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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나는 장례식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5. 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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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는 장례식

     

    글쓴이: 이기국(서경노인복지관 관장, 2024)

    첨삭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장례식은 항상 슬퍼야 할까? 진도에서 치르는 장례식은 잔치처럼 즐거워 보인다. 조문객이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장례식장은 약간 떠들썩한 분위기다. 추석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가족, 동네 사람처럼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어렸을 적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조문 온 사람들은 마치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즐거운 듯 보였다. ‘나는 정말 슬픈데 왜 저 사람들은 즐거워할까? 나는 조문 온 사람들을 원망했다. 

     

    진도 장례 문화가 그렇다. 상주 가족이 슬픔 속에 빠져있을까 봐, 조문객은 일부러 장례식장에서 시끄럽게 이야기한다. 오히려 상주는 조문객에게 술을 더 먹고 늦게까지 '놀다' 가라며 부추긴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골 친구들은 냉장고에 있는 술을 다 마시고,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발인했다. 시골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 누님은 시끄럽게 술 먹을 때는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장지까지 와서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듯 것처럼 펑펑 울어준 친구들이 고맙다고 했다.

     

    가끔씩 대도시 장례식장에 방문하는데, 나는 진도식 문화가 몸에 배어서 그런지 도시 장례 문화가 영 불편하고 어색했다. 도시 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이 계속 찾아오면 자리를 비워야 했다. 앉을 자리가 그만큼 부족했다.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였다. (그러니까 조문하고 밥 먹은 후 빨리 나가라는 구조다.) 반면에 옛날 진도 어르신들은 상갓집에서 상주 가족과 함께 밤을 꼬박 지새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위로하는 하는 구조랄까. 

     

    무형문화재인 다시래기와 씻김굿은 진도 장례 문화를 상징한다. 다시래기는 ‘다시 낳다’라는 뜻으로 출상 전날 밤 동네 사람이 모여 날을 지새우면서 노는 놀이를 말한다. 신나는 연극과 비슷하다. 심지어 성적인 농담을 걸죽하게 늘어 놓고, 스님과 바람을 피우는 아낙네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리고 씻김굿은 돌아가신 망자가 극락왕생하여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비는 굿이다. 도시풍 장례식장이 생기며 진도 장례 문화는 대부분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장례식장에서도 씻김굿을 한다.

     

    상여가 나갈 때도 진도는 다른 지역과 다르다. 선두에서는 꽹가리와 북을 치고, 호상계원인 아주머니들은 앞뒤로 흰 천을 부둥켜 잡고 진도만가를 부른다. 심지어 상여가 나가는 도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춤도 춘다. 상주는 고생하는 상두꾼에게 술을 따라주며, 고인을 장지까지 잘 모셔다드리라고 부탁한다.

     

    ‘초상집 분위기’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죽음은 엄숙하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죽음을 최대한 멀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도 사람은 죽음을 이겨내려고 장례식을 흥겨운 잔치로 바꿨다.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밤이 새도록 놀면서 유족을 위로한다. 홀로 슬픔을 이겨내기는 어렵지만 동네 사람, 친구, 가족이 함께하면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어떤 이는 축제식 진도 장례 문화를 유교식 예법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생일 잔치처럼 밝은 진도 장례식이 좋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이기국 관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이기국 관장님께서는 자기-돌봄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기본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우와~ 정말 잘 쓰셨습니다. 술술술 잘 읽힙니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읽기 쉽습니다. 

     

    2. 역시 이기국 선생님은 뛰어난 학생이십니다. 우리 클래스에서 배운 거의 모든 설명 기술(정의, 상술, 원인/결과, 예시, 대조 등)을 충분히 소화하셔서 이 글에 완벽하게 녹여 내셨습니다. 

     

    3. 원래 초고는 한 단락에 불과했는데, 솜씨 좋게 여섯 단락으로 확장하셨어요. 보통은 이렇게 글 길이가 길어지면 밀도가 떨어질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네요. 

     

    4. 이 글은 잘 포화(飽和)되었습니다. 포화(飽和)란 넉넉하게 배부른 상태를 뜻하지요. 넘치지도 않고, 서운하지도 않을 정도로 밥을 먹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길이가 충분히 긴데도 짧게 느껴지고, 내용이 간결한 듯하면서도 다채롭고 풍부합니다. 억지로 내용을 짜내서 분량을 채우지 않으시고, 마음에 담은 신선한 재료를 충분히 익혀서 조화롭게 요리하셨습니다. 

     

    5. 글을 평이하게 쓰는 분. 이기국 선생님께서는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분들을 부러워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거꾸로 다른 사람들이 이기국 선생님 글솜씨를 부러워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이기국 선생님께서는 늘 글을 평이하게 쓰십니다. 즉, 담담하고 쉽게 쓰셔서 독자가 쉽게 이해합니다. 이 지점에서 수식 어구를 조금만 늘리시면, 술술술 읽히면서도 표현력이 좋은 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없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시고, 있는 것에서 조금씩 늘려 나가세요. 지금 그렇게 가고 계십니다. 꾸준히 계속 나아가시면 틀림없이 피안에 도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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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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