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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묶을 수 있는 것은?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2. 8. 07:44728x90반응형
토끼, 염소, 그리고 당근
다짜고짜 그대에게 묻겠다. 위 그림을 들여다 보라. A(당근)와 B(염소) 중에서 '토끼와 묶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에 그대가 서양인이라면 B(염소)를 골랐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하지만 만약에 그대가 동양인이라면 A(당근)를 골랐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유를 분석해 보자. 동사 '묶는다'에서부터 시작한다. '묶는다'는 말은 '분류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눈 앞에 사람이나 물건이 두 개 이상 있을 때, 서로 관련 있는 개체끼리 연결해서 상위 집단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서로 관련 있다'는 말 뜻을 서양인과 동양인은 다르게 해석한다.
서양인은 '서로 관련 있다'는 말을, '특정한 속성을 공유하는 범주'라고 이해한다. 위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서양인은 토끼와 염소를 보면서, '이 두 동물은 공통적으로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여 기르지' 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많은 범주적 속성을 공유한다고 판단해서 '포유류(哺乳類)'라는 범주로 묶는다.
반면에, 동양인은 '서로 관련 있다'는 말을, '두 개체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라고 이해한다. 위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동양인은 토끼와 당근을 보면서, '토끼는 당근을 먹지(염소를 먹지는 않지)' 라고 생각한다. 즉, 토끼는 염소와 별로 안 친하지만, 당근과는 '친하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사람이나 물건이 두 개 이상 있을 때, 서양인은 각 대상이 특정한 속성을 공유하는지 판단해서 공통 속성이 있으면 같은 '범주'로 묶는다. 반면에, 동양인은 각 대상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었으며,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판단해서, 대상을 서로 '연결'한다.
'범주(範疇)' 대 '관계(關係)'
일반적으로 우리는 범주(範疇)를 '명사'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여 기른다'는 공통 속성을 매개로 토끼와 염소를 '포유류' 라는 명사로 규정한다. 그리고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여 기른다'는 공통 속성을 가진 또 다른 개체(예컨대 인간)를 보면, '포유류'라고 이름(명사)을 붙인다.
반면에, 우리는 관계(關係)를 '(타)동사'로 표현한다. (타)동사는 '두 개체가 서로 관계 맺으면서 일어나는 행위'를 포착해서 표현하는 언어 단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렇게 (타)동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지칭한다.
명사는 대상을 언어(범주)로 붙잡아 고정한다. 그래서 명사는 구체적이고 의미가 딱 떨어진다. 반면에 (타)동사는 관계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가 명사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예컨대, '던지다'는 뜻을 명사로 표현하면 '던지기'처럼 형태가 고정된다. 하지만 동사로 표현하면 언어 맥락에 따라서 '달리고', '달려서', '달리니', '달렸고' 등 형태가 무수히 다양해진다.
생략할 수 없는 말, 생략할 수 있는 말
서양어인 영어에서 절대로 생략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말은 무엇인가? 주어다. 예컨대, 영어에서는 주어가 너무 중요해서 '가주어 it' 용법까지 등장한다. 문장 앞에 나오는 주어를 생략하면 문장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에, 아무런 실질적 뜻이 없는 it를 대신 세워 놓을 정도다. 주어는 품사가 무엇인가? 명사다. 어를 생략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만큼 명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영어에서는 명사가 중요하다.
반면에, 한국어에서 주어는 어떠한가? 영어와 정반대로,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가장 많이 생략한다. 평상시 대화 상황에서는 주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어색하게 들릴 정도다. ("밥 먹었니?" vs "너는 밥을 먹었니?") 주어도 생략하지만 (대화 상황이 명확하면) 목적어도 자주 생략한다. ("밥 먹었니?" vs "먹었니?") 주어나 목적어 모두 품사는 명사다. 생략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명사가 덜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어에서는 명사가 덜 중요하다.
한국어는 동사가 중심이다 (세 가지 증거)
1. 한국어에서는 대체로 문장이 동사로 끝난다
어떤 언어에서든 문장을 끝내는 단어가 중요하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말이 뒤에 나온다는 뜻. 한국어에서 끝에 나오는 단어는? 동사다. 그러니 한국어에서는 동사가 중요하다. (비교: 영어에서는 문장이 목적어[명사]로 끝난다.)
2. 한국어에서는 기본적인 명사가 대체로 동사에서 왔다
명사 '그림'은 어디에서 왔을까? 동사 '그리다'에서 왔다. 명사 '웃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동사 '웃다'에서 왔다. 명사 '삶'은 어디에서 왔을까? 동사 '살다'에서 왔다. 이처럼 한국어에서는 기본적인 명사에 속하는 많은 말이 동사에서 파생되어 생겨났다. 한국어는 동사가 중심이라는 증거다.
3.
한국어에서는 동사끼리 쉽게 붙여서 복잡한 뜻을 나타낸다.
복합동사 '들어 간다'는 동사 '들다'와 동사 '간다'를 합쳐서 만들었다. 여기에 보조동사 '보다'를 붙이면, 미묘한 뜻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들어가 보다'가 된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동사 하나에 부사나 전치사를 붙여서 복합동사를 만든다. 한국어는 동사가 중심이라는 증거다.
이상에서 정리한 내용을, 글쓰기에 적용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사용하려면, 명사보다는 동사를 적극적으로 살려써야 한다. 간단하게 예를 들겠다. 이 문장, 어떻게 느껴지는가?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느낀다면, 그대는 문장을 쓸 때 동사보다는 명사를 살려 쓴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동사를 살려서 문장을 다시 써 보면 어떨까? '혼자서 살면, 힘들다.' 어떤가? 문장 구조도 좀 더 간결해지고, 뜻도 좀 더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나?
우리가 동사를 살려 쓰는 다양한 방법을 깊이 이해하면, 한국어를 훨씬 더 생생하고,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다. 나는 2024년 한 해 동안, 꾸준하게 한국어를 좀 더 한국어답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좋은 한국어 문장을 쓰는 방법을 한국어 문법에 기초해서 근본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수년 동안 학생들에게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면서 축적한 생생한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좀 더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독자 제위께서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길 기대한다.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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