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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칼럼 분석-001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2. 7. 15:41728x90반응형
신문 칼럼 분석
2025년 2월 7일 이재원 선생
[아침햇발] 한겨레 신문 박용현 기자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역사에서 폭군의 대명사인 하나라 마지막 왕 걸(桀)과 상나라 마지막 왕 주(紂)는 모두 신하인 제후들에게 쫓겨나 죽었다. 이를 두고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신하가 자기의 임금을 시해해도 됩니까?” 왕권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에선 당연한 질문이었다. 맹자가 답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하는 사람을 일부(一夫·일개 사내)라 하니, 일부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짊과 의로움으로 통치하지 않고 폭정을 일삼는 왕은 그 자격이 없으므로 비록 왕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일개 사내로 취급해야 한다는 대답이었다.
<이재원 해설>
필자는 '맹자'에 나오는 중국 고사(故事)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했다. 고사(故事)란 '옛날에 일어난 일'을 뜻한다. 그런데 단순히 옛날에 일어났다고 모두 고사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내어서, 세상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고, 그렇게 널리 알려진 일만이 고사가 되어서 사람들 입에 남는다. 한 마디로, 고사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가 담겼다.
고사로 글을 시작하면 두 가지 면에서 이롭다. 첫째, 글이 무척 '있어 보인다.' 유식한 티가 난달까, 내가 보유한 지식을 멋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과시할 수 있다. 우선, 내가 고사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멋지고, 현재 겪는 일을 고사에 겹쳐서(비유해서) 표현한다는 사실도 멋지다. 둘째, 내가 쓰는 글에 보편성을 강력하게 부여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써서 세상과 소통하는데, 내가 떠올린 생각이 따지고 보니 오로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고사를 인용하면서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독자가 내가 꺼내는 이야기에 좀 더 쉽게 설득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고사는 더 유명한 고사와 덜 유명한 고사로 나뉜다. 먼저, 삼국지처럼 대중적인 소설에서 기인한 도원결의(桃園結義)나 삼고초려(三顧草廬)처럼 더 유명한 고사로 글을 시작하면, 설명을 조금 적게 붙여도 필자가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독자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알려져 있는 고사를 쓰면, 글이 진부해질 수 있다. 반면에, 위 글에서 필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맹자'에서 고사를 인용했다. 이러면 설명을 좀 더 붙여야 해서 길어진다. 그러나 어려운 고사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인용하면? 글 품격이 굉장히 많이 올라간다. 위 글 첫 대목을 다시 읽어 보라. 정말 있어 보이지 않나?
고사로 시작한 글을 읽을 때는, 고사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야 한다. 그 뒤에 고사에 빗대어 필자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설계한다면, 글을 쓸 때 적절하게 고사를 인용해서 글을 있어 보이게 쓸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내가 글에 담으려는 핵심 주제를 들여다 보면서, 이 상황에 잘 들어맞는 고사성어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떤 점에서 잘 들어맞는지 이모저모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보고 고사를 인용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왕정 시대에 왕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맹자의 기백과 통찰이 무릎을 치게 한다. 맹자의 선견은 이후 2천년이나 흐른 뒤 생겨난 현대 대통령제 민주국가에서 탄핵제도로 구현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상당수 국가에선 국회가 탄핵소추·심판을 모두 담당)을 통해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일개 자연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인과 의라는 가치 대신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지 여부가 폭정의 판단기준이 된다.
대통령 윤석열이 그 탄핵심판대에 서 있다. 12·3 내란이 반헌법·불법임은 너무나 명백하기에 윤석열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라 일개 사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탄핵심판 과정에서 보이는 행태는 ‘일개 사내’라는 호칭조차 과분할 만큼 졸렬하다. 거짓말과 비겁함이 평균적 인간의 테두리를 넘어섰다.<이재원 해설>
필자는 첫 단락에서 고사를 소개한 후, 해당 고사 내용이 내가 진짜로 표현하고 싶은 최근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했다: 전통 사회에서도 왕이 인과 의를 내버리면 쫓아낼 수 있었으니,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당연히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면 쫓아낼 수 있다. 대통령 윤석열은 헌법과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졸렬하게 자신의 잘못을 부인한다.'
여기에서 '졸렬하다'는 표현은 무척 세다. 더구나 대통령에게 썼으므로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무례가 선을 많이 넘었다. 따라서 독자를 설득해야 한다. 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제시해야 한다. 필자는 신문사 논설위원. 평생 논리적인 글을 쓰며 살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논리를 제시해야 효과적인지/효율적인지 잘 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 두 개를 소개한다.
두개의 장면만 보면 충분하다.
윤석열이 직접 나온 21일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문형배(헌재소장 권한대행)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으십니까?”
윤석열 “없습니다.”
이미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경찰청장 등이 직접 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자신의 지시를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부정했다.
<이재원 해설>
'졸렬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를 뜻한다. 대통령은 세상에 가장 많은 사람을 이끄는 리더다. 우리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다양한 사람을 넉넉하게 품는 마음(아량)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하 직원이 공개적으로 증언한 본인 잘못을 천연덕스럽게 부인한다. 국어사전 뜻풀이대로 옹절하고, 천하고, 서투르다. 즉, 필자가 제대로 사례를 들었다.
바로 이튿날인 22일 국회 청문회.
곽종근(전 특전사령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발언에 대해선 분명하게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고, 필요한 사실들은 다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 의지대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도 이날 청문회에서 윤석열이 국회의원 등의 체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홍장원 “(계엄 당일 윤석열과의 통화에 대해) 풀텍스트를 직설화법으로 원하신다면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한 어투라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 무조건 지원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 전 차장은 이어진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과의 통화에서 정치인 등 14명의 체포 대상자 명단을 들었다고 다시 확인했다.
홍장원 “방첩사와 국정원이 (정치인을) 수갑 채워 벙커에 갖다 놓는 일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어디? 평양! 그런 일을 하는 기관은 어디? 북한 보위부! 이상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온 국민에게 중계되는 헌재 법정에서 또 거짓말을 반복하고, 하루 만에 군 장성과 국정원 고위 간부에 의해 생생하게 반박됐다. 그 거짓말의 내용도 하나같이 책임을 부하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구국의 의지로 계엄을 선포했다는 대통령이 왜 이리 구차한가. 장삼이사도 자신이 한 행위에 책임지지 않는 걸 부끄러워한다.
더구나 윤석열은 경호처 직원들을 ‘체포영장 집행 저지’라는 불법행위로 내몰며 그 뒤에 숨었다. 물리력으로 법 집행을 거부하는 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조직폭력배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법치 부정이다. 머리를 만지고 양복을 차려입은 멀끔한 모습으로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른다.
검사 시절, 지금의 자신처럼 증거가 명백한데도 딱 잡아떼며 법질서를 무시하는 범죄자를 검사 윤석열은 어떻게 대했을까. 능히 상상된다. 그대로 지금의 윤석열을 취급하면 된다.
23일 헌재 공개변론에서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윤석열은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계엄 포고령을 함께 검토하던 당시에 대해 질문했다.
윤석열 “‘전공의’ 이거는 왜 집어넣었냐고 웃으며 얘기하니 ‘이것도 계도한다는 측면에서 그냥 뒀습니다’고 해서 저도 웃으며 놔뒀는데, 기억하십니까?”
김용현 “지금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
‘포고령 5호’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었다.
포고령을 접한 의료인들의 심정은 어땠겠나. 의료인뿐만이 아니다. 포고령은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국민을 겁박했다. 이 무시무시한 포고령을 둘이 웃으면서 만지작거렸다는 얘기다.
<이재원 해설>
필자는 상황에 맞게 사례를 제시한 후, 간단하게 설명을 붙였다. 사례를 읽고, 설명을 읽다 보면 대통령이 얼마나 졸렬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주된 설명 방법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인 '상술'을 택했다. 상술이란 '뜻풀이'다. 나는 알고 상대는 잘 모르는 말을 꺼낸 후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사과 껍질을 벗기든 순차적으로 하나씩 밝혀 나간다. 위 대목을 반복해서 읽어보라. 논리적으로 흐름이 무척 자연스럽다. 그래서 술술술 읽힌다.
'상술'은 어떻게 구사해야 하나? 세 가지 원리가 있다: '뜻은 같게, 길이는 길게, 내용은 좀 더 구체적으로.' 첫째, 뜻은 같게. 설명이란 대상을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작업이므로, 설명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 독자는 혼란스럽다. 둘째, 길이는 길게. 내가 연필은 연필이다, 라고 설명한다면? 이는 설명이 아니라 동어반복이다. 예컨대, 연필은 20cm 길이 나무 조각를 조립하고 가운데 흑연심을 박은 필기구다, 라고 써야한다. '연필'과 '20cm 길이 나무 조각를 육각적으로 조립하고 가운데 흑연심을 박은 필기구'는 뜻이 같지만, 뒷부분이 훨씬 더 길다. 셋째, 내용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쓰면, 대상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쓰게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엇이든 '형체가 눈에 보이듯' 쓰면 구체적으로 쓸 수 있다.
백성에게 고통만 주고 잔인한 짓을 일삼았던 걸과 주 역시 일개 사내라고도 부를 수 없는 ‘평균 이하의 인간’이었음은 틀림없다. 맹자는 차마 그렇게까지 표현하진 않았다. 후대에 더 졸렬하게 잔적하는 자가 나타날 것을 예견해 남겨둔 표현이라면, 지금이 그 합당한 때다.
<이재원 해설>
필자는 마지막으로, 논의를 정리하면서 짧게 결론을 맺는다. 결론은 한 마디로 '요약'이다. 글에 담은 내용을 '나는 A가 B라고 생각한다' 라고 정리하면, 이것이 주제문이고 결론이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결론은 서론과 본론보다 훨씬 더 쓰기 쉽다. 아울러, 대체로 거의 모든 글에서 결론은 생략해도 무방하다. 앞에서 쓴 내용을 반복하는 작업이니까.
이 글 구조를 세 부분(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어 보자. 서론은 두 번째 단락까지다. 서론에서 필자는 고사를 인용하고, 무슨 뜻인지 풀이한다. 본론은 세 번째 단락부터 마지막 단락 직전까지다. 본론에서 필자는 고사와 연결해서 주제(나는 대통령이 졸렬하다고 생각한다)를 제시한다. 필자는 주제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려고 대표적인 사례(헌법 재판 장면, 국회 청문회 장면) 두세 개를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본론 내용을 요약한다.
서론은 (독자도 알 만한) 소재를 제시하고, 본론은 소재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쓴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본론 내용을 요약하고 재확인한다. 박용현 기자는 있어 보이는 고사를 고전적인 글쓰기 삼단 구조에 얹어서, 많이 있어 보이게 시론/칼럼을 썼다. 서론-본론-결론 구조를 교과서적으로 잘 지켜서,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박용현 기자가 채택한 구조를 그대로 따 와서 내가 쓰려는 주제를 슬쩍 얹으면 된다.<원문 기사>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박용현 | 논설위원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역사에서 폭군의 대명사인 하나라 마지막 왕 걸(桀)과 상나라 마지막 왕 주(紂)는 모두 신하인 제후들에게 쫓겨나 죽었다. 이를 두고 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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