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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 잘 쓰는 방법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2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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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날씨: 이슬비.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나 혼자 이것 저것 준비해서 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호기심이 많아 집안을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는 봄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밥도 먹여야 하고, 빨리 얼굴을 씻긴 후에 아내가 정해 놓은 로션도 발라줘야 한다. 그 다음엔 밤새 싼 소변 때문에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기저귀도 갈아주고, 날씨에 맞게 내복과 겉옷도 입혀야 한다.

     

    이렇게 집안을 바삐 뛰어 다니며 준비하다가도 갑자기 내 배가 아프면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 화장실 문을 닫으면 봄이가 위험한 곳에 올라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변기에 앉는다. 그러면 봄이는 화장실 문지방에 똑바로 서서 아빠가 거사를 치르는 장면을 즐겁게(?) 관람한다. 이번엔 봄이가 아빠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평소 안 하던 말을 꺼냈다. 

     

    "아빠, 응가, 안녕!"

     

    봄이가 대변을 봐서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면서 엉덩이를 씻길 때면 언제나 아내가 말했다. "봄아, 인사하자. 똥, 안녕!" 아기는 인간 복사기라서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100% 그대로 따라한다. "똥, 안녕!" 지금도 아빠가 화장실로 달려와서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그 생각이 났나보다. 아빠가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는 동안, 말 없이 지켜보다가 문득 선언했다.

     

    한 달 전쯤, 봄이는 내어난 후 처음으로 문장을 만들어서 발음했다: "과자, 더 줘." 그 다음엔, '엄마, 안녕!'이라고 말했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있다. 나는 언제나 아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딸은 다르다. 뭘 해도 귀엽다. 헌데 말을 시작하니 더욱 귀엽다. 우리 부부에게서 떨어져 나간 세포가 커서 말을 하다니! 다른 모든 기적처럼, 놀랍다. 


    1. 일기는 '남'이 읽는다 

     

    사람은 날마다 변한다. 사람은 매일 새롭게 경험을 쌓아서 온갖 사물에 대해서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낀다. 그래서 과거에 일기를 쓴 나와 미래에 일기를 읽는 나는 (미세하게나마) 조금 다른 사람이다. 그렇다면, 일기를 쓸 때는 미래에 읽을 나를 위해서 가급적 친절하게 써야 한다. 미래에 일기를 읽을 내가 오늘 내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써야 한다

     

    2. '오늘은'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늘은'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자연스럽게 형식과 내용이 뻔해진다. 일단 '오늘은' 이라고 쓰면 대체로 '무엇을 했다'라고 쓰게 될 텐데,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쓰는 재미가 떨어진다. 일기는 오늘 겪은 일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쓰는데,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다면 지루해서 계속 쓸 수 있겠는가. 오늘이 정말로 평범한 하루였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3. 일기는 서사문이다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은, 백지가 광야처럼 느껴져서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첫 걸음을 떼야 할지 감을 못 잡는다. 일기도 글이라서 두려워하고 방향을 못 잡은 채 이리저리 헤맨다. 이럴 땐, 본질을 떠올리면 좋다. 기본적으로 일기는 '사건'을 서술하는 서사문이다.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무수한 일 중에서 의미있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시간 순서대로 적은 후에 내 생각이나 감상을 적는다. 

     

    4. 서사문에는 인물이 필요하다

     

    서사문은 이야기다. 이야기에는 언제나 인물이 등장한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등장해야 일기 속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려 나간다. 따라서 일기를 쓸 때는 인물부터 떠올리라. 누구의 이야기인가? 일단 일기를 쓰는 나는 관찰자다. 나는 관찰자면서 대체로는 일기 속 이야기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늘 그렇진 않다. 일기는 내가 쓰지만 가끔씩은 이야기 속 조연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5. 인물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행동한다 

     

    일기 속 등장 인물은 밑도 끝도 없이 행동하진 않는다. 인물 뒤에는 언제나 맥락이 있다. 맥락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맥락은 시간과 장소다. 즉, 내가 언제, 어디에 가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가 이야기 핵심이다. 시간과 공간을 알면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기 속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서 맥락을 다 아니까 생략하고 무작정 쓰면, 나중에 읽을 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6. 인물은 갈등한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갈등이다. 갈등이라고 쓰니까 나와 대립하는 타인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내적인 갈등도 있다. 일기는 개인적인 기록이라서 내적인 갈등이 외적인 갈등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렇게도 하고 싶고 저렇게도 하고 싶은, 양가감정이 좋은 사례다. 내가 경험한 상황에서 서로 갈등하는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라. 

     

    7. 솔직한 내 심정은?

     

    경험한 일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글을 쓸 때는 글쓴이가 글감(소재)에 부여하는 의미(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다루어도, 내가 그럴 듯하게 의미(가치)를 부여하면 의미있는 일, 중요한 일이 된다. 일기에서 글감에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런 의미는 바로 감정(심정)이다: 글감에 대해 나는 솔직히 어떻게 느끼는가? 

     

    8. 만년 글감 A: 날씨 

     

    일기에 이야기만 쓰진 않는다. 언제나 다뤄도 좋은 만년 글감이 세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날씨다. 날씨는 매일 다르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다른 요소가 있다. 날씨를 동물이나 사물에 비유해도 재밌다. (예시: 봄이 되니 온 세상에 봄기운이 올라온다. 웅크렸다가 높이 솟아 오르는 강철 스프링처럼, 샛노란 개나리가 쾅! 폭발해서 세상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9. 만년 글감 B: 내가 좋아하는 것 vs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날씨만큼 좋은 글감이다. 아무 때나 편하면서도 흥미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까. 이유를 쓰면 좋다. 좋아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면 쉽다. 이유가 여럿일 수 있으므로,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세면서 써도 좋겠다. 좋아하는 이유나 싫어하는 이유를 쓴 후에는 구체적인 사례를 쓰면 쉽다. 

     

    10. 재미있는 일 혹은 힘들었던 일

     

    이렇게 설명했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면, 끝으로 말하겠다. 웃긴 이야기를 쓰시라. 하루를 지내면서 웃은 순간을 기억해서 글을 쓰면, 행복하게 잠들 수는 있으니까. 혹시, 웃긴 이야기가 없다면, 힘들었던 이야기를 쓰시라.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다.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아무리 힘든 일도 조금은 더 편안하게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극복하지 못해도 최소한 내 마음을 안아 줄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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