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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도 설계도가 중요하답니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2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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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휘를 정확하게 구사하면 될까. 문장을 무조건 간결하게 쓰면 될까. 멋진 문학적 비유를 동원하면 될까.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자를 인용하면 될까. 모두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정확한 어휘도, 간결한 문장도, 비유적 표현도, 있어 보이는 인용구도 부차적이다. 본질도 아니고, 기본도 아니라는 뜻이다.  

     

    글쓰기에서 본질은 주제고, 기본은 구조다.

     

    주제는 무엇인가. 내가 선택한 글감(소재)에 대해서 진짜로 표현하고 싶은 핵심 생각이다. 예컨대, 어떤 워킹맘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이한 아들을 지켜보면서 글을 쓴다면, 충분히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그런데도 잘 자라 줘서 고맙고 듬직한 마음을 주제로 삼을 수 있겠다. 

     

    구조는 무엇인가. 주제를 드러내는 구체적인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배치할지 계획하는 설계도이자 결과물이다. 조금 전에 소개한 워킹맘 글에는 어떤 구조를 적용할 수 있을까. 의미있는 에피소드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되(전개방식 = 서사), (a) 주인공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b) 주인공(워킹맘과 아들)이 전쟁처럼 일상을 소화하면서 겪은 시련을 구체적으로 적은 후에, (c) 온갖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버티면서 끝내 성장한 내면 풍경을 담담하게 기록할 수 있겠다. ('인물-시련-성장' 구조)

     

    주제니, 본질이니 어려운 말을 쓰니 골치만 아프고 감이 잘 안 오는가?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워킹맘 글을 직접 보여 드리겠다. 아래 글을 읽으시라.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글쓴이: 민경재 (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4)

    첨삭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아들 졸업식에 간다.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A초등학교 교문을 지나 오른쪽에 있는 체육관 2층으로 향한다. U자형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서니 학생들이 열과 줄을 맞춰 앉아 있고 그 뒤로 학부모석이 마련돼 있었다. 나는 아들을 보고 싶어서 학생석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수막이 무대 위로 높이 걸렸다. 졸업식 시작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다 무대에 시선이 멈춘다.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입학했던 날이 엊그제인데...”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인데, 왠지 마음이 짠해져서 졸업식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왈칵 터졌다.

     

    나는 서른 넷에 결혼해서 서른 여섯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나이만 들었지, 실수투성이 초보 엄마여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기도 전에 복직해서 출근해야 했다. 아침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나는 육 개월 된 아들을 포대기에 둘러 업고 8시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죽어라 뛰었다. 그리고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해 또 죽어라 뛰었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뛰듯이 정신없이 지내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어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는 하교한 이후 돌봄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근로자복지관 방과후교실에 보내고 싶은데, 아이가 복지관까지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여러 모로 고민하다가 태권도학원에 어렵게 부탁해서 방과후교실 등·하원 문제를 간신히 풀었다. 스케줄을 정하고 나니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지 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입학일에 맞추어 며칠 동안 휴가를 냈다. 입학식에 가서 학교도 둘러보고 준비물도 챙기고 하교 후 잘 이동하는지 확인했다. 아들은 입학 다음 날 아침에 내게 말했다.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듬직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오늘은 준비물도 많으니, 엄마가 같이 갈게.” 아들은 그날 이후 혼자서 학교에 갔다.

     

    아들이 2학년이 되었을 때, 태권도 관장이 바뀌고 복지관 방과후교실까지 태워줄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고민스러웠지만 2학년 때까지는 복지관에 다녀보기로 했다. 복지관 셔틀버스 타는 곳을 알아보았다. 학교에서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렸다. 이틀 동안 아이와 같이 길을 걷고 셔틀버스를 태워 보냈다. 그렇게 생활이 이어졌다. 어느날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성호(가명)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안 와요.” 어디로 간 걸까, 셔틀을 놓쳤을까, 괜찮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칠 때 수화기 넘어 선생님 목소리가 울린다. “성호야! 어머니, 성호 왔어요! 셔틀버스 기사님이 성호를 못 보고 지나쳤나 봐요, 여기까지 걸어왔데요!” 나도, 선생님도 그날 펑펑 울었다. 셔틀 타는 곳에서 복지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6차선 도로 길을 걷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고 여러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어린 아들이 혼자 걸었을 그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겨울 방학이 되었다. 아들이 열 살, 딸이 여섯 살이었다. 아들은 여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혼자서 공부방에 갔고 친구네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개학을 해서도 오랫동안 동생 등원을 도왔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엄마, 은희(가명)가 아침에 말을 안 들어서 힘들어요” 그제야 아들이 보인다. 어릴 때부터 아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침마다 동생 챙기느라 시간에 쫓겨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엄마가 데려다 줄게.” 다시 내가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지 이 주 정도 지났을 때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안 힘들어요?” “힘들지, 힘들어도 엄마니까 해야지.” 아들은 그 이후 다시 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다시 내가, 괜찮아지면 다시 아들이 했다.

     

    아들은 본인이 마주한 일상을 담담히 살아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복지관에 혼자 걸어갔을 때도 ‘가야 하니 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학교 준비물을 제때에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단 한 마디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아들이 도와준 덕에 내가 살았다. 이 기특한 아들이 무대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다. 이제 아들은 나보다 키가 크고, 나보다 잘 웃는다고, 아들이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한껏 웃으며 졸업사진을 찍는데 표정이 마냥 밝고 예쁘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워킹맘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겪은 육아 전쟁을 바로 눈앞에서 그려내듯 이야기가 생생했다고 평가했다. 독자로서 이 글을 읽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내용에 주로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생생하고 피부에 와 닿아서 공감했다고 생각한다. 맞다. 당연하다. 하지만 글쓴이는 관심을 끄는 내용 외에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사용했다.

     

    바로, 이야기 구조였다. 글쓴이는 자신과 아들이 겪은 이야기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지 않았다. 먼저 주제를 선명하게 생각하고, 주제에 맞게 이야기 재료를 찾았다. 그리고 이야기 재료를 특정한 틀에 맞춰서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래서 내용은 다채롭고 풍성한데 군더더기는 거의 없다. 삼천포로 빠지지도 않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0) 글감(소재)을 찾고 주제를 정하다 

     

    글쓴이의 큰 아들이 최근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글쓴이는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자연스럽게) 글감을 떠올렸다. 어딘가 제출해야 해서 글감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운 생활 사건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서 글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글감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다. 주제는? '(엄마로서) 충분히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그런데도 잘 자라줘서 고맙고 기특한 마음'이다. 

     

    (1) 글 재료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메모하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그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일, 감동받은 일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나열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중요한 일을 선택해 보았어요." 

     

    글쓴이가 글을 쓸 준비를 하면서 처음에 적은 메모지를 들여다 보자. 아들을 임신해서 출산했을 때부터,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겪은 중요한 일을 적었다. 그런데 최종적인 결과물과 비교해 보면 어느 대목을 그냥 넘어가거나 생략하고 어느 대목을 자세하게 썼는지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글쓴이는 주제와 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선택했으리라. 

     

    (2) 구조를 선택하고, 구조에 맞춰서 재료를 재구성하다 

     

    민경재 사회복지사: "사실, 글 구성은 일찍 했어요. 수업 시간에 배운 자기-돌봄 글쓰기를 위한 '인물-시련-성장' 플롯을 적용하니까 어렵지 않았어요. 그렇게 내용을 정하고 나서는 여러 사건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계속 생각했어요. 결국, 아들이 저를 돌봤고, 아들 덕분에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느낌을 살려서 쓰고 싶었어요."

     

    글쓴이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에서 배운 '자기-돌봄 글쓰기 플롯'을 기본 구조로 잡고,이미 정리한 세부 내용을 다시 정리했다. 글쓴이는 오로지 진짜로 쓰고 싶은 내용(주제)를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글 구조에 신경을 썼다. 

     

    <참고 자료1: 자기-돌봄 글쓰기 플롯>

     

    자기-돌봄 글쓰기 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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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2: 스토리를 플롯으로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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