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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장 비서’가 나한테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6. 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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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장 비서’가 나한테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글쓴이: 김정현 (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직장에서 처음으로 별명을 얻었다.
     
    입사 2년 반 만에 행정 일이 많은 복지기획과를 떠나 주로 케어 업무를 담당하는 요양복지과로 부서를 옮겼다.
     
    요양실에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처음으로 인사 드리는데, 가장 연세가 많은 99살 허씨 할머니가 “김 선상이라, ‘국장 비서’재?” 하시면서 깔깔 웃으신다. ‘국장 비서’라니 당황스럽고 조금 불쾌했다. 특정한 어떤 사람의 ‘무엇’으로 내가 불리다니... 옆에 선 과장님 표정을 보니 처음 듣는 말이 아닌 듯 태연하다.
     
    요양실 직원들은 나에게 쉽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회의 시간에도, 식사 시간에도, 내게 보내는 눈빛 속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업무에 대해 물어보려 해도 눈을 맞춰주지 않으니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내가 사무실에 있으면 직원들은 서로 낮은 소리로 속삭일 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나를 ‘국장 비서’라고 정의내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국장님께 ‘일러바치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 무척 속상했다.
     
    소통이 되지 않아도 일은 해야 했다. 오전에는 목욕, 청소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게다가 퇴사 전에 연차를 사용하는 직원이 많은 날에는 익숙하지 않은 케어업무를 혼자 하느라 여름해가 언제 지는지 모를 정도로 종종걸음을 쳤다. 예전에 우리 부서는 복지기획과에 행정업무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데 나는 좀더 체계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후에는 주로 보고서와 서류 양식을 새로 만들고, 필요한 물품을 조사하고 구입하기 위해 품의서를 수없이 썼다. 물어볼 사람도, 같이 할 사람도 없어 막막하고 외로웠다.
     
    혼자 주간 근무하던 날 허씨 어르신 목욕을 끝내고 손톱을 정리해 드릴 때였다.
     
    “국장 비서 선상, 일은 할만 하나?”
    “아유, 할머니까지 왜 저를 ‘국장 비서’라 그러세요. 누가 그런 별명을 만들었는지...”
    “그거? 내가 만들었다.”
    “할머니가요? 직원이 아니고요? 왜 제가 ‘국장 비서’예요?”
    “김 선상이 국장 가는데 마다 졸졸 따라다니니까 내가 그래 붙였다. 와, 안 재밌나? 깔깔깔.”
     
    이전 부서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기에 행사 때마다 원장님과 국장님을 수행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어르신은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으셨나 보다. 국장님 옆에 따라다니던 직원이 요양실로 온다는데 이름을 모르니 ‘국장 비서’라고 별명을 붙여 주셨구나. 나를 헐뜯느라 요양실 직원들이 지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직원들은 내가 싫어할까봐 내 앞에서 그 별명을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나만 몰랐다.
     
    그러고 보니 마음을 열지 않은 쪽은 직원들이 아니라 바로바로바로 나였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 혹시나 실수할까봐 흉잡힐까봐 잔뜩 긴장하고 인상을 쓰며 지냈다. 회의 시간마다 앞에 나서서 “이걸 고쳐야 한다, 저걸 바꿔야 한다”며 온갖 잘난 척을 해 대니 케어 업무도 다 잘하는 줄 알고 아무도 일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몇 주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수첩을 들고 케어 선생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갔다. 정중하고 진심어린 호기심을 담아 물어보았다.
     
    “선생님, 어르신 기저귀를 교체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이 뭐예요? 식사 시간에 빠뜨리면 안 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직원들은 그것도 몰랐냐며 기가 막혀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고, 나는 그 내용을 종합해서 “신입직원을 위한 케어 매뉴얼”을 만들었다. 1차, 2차 내가 정리한 매뉴얼을 다시 선생님들에게 점검 받으며 여러 번 고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할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 몰라서 오해했던 부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 저 이제 ‘국장 비서’ 아니예요.”
    “맞다, 국장하고 멀리 떨어졌다. 시내에서 출근하니 인자는 ‘시내 사람’이라 부를란다.”
     
    직원 20여 명이 시내에서 출근하지만 허씨 할머니에게 유일한 ‘시내 사람’은 나다. 그 사이 부쩍 친해진 직원들도 가끔 나를 부를 때 ‘시내 선상님~’ 이라고 말한다.
     
    여름을 지나면서 나는 다시 기가 살아나서 까불까불 요양실과 사무실을 누빈다. 직원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고 어르신들 흉도 같이 본다. 두 다리를 쭉 펴고 누워 있는 직원 옆에 나도 슬그머니 누워 뒹굴거린다. 과자를 먹다 말고 내가 한 마디 슬쩍 던진다. 
     
    “근데요, ‘시내 사람’보다 ‘국장 비서’가 나한테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뭔가 좀 고상하고...”
    “에이, 주임님은 고상한 거랑은 거리가 멀죠. 맨날 짱구 흉내나 내면서.”
    “아, 그런가. 흐흐흐.......”
     
    ‘국장 비서’는 여름 더위 속으로 멀리 사라지고, ‘시내 사람’은 짱구 말고 또 누굴 흉내내서 직원들을 웃겨볼까 고민에 빠진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김정현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김정현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딱 김정현답게 쓰셨네요. 걸작입니다. 
     
    2. 김정현 선생님께서 변화를 만들어내셨는데,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하셔서 참 인상적입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겸손하게 대하는 사람은, 질문합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 말을 듣습니다. 제가 해결중심상담 전문가잖아요? 제가 전문가 시각으로 보기에, 선생님께서 인용해 주신 질문은 전형적인 해결중심 질문입니다: 선생님어르신 기저귀를 교체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이 뭐예요? 식사 시간에 빠뜨리면 안 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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