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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는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기(一記)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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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는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기(記)다. 

     

    국어 사전을 찾아 보면, 일기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 기록'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만 알면 (특히 글쓰기 초심자는) 실제로 일기를 쓸 때 어렵다고 느낀다. 생각을 충분히 정리한 후에 쓰지 않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초점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고 쓰기 시작해서 중구난방 어지럽게 생각을 펼치기 때문이다. 

     

    일기를 하루(日)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 쓰는(記)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日) 동안 일어난 여러 일 중에서 딱 하나만(一) 골라서 간결하게 쓰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언제나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날아가고, 순간마다 사건이 일어나니 일기에 쓸 내용은 사실상 '셀 수 없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사건을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글쓴이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을 고르리라.

     

    이렇게 의도적으로 사건 하나만 고르겠다고 마음 먹고, 실제로 딱 하나만 골랐어도 글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 생각은 물처럼 연속되어 있지만, 글은 블럭처럼 잘려진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을 하나만 고른 후에도 애야기 경계를 최대한 뚜렷하게 그려야 한다. 해당 사건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소개할지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사방으로 무질서하게 뻗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예시글>

     

    제목: 할아버지, 할머니들 도와주고 행복해하는 게 꿈이야? 

     

    글쓴이: 이기국(서경노인복지관 관장, 2024)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갑자기 묻는다. “아빠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 나는 꿈이 없어. 뭘 할지 모르겠어.” 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들려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꿈이 뭐였는지 생각나질 않았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내 꿈이 뭐였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영화잡지를 보았다.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그후 매월 나오는 영화잡지를 보면서, 영화감독을 꿈꿨다. 당시엔 꽤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결국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첫 직장도 여기저기 면접을 보다가 덜컥 합격해버린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고향에 내려왔다.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어 노인복지관에서 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상황에 맞춰서 미래를 결정했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도와주고 행복해하는 게 꿈이야?”

     

    갑자기 딸이 내 꿈을 정해주었다. 구구절절 설명은 못하겠지만,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돕는 사회복지사. 어렸을 적 꿈꾸던 직업은 아니지만, 나는 이 직업이 좋다. 매일 즐겁지는 않지만, ‘뽕 맞은 듯’ 기분 좋은 순간도 종종 맞이한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준 딸에게 고맙다.


    이 글 구조를 분석한다면, 크게 두 부분을 나눌 수 있겠다: (a) 딸과 대화 나눈 사건, (b) 해당 사건에 관한 내 생각과 감정. 글쓴이는 딸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과거 일을 떠올렸다. 딸이 어릴 적 꿈을 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과거 일을 소개했지만, 내용을 대단히 절제하면서 썼다. 이 지점에서 정신줄을 놓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구구절절 소개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일기에 사건을 하나만 쓰랬다고 정말로 하나만 쓰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야기 초점을 유지해아 한다. 

     

    글쓴이는 작은 사건을 딱 하나 소개한 후, 이 사건과 관련된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면서도 간결하게 적었다. 분량만 본다면 사건을 기록한 전반부가 훨씬(두세 배) 길다. 하지만 후반부에 덧붙인 해석이 없다면, 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는다. 글쓴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은, 딸이 어릴 적 꿈이 뭐였냐고 물은 사건도 아니고, 20년 동안 어떤 꿈을 품고 살았는지도 아니다. 바로 딸이 한 줄로 정리해 준 문장이었다. 아마도 딸이 우연히 맞추었겠지만, 글쓴이 마음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포착해 준 문장이었다. 

     

    일기는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기(記)다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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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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