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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구워준 김치전은 항상 따뜻했다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3. 6. 06:57728x90반응형
엄마가 구워준 김치전은 항상 따뜻했다
글쓴이: 이기국 사회복지사(서경노인복지관 관장)
(첨삭 지도: 이재원)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은 입맛이 까다롭다. 첫째는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 않아 취향을 맞추기 힘들다. 싫어하는 재료는 어떻게든 찾아내어 젓가락으로 걸러낸다. 라면을 먹을 때도 파를 일일이 발굴(?)한다. 둘째는 입맛이 ‘고오급스럽다.’ 소고기도 마블링이 눈꽃처럼 내려앉은 부위를 좋아한다. 해산물은 그 비싸다는 낙지를 ‘탕탕탕’ 잘게 손질해서, 고소한 참기름을 뿌려 먹는다. 병든 소도 아닌데, 낙지탕탕이를 해준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좋아하는 음식이 많지 않은 첫째도 고급 입맛인 둘째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김치전이다. 휴일이 되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겨울잠 자는 곰처럼 뒹굴뒹굴하다가도 문득 배고프다고 투정한다. “아빠! 김치전 먹고 싶어.” 나는 어머니가 지난해 동안 담근 묵은지를 잘게 자르고, 김칫국물에 부침가루를 섞어 냉장고에 반죽을 숙성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이 지글지글 올라오면, 반죽을 넣어 바삭바삭한 튀김처럼 김치전을 만든다. 한 장, 두 장 김치전을 구우면, 아이들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달려든다. 나도 김치전을 한 장 만들어 막걸리를 한 잔 곁들인다.
어렸을 땐 비가 올 때면 엄마는 전을 만들었다. 호박을 한입에 먹을 수 있게 동그랗게 잘라 전을 만들었고. 집에 있는 채소를 양푼에 가득 넣어 채소전도 만들었다. 하지만 김치전이 가장 맛있었다. 엄마가 만든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 김치전도 당연히 최고였다. 엄마가 노릇하게 김치전을 만들면, 나는 옆에 바싹 붙어 김치전을 야금야금 해치웠다. 엄마가 구워준 김치전은 항상 따뜻했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김치전을 부칠 때면, 엄마가 생각난다. 김치전이 지글지글 익어가면 젊었던 엄마와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기억에 스친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어느새 아빠가 되어 아이 둘을 키운다. 흐뭇하게 김치전을 부치던 엄마는 80세 할머니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 두 사람 모두 겉모습은 변했지만, 엄마와 함께 앉아서 김치전을 맛본 순간은 변하지 않는다. 김치전을 부칠 때면 그때 엄마를 마주한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1. 도입부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첫 문장부터 좋습니다. 글쓴이는 아들과 딸을 소개하면서 입맛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족과 음식 이야기'입니다. 초점이 분명합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좁혔습니다. 그리고 이 경계 안에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간결한데 풍성합니다.
1-1. 글쓰기 재료는 생각입니다. 생각은 물과 같습니다. 형태 없이 자유롭습니다. 그냥 두면 어지럽게 흐르고 맙니다. 반면에, 완성한 글은 그릇과 같습니다. 생각을 가두고 제한합니다. 때로는 그릇 안에서 물보라가 일어나지만, 경계를 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릇을 잘 마련해야 합니다. 적당한 크기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1-2. 다시 말하겠습니다. 글쓴이가 첫 문장을 대단히 잘 썼습니다. 그릇 경계를 확실하게 잘 그었습니다. 출발한 생각은 흐르는 액체였을 텐데, 완성한 글은 단단한 고체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 손에 착 감깁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합니다. 하지만 한없이 깊고 풍성합니다.
2. 사실, 후반부가 더욱 좋습니다. 진짜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이제보니 아들과 딸은 '아름다운 미끼(?!)'였습니다. 아들과 딸 - 김치전 이야기(현재) - 김치전 이야기(과거) - 엄마. 김치전으로 매개로 삼대가 옹기종기 둘러 앉았습니다. 이렇게 좁은 글 안에 네 사람이 넉넉히 앉을 사랑방을 창조하다니, 역시 잘 쓴 글은 마법을 부립니다.
3. 묘사할 땐 표현력보다 관찰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멋들어진 문학적 비유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생하게 쓸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기억 속 사진에 자를 대고 글로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밀도가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표현이 생생해졌습니다. 태도도 담담하고 문장도 담담한데, 독자 마음에 파도가 와 닿습니다. 그리고 모래성을 무너뜨립니다.
4. 글쓴이는 평범한 사회복지사입니다. 본인은 표현력이 부족하다며 자주 한탄했습니다. 글재주를 타고 난 동료를 늘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자기 길을 찾아냈습니다. 개별 문장은 평범하지만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했습니다. 글 구조를 잘 짜고 주제를 뚜렷하게 잡았습니다. 이 글이 증거입니다.
<글쓴이 피드백>
"글을 쓸 때 함께 글쓰기 공부하는 선생님들 글을 참고했어요. 김정현 선생님처럼 표현하고, 여러 선생님들처럼 가족을 향한 시선을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현재 아이와 과거 어머니 대비는 이재원 선생님이 자주 쓰시는 방법을 따라했어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좋은 선생님과 좋은 동료 덕분입니다."
<참고>
_ 본 글에 사용한 글과 사진은 이기국 관장님에게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습니다(교육 및 출판 목적).
_ 글쓴이가 쓴 초고에서 약간 어색한 대목 몇 군데(5%)를 이재원 선생이 첨삭했습니다.
_ 이기국 관장님은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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