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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갈 거니?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5. 20. 05:41728x90반응형
이제, 어디로 갈 거니?
글쓴이: 백운현 (사회복지법인 푸른초장 대표이사,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일 그만 할래요. 이제 쉬고 싶어요!”
하늘이가(가명) 갑자기 선언했다. 그동안 특수학교 전공과(전문대학 과정)를 졸업하고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로 3년 동안 일했다. 올해 들어 하늘이가 일을 힘들어한다길래 왠지 불안했는데, 드디어 그만두겠단다.
“힘들면 휴직하고 좀 쉬어도 되는데, 몇 달 쉬고 다시 할까?”
안타까워서 설득했지만 안 된다. 결국 하늘이는 4월 말 사직하기로 결정했다.
15년 전쯤 더운 여름날, 초등학교 3학년 하늘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푸른초장에 왔다. 하늘이는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하늘이 엄마는 딸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지속적으로 당하여 더 이상 학교를 못 보내겠다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푸른초장에서 받아주고 교육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늘이는 일반학교에서는 적응을 못하고, 특수학교에 보내기에는 좀 아까운 경계선급 장애가 있다. 그래서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하고 방과 후에는 푸른초장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특수학교로 전학한 하늘이는 아주 잘 지냈다. 특히 종이접기에 재능을 보여서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아 왔다. 얼굴이 밝아진 하늘이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수학교 전공과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하늘이는 1년 동안 집에서 쉬었다. 공부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으니 좀 쉬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아무 것도 안 했다. 모든 정규과정을 다 공부한 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방에만 있는 모습을 하늘이 엄마는 보기 힘들어했다. 그동안 마음 졸이면서 공부시키고 애쓴 시간이 얼마인가? 언어치료, 인지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치료와 훈련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종일 엄마와 마주보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마침 푸른초장에서 취업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하늘이에게 취업을 권했다. 하늘이는 싫어했지만, 부모님이 간곡하게 권유해서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로 취업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
그런데 2024년 2월부터 하늘이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근무 태도가 안 좋아졌고, 결근하는 날도 많아졌다. 그리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갈등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출근길에 차를 횡단보도 앞에 세웠을 때 갑자기 뛰어 내려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부모님과 갈등도 커져서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 밤마다 집을 나가서 배회하고 노래방 피씨방에 자주 가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특히 새벽과 저녁에는 길거리를 오랫동안 배회해서 부모님께서 많이 불안하셨다.
밤에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았다. 채팅으로 만난 사람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해외로 간다고 여권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서울에 취직이 되어 사장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고 서울로 간다고 말하고, 인천에 사는 어떤 오빠와 사귀기로 약속 했다고 인천으로 간다고도 말했다. 다 사기라고 속으면 큰 일 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이제 22살 하늘이에게도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보다. 요즘은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도 하고 다닌다.
하늘이는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백화점 판매원, 택배회사 배달원, 사무실 사무원으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합격통보를 받지 못했다.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선언했지만, 잘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그럴 듯한 자격증도 없고, 오라고 하는 곳도 없다. 경계선급 장애가 있는 하늘이는 이런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그래서 사직했다. 아이러니하지만 하늘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사직 밖에 없었다.
“일 그만 할래요. 이제 쉬고 싶어요!”
하늘이가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왔다. 처음 만났을 때 하늘이가 보였던, 세상을 두려워하던 눈빛을 다시 보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싶다. 하늘이가 정말 씩씩하게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하늘아 어디로 갈 거니? 힘들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도 된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백운현 선생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백운현 원장님께서는 자기-돌봄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기본반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아주 잘 쓰셨습니다.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장애인)가 직면하는 현실을 무척 진솔하게 정리해 주셨어요. 언제나, 혹은 누구에게나, '희망'은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힘을 잃고 헤매는 그림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2. 글을 처음 읽으면서 조금 길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이 그동안 현실에 차갑게 부딪히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충분히 두툼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두었습니다.
[이재원 효과]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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