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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못 믿고 계속 걱정하면서 살았답니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7. 23. 14:23728x90반응형
글쓴이: 백운현 (사회복지법인 푸른초장 대표이사, 2024)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4)
“우리 딸 참 예쁘지요?”
하은이(가명)와 처음 만났을 때 하은이 어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은이 어머니는 딸이 심한 장애를 겪고 있어서 그동안 여러 시설에서 거절을 당해 또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했다. 나는 어린 하은이를 품에 꼭 안아 주면서 말했다. “참 예쁘네요. 잘 오셨어요!”
하은이를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인 푸른초장에 남겨 두고 떠나는 하은이 어머니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고, 어머니와 떨어지는 하은이도 이제야 눈치를 채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난다. 문득 오래 전 이렇게 울었던 엄마와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50여 년이 흘렀지만,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을 국민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읍내 하숙집에 혼자 남겨두고 떠나실 때,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숨죽여 우셨다.
세월이 많이 지나 막내아들은 울고 있는 하은이 어머니에게 엄마 이야기를 해 주며 위로하고, 서럽게 우는 하은이를 달랜다. 그렇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울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작은 장애인 공동체를 시작했다. 성장 과정에서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겨울, 장애인 공동체 푸른초장은 ‘3무(無) 비전’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로 종결이 없고, 두 번째로 교육비가 없고, 끝으로 장애 유형에 대한 차별도 없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결혼 전에 특수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우리 아파트를 오픈해서 작은 공동체를 그냥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났다. 상담하러 오는 어머니는 종결이 없다는 비전을 의심했다.
“진짜 종결이 없어요?”
장애인 가족은 늘 미래가 불안하다.
‘다음은 어디로 가지? 그 다음은 얼마 동안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죽고 보호자가 없을 때 우리 자녀는 어떻게 살까?’나도 똑같은 불안감을 평생 느끼면서 살아와서 그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결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비전은 비현실적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푸른초장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에게 종결없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푸른초장 같은 공동체가 이 땅을 뒤덮는다면? 장애인 곁에서 평생 동안 함께하는 작은 공동체가 동네마다 생긴다면?
우리는 24년 동안 6층짜리 큰 집을 두 채 건축했고, 종결을 없애려고 장애인 생애 주기에 따라 산하 시설을 다섯 개 만들었다. 사회복지 법인으로 등록해서 국가와 기관과 가정이 협력하여 함께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종결이 없고, 안정적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저는 푸른초장 처음 시작할 때 말씀해 주신 그 말 안 믿었어요. 운영하시다 힘들면 우리 딸을 데려가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못 믿고 계속 걱정하면서 살았답니다.”
이제 우간다와 에스와티니에서 의료선교사로 사명을 잘 마치신 하은씨 부모님이 모처럼 푸른초장에 방문했다.
이제 하은씨는 40대 아가씨가 되었다. 하은씨 부모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딸을 돌볼 수 없다.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많이 필요한 하은씨를 하루도 집으로 데려가 재우지 못한다. 하지만 하은씨는 더 건강해지고 요구 사항은 점점 더 많아져 간다.
“이제 우리 하은이 절대 못 데려가요. 목사님 딸 하세요!”
“하하하, 그럴까요?”
불안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우리는 소리 내며 환하게 웃었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백운현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백운현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아주 잘 쓰셨습니다. 사실, 굉장히 긴 이야기라서 이렇게 간결하게 쓰기가 어려우셨을 텐데, 잘 정리해서 쓰셨어요. 그리고 내용상 군더더기가 줄어들었습니다. 여전히 조금씩 남았지만, 많이 줄이셨습니다. 선생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백운현 선생님은 더, 더, 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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