 산타할어버지가 선물을 안 주길래 물어봤더니, 죄다 부모님들이 사다준 선물이라더라. 너무 창피해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 화내고 소리 질렀어."

    "음...그랬구나... 그래도 저녁인데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혼자 먹기 싫어! 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먹고 안 치우면 엄마가 집에 와서 혼내. 그냥 안 먹고 안 혼날래."

     

    갑자기 어린 진구가 안쓰러웠다.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학익동 살 때 내가 느낀 감정을 나에게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아득해졌다.

     

    "나랑 같이 밥 먹을까?

     

    집으로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 밥상에 놓고, 서로 마주 보며 함께 밥을 먹었다. 파래무침, 볶음김치, 멸치볶음.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그렇게 말 없이 밥을 먹고 나니 어린 진구가 나에게 말한다.

     

    "나, 사실 알았어."

    "뭘?"

    "너, 나잖아. 저녁이면 혼자 밥 먹기 싫고 너무 심심해서, 미래에 사는 나라도 와서 함께 놀면 좋겠다고 매일밤 기도 했거든. 역시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이루어 지나 봐, 아까 학교 갔다 집에 왔는데 나랑 비슷한 사람이 방에 누워 있길래 내 기도가 이루어졌구나 싶었어."

    "아... 그랬구나..."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총총한 눈빛에서 당돌함까지 느껴졌다.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희망이 가득한 사람이었나?

     

    "내가 그렇게 기도한 다른 이유도 있어"

    "뭔데? 말해 봐."

    "나, 엄마한테 못 다한 말이 있어. 나는 지금 엄마한테 말 못하니까, 네가 돌아가게 되면, 나 대신 엄마한테 말해 줘."

    "무슨 말인데?"

    "엄마한테 선물 못 받았다고 화냈던 밤에,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엄마가 골목길에서 소리도 못 내고 우는 모습을 봤어. 너무 놀라서 다시 방에 들어왔는데, 나 때문에 울었나봐.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네가 돌아가면 엄마한테 소리질러서 미안했다고, 선물 안 받아도 된다고 말해줘. 꼭 말해줘. 엄마 울면 싫다고."

    "그래 기특하구나. 내가 꼭 말해 줄게. 그리고...  이렇게 돌아가 버리면 나도 너에게 못 다한 말이 생길까봐, 몇 가지만 말해 줄게."

     

    "앞으로 네가 살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아. 집안 사정도 생각 못하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과외를 하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떼를 부릴 수도 있고, 수능을 망쳐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갈 수도 있어. 20살부터 27살 취직 할 때까지 주말에는 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하게 될 거야. 취직을 하더라도 그렇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처음 3년 동안 누군가의 빚을 갚아 줘야 할 테고, 그래서 돈도 모으지 못 해. '왜 나한테만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나는 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잠시나마 방황도 할 거야. 그리고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잘 대해줄 거라고 생각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만난 후로는 지금 우리 엄마처럼 바쁘고 일상에 지쳐서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 거야."

     

    "지금도 힘든데, 나중에도 그렇게 힘들어?"

     

    "아니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모든 사람들이 널 좋아해 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널 싫어하지도 않아. 널 좋아해 주고 믿는 사람이 생겨. 그 사람들은 너랑 있으면 재미있다고도 말해 줘. 너랑 같이 술 먹기도 하고 놀러 가기도 해. 악기를 연습해서 같이 밴드를 하기도 하지. 항상 열심히 일하는 착하고 이쁜 후배 직원과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좋은 교육도 받고 글쓰기도 배워서 또 다른 너를 알게 되어 간단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겨. 딸처럼 이쁘게 생긴 큰아들, 먹성 좋고 나랑 똑같이 생긴 둘째 아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해 준 아내도 생긴단다. 자! 어때 이 정도면 지금처럼 외롭고 심심하지는 않겠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말을 듣던 녀석은 이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응... 나...나... 빨리 그렇게 될래... 와 줘서... 와 줘서...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졌다. 누가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라고 서로 느낀다. 서로 바라보던 우리, 아니 나와 나는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큰 진구: "고맙다. 잘 자라고 견뎌줘서..."

    어린 진구: "고마워. 잘 크고 버텨줘서..."

     

    그리곤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응? 뭐지 아직 학익동인가? 작별 인사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힘겹게 눈을 떠보니 쌍꺼풀 짙은 큼지막한 눈, 호랑이 눈썹 위로 조용필 머리를 얹은 이 녀석은... 아니, 이녀석은? 아까 그... '아!... 인중이 장인어른 인중이구나!' 바로 우리 둘째 아들이다.

     

    "일어나, 아빠! 배 고파 김치찌개 해 줘. 엄마는 일어날 생각을 안 해."

    "알았어."

    "아빠!"

    "왜?"

    "돼지고기 듬뿍 넣어 줘.“

     

    난 피식 웃으며 생각한다. '그래 그 녀석이 너 일수도 있겠구나.'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강진구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강진구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성숙을 담는 글쓰기(PDF 버전)

    '자기-돌봄(self-care)'를 주제 삼아 인천광역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하고, 지난 수 년간 사회복지사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온 강점관점실천연구소에서 진행했습니다. 인천시 각 지역에서 성실하

    empowering.tistory.com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내가 가르친 뛰어난 사회사업가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 "제가 돕는 청소년이 너무 기특한 행동을 하기에, 저나 제 동료들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었어요. '우와~ 너 어떻게 이렇게 한

    empowering.tistory.com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