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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 찍기 좋은 날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9. 05:25728x90반응형
셀카 찍기 좋은 날
글쓴이: 김정현 (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화창한 토요일 오전, 구미행 시외 버스에 올랐다. 출발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일찍 차에 탄 사람이 꽤 많다.
찰칵찰칵 소리가 난다. 건너편 앞자리에 핑크 모자 아가씨가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다. 왜 저러나 싶어서 살펴 보니 셀카를 찍는 중이다. 곱게 단장하고 나온 자기 모습을 남겨 놓고 싶나. 손에 쥔 휴대폰을 향해 여러 번 빵긋 웃고 적당한 자연광을 찾느라 이리저리 몸을 튼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여자도 여행가방 하나를 발치에 놓고 휴대폰을 향해 턱을 당기고 눈을 살짝 치켜뜬다. 연이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미인이시네요~” 누가 말을 건네면 “아유 아니예요” 이렇게 손사래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즐기는 지금 이 시간만큼은 자기 모습에 만족하겠지.
잠시 후 앞자리 아가씨는 셀카 놀이를 끝내고 동행과 함께 볼에 바람을 넣고 찰칵! 두 얼굴을 붙였다 뗐다 각자 휴대폰으로 번갈아 가며 두 얼굴을 담느라 몹시 바쁘다. 키득키득 웃으며 찍은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잘 나왔다는 둥 지우라는 둥 실랑이를 벌인다.
뒷자리 여자는 찍은 사진을 앞뒤로 넘기며 살펴보더니 엄지 손가락을 분주히 놀려 자판을 두드린다.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거나 소셜 미디어에 올리나 보다. 뭐라고 썼을까? ‘구미가는 날~ 너무 일찍 일어나 화장이 잘 안 먹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즐겁게♡♡♡’ 뭐 이런 말이겠지?
친구가 되어 저 사진을 받아보고 싶을 만큼 셀카에 열중하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인다. 그렇다고 그녀를 따라 선뜻 셀카를 찍을 엄두는 못 내겠다.
나이가 들면서 셀카 찍기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드는 셀카 사진 한 장을 건지지 못한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한다는데 사진 속 나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조금 더 부어있거나 처져있고 살집이 너무 좋다. 진하게 화장하고 썬글라스나 챙이 큰 모자라도 하나 얹어줘야 좀 근사해 보인다.
셀카 찍기는 인생 같다. 젊을 때는 빈손이라도 당당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면 왠지 자랑스럽고 세상 앞에 온몸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이름 석 자면 충분했고 누구에게라도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내 본래 모습은 뒤로 감추고 사회적 지위나 직함을 나라고 내세우며 자기를 포장하고 원래 이름을 덮어 버린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원래 자기 모습을 잃어간다.
나는 왜 나이지 못하는가?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조금 처지고 살집 좋은 사진 속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누구의 시선으로 살고 있는가?
버스 안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거울을 꺼냈다.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참 뚫어져라 들여다 본다. 웬 중년 여인이 미간에 내천 자를 그리며 앉았다. 자세히 보니 여인은 황혼 길을 거니는 노부모님과 사랑하는 형제들을 참 많이 닮았다. 문득, 거울 속 여인이 내천 자를 지우며 벙긋 웃는다.
어느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켜들고 햇살 속으로 나선다. 셀카 찍기 좋은 날이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걸작입니다. 김정현 선생님께서 품으신 강점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① 쉽습니다. 술술 읽힙니다. ② 간결하지만 풍성합니다. ③ 솔직합니다. ④ 내용이 깊습니다. ⑤ 문학적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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