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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비서는 왜 사표를 던졌을까?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6. 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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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비서는 왜 사표를 던졌을까?

    (사회복지사라서 행복합니다)

     

    글쓴이: 최영미 (은혜주택 시설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대학생 시절, 나는 사회복지현장을 구질구질하다고 느꼈다. 그때는 오래된 학교 건물 낡은 책상에서 사회복지 실무를 배우고, 학교 부적응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별/집단상담 봉사활동을 꾸준히 다녔다. 청소년을 만나고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지만, 근무 환경과 급여 등 사회복지사 처우가 열악하여 ‘내 길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졸업하면서 일반 기업에 임원 비서로 입사하여 일하게 되었다. 내가 모신 분은 로맨스 드라마 ‘김 비서는 왜 그럴까’에 나오는 잘 생긴 박서준 사장님은 아니었지만 업무로 충분히 인정해 주셨고, 사무실 분위기도 단정하고 괜찮았다.

     

    (20대 후반, 기업에서 비서로 일하던 시절 찍은 사진)

    회사에서 임직원들이 자주 오가는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직급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OO국장처럼 인정받을까?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셔?”, “오늘 무슨 일 있어? 이거 맞아?” 그때부터 누군가 하소연하면 잘 들어주고, 사람들 얼굴 표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년 넘게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던 어느 날, 조찬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남성들이 회의 중에 완전 깨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가 축 쳐져서 사장실을 나오는데...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특히, 우리 아빠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일부러 회의 끝나는 시간에 자리를 비웠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동료들과 편안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싶어서 이곳에 있었는데 여기에서 계속 일해도 괜찮을까? 이쯤에서 그냥 정리해야 하나?’ 점점 더 고민하던 그때 평소 친한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좋은 학과를 나와서 왜 여기서 썩히고 있어. 사회복지 잘 할 것 같은데?” 이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제대로 때렸다. 나는 곧바로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사회복지사 경력은 하나도 없는데 나이는 조금 들어서(29세) 신입으로 기관에 입사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분야별 복지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복지분야가 훨씬 더 더 다양해지고, 미래 유망직종 1위가 사회복지사라는 풍문도 들려왔다. ‘망했다. 이렇게 유망한 사회복지현장을 홀대했다니!’

     

    그런데 어느 날 집 근처 단골마트에서 물건을 계산하려고 기다리는데 앞 사람이 본인이 일하는 거주시설에 직원이 없어서 일하기 힘들다고 사장님께 하소연했다. 그때 갑자기 사장님이 나에게 “영미 씨가 사회복지학과 졸업했지? 지금 일해?”라고 물어보시더니, 바로 그 앞 사람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렇게 나는 얼떨결에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은혜주택 원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얼떨결에 은혜주택에 입사했다. 운명적 만남이었을까. 정말 생소한 분야였고 시설 상황도 정말 열악했는데, 집도 사람도 ‘이상하게 친숙’했다. 은혜주택은 24시간 운영하는 거주시설이라서 직원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니 모두 열렬하게 환영해 주셨고, 선배들 도움을 받아 일당백 역할을 수행하며 모든 일을 꼼꼼히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은혜주택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이 울고 웃었다.

     

    야구방망이로 맞아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입소한 여성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을 연계하고, 술 취한 남편이 펄펄 끊는 식용유를 끼얹져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여성이 낮이면 햇빛을 괴로워하여 커튼으로 빛을 가려줬다. 어느 날은 우울증으로 무기력해진 입소인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어느 날은 “선생님은 아빠가 안 때려서 모르죠?” 라고 말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새로 입소한 어떤 엄마는 식사 당번(입소정원이 31명 이상 일때 조리사가 배치된다) 설명하는 직원에게 “저는 음식 못해요, 그냥 갈래요.” 라며 바로 퇴소하겠다고 하더니, 나중엔 은혜주택을 인천 맛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머리를 많이 맞아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고 원망하던 69세 어르신은 “아이고, 원장님은 내 엄마 같아, 은혜주택은 친정집 같고.” 라며 친정 엄마에게 하소연하듯 종종 전화하셔서 안부를 전하신다. 얼마 전 퇴소한 초등학생은 하교길에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여기로 왔어요. 히잇.” 하며 현관문 앞에서 벨만 누르고 돌아갔다. 임신 중이던 어떤 엄마는 “여기서 샘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하더니 나중에 진짜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여 지금은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동료가 되었다.

     

    (며칠 전, 은혜주택 직원들과 함께 워크숍 가서 찍은 사진)

    만약 내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초년생으로서 은혜주택에 입사했다면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시야가 좁고 어리석어서 열악한 상황에 쉽게 압도되고 이 현장이 구질구질하다고 함부로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정폭력피해여성과 자녀을 보호하고, 이들이 사회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사회복지사라서 행복하다. 이런 나를 보며 우리 딸은 늘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역시 사회복지사스러워.”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최영미 시설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최영미 시설장님께서는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가 기획한 '성숙을 담는 글쓰기, 회전목마(제 2기)' 클래스에 참여하셨습니다. 

    _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 김성준 회장님, 박정아 사무처장님, 차수현 주임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정말로 잘 쓰셨어요. 군더더기가 많으리라 예상하고 걱정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긴 이야기를 잘 요약하셨고, 필요한 부분은 충분히 잘 풀어서 쓰셨습니다.

     

    2. 역시, 자기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독자는 충분히 설득됩니다. 최영미 선생님께서 왜 사회복지 현장을 구질구질하게 느끼셨는지, 그리고 왜 기업에서 잘 나가는 비서로 일하시다가 구질구질한 사회복지 현장으로 굳이 돌아오셨는지, 특히 왜 가장 열악할 현장으로 돌아오셨는지, 왜 현재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왜 딸이 농담조로 핀잔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시는지,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은혜주택에서 울고 웃은 이야기를 담으신 부분이 특히 좋습니다.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은혜주택에서 일하시면서 온갖 감정과 생각을 품으셨을 텐데, 그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서 글로 옮기셔도 정말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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